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 수도 보고타 대통령궁에서 열린 공식 환영행사.
자유와 평화를 위해 67년전의 한국전에 참전했던 이들을 찾아 그들의 육성을 직접 담아내고, ‘잊혀진 전쟁’이 되지 않기 위해 당시의 이야기를 후세에 남기고자 전 연방의회 한인보좌관이었던 한나 김씨가 3개월 일정으로 전세계 24개국을 돌고 있다. 한나 김씨의 이번 전세계 한국전참전용사 방문기는 워싱턴 민주평통(회장 황원균)이 후원하고 있다. 그의 ‘한국전 참전용사들의 육성일기’를 본보에서 독점 연재한다. <편집자 주>
점점 잊혀가는 한국전쟁 기록 찾아
참전용사가 사는 24개 나라 방문
그들 살아생전에 ‘감사’의 말 전하고
소장 자료와 당시의 이야기 모아서
후세에 남기는 일, 시급하고 중요…
5만 마일의 참전용사 방문 여행 시작
‘90일 동안 지구를 두 바퀴 도는 여행’을 혼자 떠나겠다고 했을 때 가족과 친구를 비롯한 많은 주위 사람들이 “왜?”라고 물었다. 위험하다고 걱정하는 사람도, 한창 돈 벌거나 새 커리어를 위해 준비해야 하는 시기에 그렇게 시간을 허비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질타하는 사람도 있었다.
한.국.전.쟁.
누군가는 목숨을 잃었고 누군가는 가족을 잃었고 누군가는 기억과 건강을 잃었다. 전쟁 당사국인 한국인도 아니었고 미국이나 중국 등 한반도 분단과 전쟁의 책임이 있는 나라 사람도 아닌 ‘코리아’라는 나라가 어디 있는지도 몰랐던 백안의 청년, 검은 피부의 청년, 소녀티를 겨우 벗은 간호사,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아메리카의 청년들이 한반도의 전쟁을 멈추기 위해 전투에 참여했고 상당수가 희생당했다.
캐나다 참전군인과의 첫 만남.
70년이 지난 지금, 그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한반도에 대해 어떤 기억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했었다. 2016년 12월 연방 의회 보좌관 생활을 정리하고 워싱턴DC에서 부모님이 있는 LA로 돌아왔지만 곧바로 짐을 쌌다. 여행을 떠나기 전 기자회견 때 이번 여행의 의미를 이렇게 말했다.
“점점 잊혀가는 한국전쟁의 기록을 찾아 전 세계 참전용사가 사는 나라를 방문합니다. 그들에게 살아생전 ‘감사하다’는 말을 전해야 하고 소장 자료와 당시의 이야기를 모아 후세에 남기는 일은 시급하고도 중요한 일입니다.”
캐나다를 출발지로 시작하는 여행은 남미와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의 24개 국가를 방문하며 한국전 참전군인 할아버지, 할머니를 만나는 이야기로 채워질 것이다.
‘90일 간의 전세계 참전군인 방문기’ 를 써가면서 출발 전 받았던 “왜?” 라는 질문에 대한 더욱 정확하고 설득력 있는 답변을 찾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캐나다의 한국전쟁 기념공원에서 캐나다와 한국의 참전군인들과 함께.
첫 방문국 캐나다서 만난 참전용사들
전 세계의 한국전 참전용사분들을 만나기 위해 미국에서 첫 방문국인 캐나다로 떠났던 1월 19일 이후 3주의 시간이 흘렀다.
캐나다에 도착한 다음 날인 1월 20일 ‘캐나다의 꽃동네’로 유명한 온타리오주 브램턴에 있는 한국전쟁 기념공원(Wall of Remembrance)에서 캐나다 참전 용사들을 처음 만났다.
열 분도 넘는 캐나다 참전군인들이 참석해 점심을 함께 먹으며 한국전쟁 당시의 기억을 나누었다. 영하의 날씨에 아흔 살 고령의 참전군인 할아버지들과 손녀딸 벌의 어린 미국에서 온 한인 여성의 만남은 캐나다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캐나다 최대 방송국인 CTV에서 나와 참전 용사들의 만남을 취재해서 그날 밤 주요 뉴스로 방송했다. 토론토 참전용사 회장님은 다른 지역의 한국전 참전용사가 TV 뉴스를 보고 연락해 왔다면서 나의 캐나다 방문이 예전 전우들이 오랜만에 다시 연락하고 안부를 전하는 계기가 됐다면서 흐뭇해하셨다.
