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서울에 사는 로봇 이야기 ‘어쩌면 해피엔딩(Maybe Happy Ending)’이 6월8일 뉴욕 래디오시티 뮤직홀에서 열리는 제78회 토니상 10개 부문에 올랐다. 작품상, 남우주연상(올리브역 대런 크리스), 연출상, 각본상, 음악상, 편곡상, 무대디자인상, 의상디자인상, 조명디자인상, 음향디자인상 총 10개 부문이라니, 어찌 그럴 수 있는가, 경이롭고도 궁금했다.
그래서 지난 6일 맨하탄 브로드웨이로 나갔다. 벨라스코 극장에 들어서니 무대 막 중간에 ‘MAYBE HAPPY ENDING’ 옆에 한글로 ‘어쩌면 해피엔딩’이 쓰여있다. “와우!” 하면서 기념사진부터 찍었다.
서울 외곽지대에 쓸모를 다한 로봇 전용아파트가 있다. 이곳에서 단조로운 생활을 하던 올리버는 충전기가 필요해 문을 두드린 클레어를 만난다. 헬퍼봇5인 올리버는 다소 뻣뻣한 연기를 로봇처럼 하고 진보된 헬퍼봇6인 클레어는 인간처럼 보인다. 버전이 다르지만 올리버는 충전기 코드를 개조하여 도와주면서 둘은 왕래하게 된다. 부품이 더이상 생산되지 않아 이들의 생명력은 유한하다.
올리버와 클레어는 서로 사랑하지 않기로 약속했지만 자신도 모르게 사랑에 빠지는 공연 내내 한글이 계속 나왔다. 날자와 연도, 제주도행 페리, 인간의 이름이 모두 한글로 나오면서 이 무대가 2016년 대학로 창작 뮤지컬로 초연되면서 지난해 11월 미국 브로드웨이에 진출했구나를 실감했다.
보통의 브로드웨이 뮤지컬은 화려한 무대배경과 춤과 노래를 기가 막히게 잘하는 수많은 출연진들, 어마무시할 정도로 자본을 투자한 공연이 대부분이다.
이 무대 출연진은 로봇 올리버와 클레어, 그 외 제임스와 우편배달부 정도다. 옷도 안갈아 입는다. 올리버와 클레어(헬렌 J. 션) 의상은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벌(제주도 갈 때 그 위에 재킷만 걸친다), 무대 배경은 올리버와 클레어 각자의 방, 제주도행 페리, 제주 풍경 정도다.
다소 지루할 수 있고 돈도 거의 안들인 이 무대를 보며 왜 관객들은 우는가? 같이 간 딸도 여러 번 볼 때마다 눈물이 난다고 했다. 바로 감성이다. 인간에게 메말라버린 감성을 되찾아 주기 때문이었다.
“끝까지 끝은 아니다, 걱정마 걱정마. 괜한 걱정 따윈 말아, 어차피 똑같겠지만 그저 지금에 집중해, 끝까지 끝은 아니야, 일분일초 매순간 나답게 살아가.”
옛주인 제임스를 따라 LP 레코드와 재즈잡지를 좋아하는 올리버는 낡아가지만 자신의 끝을 생각 않는 씩씩한 로봇이다, 사랑과 동시에 이별의 슬픔을 알게 되는 클레어, 이들은 인간 세상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최근, 천선란의 장편 SF ‘천 개의 파랑’이 최근 할리웃 워너브라더스 픽서스에서 영화로 제작된다고 한다. 1935년이 배경으로, 경주용 로봇 기수 콜리와 연골이 닿아 안락사를 앞둔 경주마 투데이의 이야기이다. 둘의 이야기에 빠져들어 마지막 부분에선 눈물이 핑 돌았었다. ‘어쩌면 해피엔딩’도 로봇의 이야기지만 유한한 인간의 삶과 겹쳐지면서 입소문이 났고 관객의 눈물을 자아낸 것이다.
토니상은 연극 뮤지컬계의 최고권위의 상이다. 지난해 4월26일부터 4월27일까지 공연한 브로드웨이 연극과 뮤지컬이 심사대상이다. 이번에 한국산 ‘어쩌면 해피엔딩’이 주요 토니상을 섭렵하기 바란다.
한편, 5월15일은 제628돌 세종대왕 탄신일이었다. 2024년 국가기념일로 제정되어 세종시에서는 기념식과 업적 및 일대기 전시를 하고 있다. 정작 세종대왕 나신 곳은 어떠한가.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2번 출구로 나가면 자하문로, 이 길로 가면 통인시장 못미처 수많은 차량이 지나는 도로변에 표석 하나가 있다. ‘서울 북부 준수방(이 근처)에서 겨레의 성군이신 세종대왕이 태조 6년(1397) 태종의 셋째 아드님으로 태어나셨다’ 딱 그 문장뿐이다.
한국 작가가 한국어로 글을 써 한국에서 시작된 창작뮤지컬이 토니상 후보라니, 600여년 전 세종대왕은 자신이 만든 한글이 미국 브로드웨이 공연내내 등장할 것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내세가 있다면 무대 사진을 카톡으로 세종대왕께 보내고 싶은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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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 뉴욕지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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