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에 소련군으로 참전한 러시아 할아버지 “한반도에 더 이상의 전쟁은 안된다”며 한반도 평화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보겠다고 눈물 흘리며 약속했다.
적국의 병사로 참전했던 그
한반도 평화 기원하며 눈물
첫날, 공항에서 억류되다. 상트페테르부르크(St Petersburg)
“여행 3주째. 육체적으로 피곤하지만, 진심으로 축복 받고, 감사하고, 감동이 가득한 날들이다.”
런던에서 러시아의 ‘유럽으로 열린 창’으로 불리는 상트페테르부르크(나는 영어식인 세인트 피터스버그 St. Petersburg로 읽는 것에 더 익숙하지만)로 가는 4시간의 비행 중에 쓴 메모다. 축복과 감사와 감동으로 가득한 마음으로 러시아의 두 번째 큰 도시이자 최대 항구 도시인 아름다운 상트페테르부르크 공항에 내렸다.
러시아 입성을 자축하는 의미로 입국 심사대에서 기념셀피(자가촬영사진)를 찍을 때만해도 러시아 경찰에 2시간 동안 억류될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세관 심사대에서 내 짐을 살피던 공항검색요원이 가방 속 약봉지들을 보고 나를 의심스러운 눈으로 보기 시작했다.
미국을 떠나기전 부모님이 정성스럽게 싸주신 비타민, 영양보조식품 그리고 말라리아나 항생제 등 처방전들이 길다란 검색 테이블 위를 가득 채웠다. 마약견이 내 약들의 냄새를 맡으며 ‘심사’하는 동안 나는 러시아 공항 경찰에 이토록 많은 약과 영양제를 가지고 있는 이유를 설명해야 했다. 마약견이 레모레이드 가루와 감기약인 데이퀼에서 한참 동안 킁킁 거린 후 괜찮다는 ‘신호’를 준 다음에야 나는 러시아에 정식으로 입국할 수 있었다.
영국의 시인 바드가 말했듯이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것”(All’s well that ends well)이라고 간단치는 않았지만 어찌됐건 러시아에 ‘무사히’ 입국했기에 러시아의 첫 날은 ‘운이 좋은 날’이라고 생각했다.
나를 위해 공항에 마중나와 준 러시아 미녀 다리아가 시내 중심에 있는 한국 식당으로 데려가 줬고 그곳에서 그녀의 직장 상사이자 민주평통 상트페테르부르크 노성준 지회장과 인사하고 맛있는 한국밥을 먹었다. 아침이면서 점심이며 저녁이기도 한 오늘 최고의 식사였다.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로 가기 전에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먼저 들린 것은 공산주의의 대표적인 상징인물인 레닌의 도시가 궁금해서였다. 1924년 레닌이 죽자 그를 기념하여 이 도시의 이름을 ‘레닌그라드’라 불렀다. 그 후 1980년대의 개방화가 진전되면서 약 70년 만인 1991년 옛 이름인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되찾았다.
모스크바로 떠나기 전날 새로운 친구인 타냐를 만났다. 걷기에는 너무 추운 날씨여서 타냐와 나는 그녀의 현대자동차를 타고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멋진 야경을 구경했다. 타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일제 시대인 1930년대 사할린 섬으로 강제 이주해야 했던 한국계 3세다.
일본의 패망으로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며 소련이 사할린 섬을 재점령했지만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은 1950년대 초반의 냉전과 강대국 사이의 정치 대립과 혼란으로 고향으로 갈 수 없었다. 결국 타냐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우즈베키스탄에 정착했고 이후 부모님은 러시아로 이주했다고 한다. 러시아에서 나고 자란 타냐는 한국말을 할 줄 몰랐고 한국이나 북한에 가본적도 없다고 했다. 북한에 대해 특별한 관심이 없다고는 했지만 구 소련 붕괴 등 어린 시절 공산주의를 직접 경험했기 때문에 북한에 태어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모스크바의 전쟁기념동상과 기념비 아래에서 러시아 청년들과 함께 ‘한국전쟁 희망자 추모와 한반도 평화기원 기념식’을 했다.
모스크바에서 한국전 정전기념식을 열다
러시아의 첫 인상은 까다로운 입국 절차였고 두 번째 느낌은 “너무너무 춥다”였다. 영하 22도로 떨어질 정도로 일 년 중 가장 추운 때여서 길을 걸으면 손가락 끝부터 점차 얼어붙는 기분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떠나는 날에도 눈이 내렸고 차에서 내려 기차까지 잠깐 걷는 것조차도 고통스러웠다.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잇는 러시아의 대표적인 고속열차 삽산(Sapsan)을 탄 4시간동안 꽁꽁 언 몸을 풀며 러시아의 진짜 방문 목적을 다시 생각했다.