인터뷰에 응한 캐나다의 한국전 참전군인 할아버지들은 대부분 한국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한국 사람들이 도움을 받았던 것에 대한 은혜를 잊지 않고 참전군인들을 한국에 초청하는 등 은혜를 잊지 않는 행동에 감동했다며 눈물을 글썽 거리는 분도 계셨다.
어떤 할아버지는 너무나도 끔찍한 기억이 많아서 다시는 한국에 가고 싶지 않다고 말씀하시기도 했다. 평생 가슴 속 깊이 안고 살아오신 전쟁의 참혹함이 트라우마로 남아서 인터뷰 도중 오열하셔서 마음이 참 아팠다.
가장 인상에 남았던 콜롬비아 방문
1월 23일에는 남미의 유일한 한국전 참전국인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를 방문했다. 두번째 방문국인 콜롬비아는 가장 다시 방문하고 싶은 나라에 첫 손꼽힐 만큼 인상 깊었다. 마약과 범죄의 이미지가 강한 나라여서 걱정이 앞섰지만 참전군인 할아버지나 도움을 주신 분들, 그리고 콜롬비이의 한인들 모두 친철하고 따뜻하게 대해 주셔서 편안한 여행을 했다.
참전군인이 아직도 보관 중인 한국전쟁 소식을 보도한 캐나다 신문(왼쪽). 콜롬비아 카르타헤나의 거북선 조형물
인터넷으로 우연히 알게된 콜롬비아 여성이 대통령 궁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이었고 이 친구 덕분에 도착한 첫 날부터 대통령 궁을 방문했고 일반인은 갈 수 없는 국무부 안의 참전용사 기념관과 육군사관학교 안에 있는 참전용사 탑도 구경할 수 있었다.
이튿날엔 카르타헤나(Cartagena)를 방문했다. 한국전쟁기념관에 거북선 모형이 있어서 놀랐다. 카르타헤나의 참전용사분들은 콜롬비아 수도인 보고타에 사시는 분들보다 생활이 어렵고 가난한 분들이 많다고 한다. 국가의 지원도 받지 못했고 사무실도 너무 작아서 내가 오히려 그 협회에 200달러를 기부했고 점심도 대접했다.
마지막 날에는 대통령 궁에서 나를 위한 정식 행사가 열렸다. 보고타에 있는 한국전 참전용사 전원이 참석했고 나는 참전용사협회의 명예회원증을 받았다.
남미의 유일한 한국전 참전국인 콜롬비아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특별했다. 떠나기 직전 82세 할아버지께서 꼭 보여주고 싶은 곳이 있다고 데려가신 곳이 보고타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었다. 성당 한쪽 벽에는 한국전쟁에서 사망한 콜롬비아 군인의 이름이 새겨진 기념패가 걸려 있었다.
콜롬비아 정부나 보고타 참전군 협회에서 기부한 것이 아니라 아이젝 바가스 할아버지가 오래도록 모은 돈을 기부해서 만든 것이라고 했다. 바가스 할아버지는 16세 때 한국전쟁에 참전해서 온 몸에 총상을 입었고 20년 동안 20번의 대수술을 해야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한국전 사망자 기념패를 다시 보니 눈물이 흘렀다. 바가스 할아버지는 “평생 모은 돈을 기부했지만 하나님께서 다른 축복을 많이 내려주셨다. 오늘도 하나님의 축복을 경험했다. 너를 나에게 보내주셨으니까” 바가스 할아버지와 손을 잡고 한국전 전사자를 위한 기도를 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계속>
◆한나 김은 누구= 한국전 참전용사인 찰스 랭글 전 연방하원의원(뉴욕)의 수석보좌관 (2010-2016). 2008년 한국전의 의미를 되새기며 참전군인 감사를 표하고 한반도 평화를 염원하기 위한 청년단체 ‘리멤버 727(remember727)’을 결성하고 매년 7월27일 워싱턴DC 링컨 메모리얼에서 기념식을 마련했다. 2009년 ‘한국전 정전일 기념일 법’ 청원을 주도했다.
◆후원금 접수처= https://www.generosity.com/volunteer-fundraising/thank-document-korean-war-vets-around-the-world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