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통의 끝에 문이 있었다./ 내 말을 끝까지 들어 보라./ 당신이 죽음이라고 부르는 것을/ 나는 기억한다./ 머리 위, 소음들, 소나무 가지들의 자리바꿈/ 그 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흐린 태양만이/ 메마른 흙 위에서 깜박거릴 뿐./ 끔찍한 일이다, 어두운 땅속에 묻혀/ 의식을 가지고/ 생존한다는 것은./ 그때 끝이 났다. 당신이 두려워하는 것이,/ 한 영혼으로 존재하면서도 말을 할 수 없던 상태가/ 갑자기 끝나고, 딱딱했던 흙이/ 약간 위로 부풀었다./ 그러자 내게 새라고 여겨지는 것들이/ 키 작은 관목 속으로 내리꽂혔다./ 다른 세상에서 돌아온 통로를/ 기억하지 못하는 당신/ 나는 당신에게 말한다, 내가 다시/ 말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잊혀진 상태에서 돌아오는 것은 무엇이든/ 목소리를 갖는다는 사실을./ 내 삶의 중심으로부터/ 커다란 물줄기가 솟아났다./ 하늘색 바다에/ 깊고 푸른 그림자를 드리우며.
-루이스 글릭 ‘야생 붓꽃’
오랜만에 시를 읽으니 마음이 부드러워진다. 그동안 얼마나 험한 일들이 많았는가. 팬데믹과 인종시위, 폭염과 산불, 대법관 청문회와 대선 과정을 지켜보면서 거칠고 딱딱해진 마음이 꽃의 생명력을 노래하는 시 한편을 읽자 이내 따뜻하고 부드러워졌다.
위의 시는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루이스 글릭(Louise Gluck)의 대표작 ‘야생 붓꽃’(Wild Iris)을 시인 류시화가 옮긴 것이다. 글릭(77)은 1992년 발표한 이 시집으로 퓰리처상을 받았고, 지금까지 12권의 시집을 내면서 미국도서상, 미국비평가협회상, 불링겐상 등 미국의 주요 문학상을 석권했다. 2003년 미국 계관시인이 되었고, 2015년 최고의 인문학자에게 수여하는 ‘미국 휴매니티즈 메달’을 받았다.
이처럼 미국 문단에서는 저명한 시인이지만 다른 나라들에 거의 알려지지 않아서 한국과 일본에조차 번역된 시집이 한권도 없다. 그런데 노벨상 발표 3주전 출간된 류시화 시인의 신간 ‘마음챙김의 시’에 글릭의 시 한편이 실려 있다. ‘눈풀꽃’(Snowdrops)이란 시로, ‘야생 붓꽃’처럼 겨울의 절망과 고독을 뚫고 눈 덮인 대지로 피어오르는 작은 꽃의 생명력을 노래한다.
해외시인들의 좋은 작품을 모아 번역한 시집을 여럿 펴낸 류 시인은 2018년 출간한 ‘시로 납치하다’에도 글릭의 시 ‘애도’(Lament)를 소개했고, 그녀가 노벨상을 수상한 후에는 페이스북을 통해 새로운 시들을 계속 번역해 올리고 있다. 지난주만 해도 ‘개양귀비’ ‘흰 백합’ ‘공상’이라는 시를 소개했으니, 한국어판 첫 루이스 글릭 시집이 류시화 번역으로 나오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한편 본보 오피니언 지면에도 글릭의 시가 소개된 적이 있다. 2015년 ‘이 아침의 시’를 담당했던 임혜신 시인이 ‘자장가’란 시를 번역해 미주한인 독자들에게 처음 소개했다. 오래전 한 문학지에 글릭에 대해 자세히 소개한 적이 있다는 임 시인은 최근 그녀의 페이스북에서 ‘야생 붓꽃’ 시집에 실린 ‘연령초’ ‘백장미’ ‘꽃고비’ 등의 시를 번역 해설하고 있다.
1943년 뉴욕의 헝가리계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루이스 글릭은 10대 시절부터 거식증을 심하게 앓아 7년이나 심리치료를 받으면서 학교도 정상적으로 다니지 못했고 학위도 따지 못했다. 삶과 죽음의 갓길에서 살기 위해 본능적으로 움켜잡은 것이 시였고, 병에서 회복한 후 사라로렌스 칼리지와 컬럼비아대학에서 시를 공부했다. 1968년 시집 ‘맏이’(Firstborn)로 등단한 후 미국 현대문학의 가장 중요한 시인 중 한명으로 부상했고, 지금까지 시집 12권과 수필집, 시문학서 등 18권의 저서를 냈다. 현재 예일대 영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노벨상 120년 역사에서 문학상을 수상한 여성은 16명, 미국여성의 문학상 수상은 1993년 흑인소설가 토니 모리슨 이후 두 번째다. 글릭의 수상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의외의 선정이었다고들 한다. 그만큼 생소한 이름이고, 학계에서도 거의 연구되지 않은 탓이다. 그러나 정신적 육체적 트라우마에서 소생한 자신의 이야기를 토대로 ‘살아있음의 경험’에 집중하는 절제된 목소리가 코로나 시대 개인의 존재를 새롭게 회복시킨다는 점에서 한림원의 높은 평가를 받은 듯하다.
류시화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글릭은 상처받기 쉬운 육체와 정신을 소유하고 고난과 시련으로 얼룩진 시간들을 살았다. 하지만 그는 가슴이 원하는 진실한 것, 인간의 여정에서 상실과 화해하고 삶을 포용하려는 의지를 고백 투의 운율에 실어 노래한다. 우리가 미래에 대해 불확실해하고, 고립되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을 때 루이스 글릭은 우리에게 말한다. 고통과 망각, 심지어 죽음까지도 끝이 아니라고. 그것들은 결코 끝없는 게 아니며, 그 끝에는 반드시 소생과 부활의 문이 열린다고.” 지금 이 시대에 이보다 더 큰 위로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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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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