조각이 무엇이냐고 묻는 친구의 질문에 조각은 의자나 가구, 도구처럼 유용한 사물이 아니고 아무런 실제적 소용이 되지 않는 채로 더 할 것도 뺄 것도 없이 스스로 온전히 존재하는 3차원적 물체라고 대답한 적이 있다. 한용진 선생님의 조각 한 점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내 속의 어떤 감각이 화들짝 깨어나는 것을 느꼈고 그 놀라움에 대해 자꾸 생각해 보는 것이었다. 왜 그렇게 기뻤을까 하고.
기가 막히게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리곤 그 작품이 마음을 떠나지 않고 자꾸 자꾸 마음과 시선에 들어와 차는 것이었다. 마치 내가 알고 있었는데도 미처 모르던 세계를 기억하게 하는 듯한, 너무나 쉬운 하나의 선을 지닌 이 조각품은 말로 설명하기 쉽지 않은 생략의 심오한 존재감과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는데 과연 이게 무엇일까 하고 자꾸 생각나게 한다.
선생님의 작품을 본 화가 친구는 그 돌을 집에 가져다 놓고 친구처럼 옆에 다정히 앉아 있기도 하고 싶고, 얘기도 하고 싶고, 가만히 그 앞에 오래오래 있기도 하며 식구처럼 함께 살고 싶다고 했다. 선생님의 작품은 고요하고 힘차다. 그 앞에 있으면 내 마음속의 고요가 되살아나고 그러면서도 아주 엄청난 생명의 파동이 느껴진다. 돌을 만지시는 선생님의 다사롭고도 힘차고 섬세한 손길이 느껴진다. 무겁고 단단한 돌의 고요한 숨결이 소리 없이 뿜어져 나오는 이 돌은 엄청난 생명이 응축되어 있는 느낌을 주면서도 무한히 부드럽다.
어린 시절에 본 다듬이 돌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옛 기와지붕의 잿빛 아름다움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천년 세월 속에 닳아진 절터의 돌계단에서 느끼는 시간과 발걸음의 만남이 느껴지기도 하고 한국의 가장 오래된 무덤인 고인돌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이조백자에서 느끼는 무한하고도 그득한 최상의 여백의 미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한 획을 그은 듯한 힘찬 하나의 선으로 느껴지는 다듬이 돌 모양의 조각을 거듭하시는 이유를 물었더니 세월이 지나 변화하는 삶의 질곡 속에서도 나는 하나일 뿐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돌의 가장자리는 왜 깎지를 않고 그대로 두셨느냐고 물었더니 본래 모습으로부터 와서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하셨다.
“선생님의 조각이 저는 기가 막히게 좋은데 조각을 모르는 분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하고 물었더니 한참 들여다보고 나서 무엇을 느끼느냐고 물어보라고 하셨다.
사람은 자기가 아는 만큼 알 수 있고 볼 수 있는 것이라고 하는데 그래도 그림을 30년 공부해서 느끼는 이 기쁨을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이미 알고 있는 생명의 진면목을 보여 주는 것일 뿐이라고 하셨다. 푸른 바다의 수평선을 바라보시며 직선 같지만 곡선이고 있는 듯 없는 듯한 저 힘차고 섬세하고 무한한 선을 조각에서 드러나게 하고 싶다고 하셨다.
“어린아이가 조각을 가운데 두고 훌쩍 뛰어넘고 싶다고 하면 어떻게 할까요”하였더니 “그거 좋은 일이지”하신다.
두개가 포개져 있는 것은 일심동체를 뜻하는 것이라고 하신다. 미륵반가상처럼 무한한 미소를 짓는 작품을 작업하고 싶은데, 웃는 모습을 조각해서가 아니라 눈 코 입이 없이도 그 존재 자체에서 보는 이로 하여금 미소를 느끼게 하고 미소짓게 하는 작업을 하고 싶다고 하신다. 지금까지의 작품은 하나로 ‘내가 있다’는 작업이었지만 있으며 또한 없고, 없으며 또한 있는 작업은 어떤 것일까 하는 생각이 요즘 든다고 하신다.
73세의 선생님은 청년처럼 목소리가 깊고 우렁차고 몸짓이 힘 차신데 50년 동안 돌을 만지신 커다란 손은 손톱이 다 부서져 있고 손가락 마디마디가 거칠고 튼튼하다. 조각가의 거칠고 커다란 손을 바라보는 것 또한 선생님의 돌을 바라보는 것처럼 감동적이다.
뉴욕에서 열흘 전에 떠나온 돌이 LA를 찾아와, 고요히, 생명에 가득 차. 무한한 시간과 공간 속에 잠시 놓여있다. 누가 와서 보던 말던 그냥 스스로 존재하는 돌들의 아름다움을 누군가 와서 느꼈으면 좋겠다. 그리고 조용히 한참동안 서서 그 돌들이 소리 없이 들려주는 돌의 숨결을 느꼈으면 좋겠다.
여름의 폭염과 겨울의 혹한 속에 50년을 홀로 돌을 어루만지며 돌과 하나되어 이제는 돌을 만지는 것이 물장난 같이 즐겁다는 조각가와 돌의 친숙함을 느꼈으면 좋겠다.
박혜숙
화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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