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000여년 전, 한 바이킹 남자가 살인죄를 저지르고 아이슬란드에서 쫓겨났다. 가족을 데리고 정처 없이 항해하던 그는 거대한 빙하섬을 발견하고 정착지를 개척한다. 평균기온이 영하 30도에 이르는 혹독한 섬에서 3년의 유배생활을 견딘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 자신이 발견한 섬에 정착민들을 끌어들이려고 대대적인 광고를 펼친다. 섬의 이름을 ‘그린란드’라 짓고, 초목이 풍부하고 살기 좋은 곳이라 선전했으니 일종의 과대 혹은 허위광고였다.
그의 상술이 통했던지 985년에 25척으로 이뤄진 원정대가 그와 함께 그린란드로 떠났다. 도중에 폭풍을 만나 11척을 잃고 최종적으로 그린란드에 도착한 사람은 500여명. 훗날 ‘붉은 머리 에릭’(Erik the Red, 950~1003)이라 불리는 그는 거기서 바이킹의 족장이 되었고, 부족은 한때 인구가 5,000여명이나 될 정도로 번성했다.
학자들에 따르면 800~1300년대 이 지역은 지금보다 기후가 따뜻했고 초목지대도 많았다. 그러다 14세기에 찾아온 소빙하기로 기온이 급강하했고, 생존이 어려워진 바이킹들은 15세기 중반쯤 몰락하여 사라졌다. 이후 1721년 선교사 한스 에게데가 그린란드를 탐험한 후 덴마크-노르웨이 연합왕국이 식민지로 삼았고 여러 역사적 굴곡을 지나 덴마크령이 되었다. 현재는 원주민들이 자치권과 독립권을 갖고 자체정부와 사법, 입법 기관을 구성하고 있으며, 덴마크는 외교와 국방 분야만 통제하고 있다.
오랫동안 사람들의 관심권 밖에 있던 그린란드에 요즘 세계인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를 노골적으로 탐내기 시작하면서부터다. 트럼프는 작년 12월부터 덴마크에게 그린란드를 미국에 팔라고 종용해왔다. 덴마크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하자 무력사용도 배제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미국의 국가안보와 세계자유를 위해 그린란드를 소유하고 통제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트럼프는 최근 NBC와의 인터뷰에서 다시 한번 “미국은 그린란드를 100% 얻을 것”이라고 큰소리쳤다.
트럼프의 막무가내 행보에 위기를 느낀 그린란드와 덴마크의 총리들은 3일 기자회견을 열고 병합 거부의 메시지를 강조하면서 앞으로 덴마크는 그린란드의 안보에 더 많은 투자를 할 것이므로 원한다면 미국도 함께 참여하라는 타협안을 제시했다.
왜 그린란드일까?
면적이 한반도의 10배나 되는 세계에서 가장 큰 섬이지만 국토의 84%가 수천미터 두께의 빙하로 덮여있고 초원은 불과 1% 정도인 척박한 땅. 인구 5만6,000명 가운데 89%는 이누이트들이고 사람 사는 마을이 100곳도 되지 않는 변방의 오지. 정치 역사적으로 북유럽권이지만 지리적으로는 북미대륙과 훨씬 더 가까운 지구 최북단의 땅.
놀랍게도 그린란드에 눈독을 들인 것은 트럼프 행정부가 처음이 아니다. 미국은 1867년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를 매입할 때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에도 큰 관심을 갖고 그 자원과 획득의 적절성에 관해 보고서를 작성한 바 있다. 해리 트루먼 대통령도 1946년 비밀리에 덴마크에 그린란드 매입의사를 밝혔다. 1억 달러어치의 금과 7,000만 달러의 빚을 탕감해준다는 조건이었다. 덴마크는 거절했다. 그리고 이제 트럼프가 점령 야욕을 숨기지 않고 있다.
이런 시도들은 그린란드가 가진 엄청난 지하자원과 전략적 가치를 미국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린란드 남부에 위치한 크바네펠트 광산은 세계 2위의 희토류 광산이자 세계 6위의 우라늄 광산이며 석유과 천연가스도 풍부하게 매장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런데 희토류보다 더 중요한 것이 북극해의 패권 장악이다. 북극해는 빙하가 많아서 그동안 항로로 사용할 수 없었다. 하지만 21세기 지구온난화로 빙하가 빠른 속도로 녹고 있으니 이 추세라면 2030년께 북극 항로가 열릴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말하자면 새로운 무역항로와 함께 군함들의 항로 또한 확장되므로 북극해의 요지인 그린란드를 차지하면 세계를 제패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역사를 보면 공간을 확보한 국가가 패권을 장악했다. 미국이 강대국이 될 수 있었던 조건도 대륙 양쪽으로 태평양과 대서양을 끼고 있어서 세계 항로의 70%를 장악했기 때문이다. 세계는 오래전 지중해 시대였다가 대서양 시대를 지나 지금은 태평양 시대라고 한다. 그리고 우리 후손들의 세계는 북극해 시대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탐이 난다해도 문명국이 남의 영토를 무력으로 합병하겠다는 야욕은 어이없고 터무니없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나 중국의 대만 침공 위협과 무엇이 다른가?
지난 주말 미 전역에서 1,200여건의 트럼프 반대 시위가 있었다. 그동안 쌓인 불만이 터지면서 50만명 넘는 사람들이 뛰쳐나와 행진을 벌였다. 연방공무원 대폭 감축서부터 중요 프로그램과 대학들에 대한 예산 삭감, 세계경제질서를 뒤흔들고 있는 대규모 관세정책에 반발하여 미국시민들은 “손을 떼라!”(Hands Off!)고 외쳤다.
“핸즈 오프!” 덴마크와 그린란드가 외치고 싶은 바로 그 구호일 것이다.
<
정숙희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총 2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트 쓸헤기라면 온갖 불법적 방법으로 본인의 리조트 사업때와 똑같은 방법으로 주변 국가들을 압박해서 덴마크를 고립시키려 헐것임. 계산기 뚜드려 EU 연합에게 관세를 풀어주고 덴마크 압박으로 방향을 전환하면 트 쓸헤기의 사업방식대로 그린랜드를 먹을 수 있을 것이라 이 쓸헤기는 믿고 있음. ㅋ
나는 내 길을 간다...목아지가 부러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