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손을 꼭 쥔 노병의 말, “한나의 방문은 선물이야”
◀▲ 영국에서 만난 노병들은, 한국전쟁 당시 사진을 보여주거나 손을 꼭 쥐며 “한나의 방문은 선물”이라고 감격해 했다. ▶스코틀랜드 참전공원의 한옥식 기념탑 앞에서 노병들과 함께. 이 기념탑은 한국에서 가져온 8톤의 기와로 지어졌다고 하며, 주변의 잣나무도 한국서 공수돼 왔다고 한다.
자유와 평화를 위해 67년전의 한국전에 참전했던 이들을 찾아 그들의 육성을 직접 담아내고, ‘잊혀진 전쟁’이 되지 않기 위해 당시의 이야기를 후세에 남기고자 전 연방의회 한인보좌관이었던 한나 김씨가 4개월 일정으로 전세계 25개국을 돌고 있다. 한나 김씨의 이번 전세계 한국전참전용사 방문기는 워싱턴 민주평통(회장 황원균)이 후원하고 있다. 그의 ‘한국전 참전용사들의 육성일기’를 본보에서 독점 연재한다. <편집자 주>
3번째 방문국= 미국 다음으로 많은 파병국인 영국 (1/30-2/5)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10시간여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곳은 세번째 방문국인 영국 런던이었다. 1월 30일, 영국 방문의 첫 날부터 운이 좋았다. 영국군의 한국전 참전군인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윌리엄 스피크먼 참전군협회 회장을 만났기 때문이다. 스피크먼 회장은 영국군인의 최고 명예인 빅토리아 십자훈장(Victoria Cross-미국 Medal of Honor에 해당)을 받은 한국군 참전군 네 명 중 유일하게 살아계신 분이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수여한 첫 빅토리아 십자훈장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영국은 한국전쟁에 참전한 나라 중 미국 다음으로 가장 많은 군인들을 파견했다. 10만 여명의 영국군이 한국의 자유를 위해 전장에 투입됐고 그 중 1천78명이 목숨을 잃었다. 1천 명의 전쟁 포로 중 82명은 아직도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공항에 마중 나와주신 참전군인 로이 할아버지와 함께 스피크먼 회장을 만나러 제대군인 병원인 왕립 첼시병원을 방문했다. 스피크먼 할아버지는 1951년 11월 4일 새벽 임진강 지역의 ‘317고지’ 전투를 평생 잊지 못한다고 하셨다. 중국 인민군의 기습공격에 고지를 방어하던 영국군의 수많은 병사가 목숨을 잃거나 부상당했다. 이등병이었던 스피크먼 할아버지는 목숨을 걸고 끝없이 밀려오는 인민군을 향해 수류탄 공격으로 시간을 벌었고 그 덕분에 스코틀랜드 수비대는 후방으로 안전하게 철수할 수 있었다고 한다. 스피크먼 할아버지는 이날 전투로 다리를 크게 다쳐서 아직도 휠체어에서 생활하고 계신다.
영국 국방부 건물 앞에 있는 한국전쟁 기념탑(왼쪽). 스코틀랜드 한국전쟁 기념공원의 입구.
왕립 첼시병원에는 스피크먼 할아버지를 포함해 약 300명의 영국 제대군인이 살고 있다. 마가렛 대처 전 영국수상과 그녀의 남편이 안장된 곳으로 많은 영국인들의 추모 방문이 이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는 2차 세계대전 기념비를 비롯해 많은 전쟁 기념비들이 있었는데 한국전쟁과 관련한 조형물은 보이지 않았다. 병원 관계자에게 한국전쟁을 추모하는 조형물이나 기념비를 세우면 좋겠다고 건의했더니 정부의 허가를 받는 일은 어렵지 않다면서 설립 자금만 마련하면 당장 설치를 위한 허가 신청을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스피크먼 할아버지나 로이 할아버지는 무척 기뻐하시면서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군인들이 더 큰 자부심을 가지게 됐다.”면서 “한나의 영국 방문이 큰 선물”이라고 칭찬해 주셨다.
120일 간 지구 두바퀴를 도는 여행으로 참전용사께 감사 드리면서 한반도 평화 통일의 의미를 세계인들에게 알리겠다는 계획이었지만 막상 여행이 진행되면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할 수 있었다. 캐나다, 콜롬비아, 영국을 방문하는 동안 가는 곳마다 현지인들에게 한국전 참전용사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한국전쟁에 대한 의미를 다시 떠올리는 ‘로비’를 하고 있는 셈이다.
스피크먼 할아버지를 만나러 가기 전에 영국 국방부 건물 앞에 세워진 한국전쟁 기념탑 앞에서 런던에 살고 계신 한국전 참전군 8명의 할아버지를 만났다. 한국전 기념탑은 2014년 12월에 세워졌다고 하는데 희생자를 추모하는 듯 철모를 왼손에 들고 고개를 숙인 영국 군인의 조각상이 유명한 런던의 비와 안개와도 묘하게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댐즈 강가의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함께하며 참전군 할아버지들의 전쟁 관련 인터뷰를 했다. 65년 전 한국에서 찍었던 사진을 보여주시며 당시 상황을 설명해 주시는 할아버지들의 진지한 목소리에 눈물이 났다. 사진 속 할아버지들의 모습은 지금의 나보다도 열 살 이상 어린 이제 막 소년 티를 벗은 청년들이었다.
4번째 방문국= “Lest We Forget” 가장 아름다웠던 스코틀랜드의 한옥식 한국전 기념탑(2/2-2/3)
런던에서 이틀을 보낸 후 2월 2일 아침 스코틀랜드 글래스고로 이동했다. 영국의 밤이 미국 서부의 낮 시간이라 새벽에야 눈을 붙일 수 있었고 3시간만에 깨어나서 아침 비행기를 탔다. 참전용사인 알버트 할아버지가 공항에 마중 나와주셨다. 한국전 참전군협회 사무실에 도착하니 한국전쟁에 참전하신 할아버지 2명이 기다리고 계셨다. 사무실에서 할아버지들의 한국전 기억을 카메라에 담은 후 배스게이트(Bathgate)에 있는 한국전쟁 기념공원으로 향했다.
스코틀랜드 한국전 참전군인 할아버지 세 분과 함께 공원의 잔디 밭을 가로지른 좁은 포장도로를 기분 좋게 걷다보니 조그만 한옥 건물이 보였다. 그동안 봐왔던 한국전 기념비와는 전혀 다른 전통 한옥의 기와지붕 대문같은 건물이었다. 한국에서 공수해 온 8톤의 기와와 잣나무로 지어진 건물 안쪽 벽면에는 1천 명 이상의 영국군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스코틀랜드 군인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1,113명의 전사자 이름이 새겨진 아름답고 단아한 한국전 기념탑 주변에는 110그루의 한국에서 온 전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전사자 10명마다 110 그루의 한국 나무가 무리져 심겨 있고 또 그 주변을 1천100그루의 스코틀랜드 나무들이 조성됐다.
나무들과 잔디와 좁은 포장길 중간의 한옥식 전쟁 기념탑. 꾸밈없고 조용한 스코틀랜드 한국전쟁 기념공원의 입구에는 “Lest We Forget” (잊지 않기 위해서라는 뜻) 공원을 조성했다는 문구가 씌여 있었다. 1,100명이 넘는 한국전 전사자들이 희생한 뜻을 ‘잊지 않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어떤 것인지를 다시 생각했다. 할아버지들과 아쉬운 작별을 하고 이날 저녁 런던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탔다.
방문하려던 25개국 중 앞으로 남은 나라는 22개국. 다음 방문지는 유엔 연합군과 맞섰던 상대편 진영의 나라, 러시아다.
◆한나 김은 누구= 한국전 참전용사인 찰스 랭글 전 연방하원의원(뉴욕)의 수석보좌관(2010-2016). 2008년 한국전의 의미를 되새기며 참전군인 감사를 표하고 한반도 평화를 염원하기 위한 청년단체 ‘리멤버 727(remember727)’을 결성하고 매년 7월27일 워싱턴DC 링컨 메모리얼에서 기념식을 마련했다. 2009년 ‘한국전 정전 기념일 법’ 청원을 주도했다.
◆후원금 접수처= https://www.generosity.com/volunteer-fundraising/thank-document-korean-war-vets-around-the-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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