한국전쟁 참전군인을 만나는 세계여행에 러시아를 포함한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했다. 러시아나 중국은 유엔 연합군이 아닌 적군인데 무엇에 감사하려고 방문하냐고 질문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에게는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는 ‘기억과 인정과 화해’라는 세 가지 절차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잊혀진 전쟁’이라 불리던 한국전쟁을 ‘기억’하는 것과 70년 전의 전쟁이지만 지금까지도 분단과 대립, 이산가족 등 아픔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정치적 신념을 넘어 다음 단계로의 도약을 위한 ‘화해’와 협력으로 이어져야 언제가는 진정한 한반도의 평화 통일을 이룰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유엔 연합군과 맞서며 북한을 도왔던 러시아와 중국을 방문하면서 내 지론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리고 러시아 사람들이 한반도 평화에 대해서, 그리고 북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 지 묻고 싶었다.
모스크바에서 만난 러시아인들은 ‘한반도 평화’와 북한과 관련한 내 질문에 “민감하다”고 답했다. 러시아가 한국전쟁에서 북한을 도왔지만 지금 북한은 핵개발을 고집하면서 국제사회의 ‘말썽꾸러기’가 됐다는 점에서 원망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북한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는 러시아의 청년도 있었다. 언론에는 북한의 나쁜 이미지가 많지만 직접 경험하고 보고나서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년에 북한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5박 6일의 방문의 절정은 마지막 날이었다
방문하는 나라마다 한국전 기념관을 처음 찾으며 방문 일정의 출발점으로 삼았지만, 러시아에는 한국전쟁을 기리는 시설이 전혀 없었다. 대신 러시아에서 알게된 청년들이 러시아가 참전한 해외 전쟁을 기념하는 비석과 동상이 있는 곳으로 가자고 제안해서 함께 갔다. 기차와 도보로 2시간이나 걸리는 거리였지만 너무나도 신비롭고 감동적인 장면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손가락이 얼어서 차표도 제대로 잡지 못하며 덜덜 떨며 도착한 그곳에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 비석들과 유엔 기념비, 그리고 히틀러에 대항했던 기념비가 함께 있었다. 그 중 소련, 미국, 영국, 프랑스 병사들 4명이 나란히 있는 동상 앞에서 걸음이 멈춰졌다. 심장에서 부터인지 얼어붙은 손끝에서부터인지 모를 곳에서 ‘뜨거움’이 감정으로 온몸에 퍼졌다. 저렇게 한때는 목숨 걸고 서로를 지켰던 사람들이 2차 대전 종전 후 5년이 채 안되서 한국전쟁에서는 적으로 싸웠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한국전쟁에서는 적이었지만 다시 친구가 되는 날이 오기를 빌었다.
저녁 7시 27분(한국전쟁 정전일인 7월 27일을 기념해서다) 러시아 청년 5명과 내가 기념비 아래서 촛불을 들었다.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에서 작은 모임이지만 한반도 평화를 기원하는 기념식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 아주 기적같고 감동적이었다. 러시아 청년들과 나는 웃으며 울며 미래를 이야기 했다. 우리는 한반도가 통일되면 다시 이곳에 모이자는 약속을 했다.
러시아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기억에 남는 장면은 참전 용사를 만나서 인터뷰한 것이다. 군사기계 전문가로 전쟁에 참전했던 할아버지는 한국전쟁의 많은 전투에 참전하셨다며 그때 기억을 말씀해 주셨다. 할아버지를 만나기 전에 적군이었던 미국에서 온 나를 어떻게 받아 들이실까 하는 걱정을 했지만 할아버지는 한국전쟁의 여러 전투에서 많은 동료들이 처참하게 죽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에 절대로 전쟁이 되풀이 되어서는 안된다며 한반도에는 평화가 와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할아버지는 “나같이 나이든 노인들은 이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한나같은 젊은 사람들이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 일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며 내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셨다. 헤어지기 서운해 하시던 할아버지는 다음에 내가 모스크바에 다시 오면 집으로 초청하시겠다면서 꼭 다시 만나기를 바란다고 하시면 “잘 다녀 오라”고 마지막 인사를 하셨다.
캐나다와 콜롬비아에서 처럼, 상트페테르부르크나 모스크바에서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위원들이 나의 방문이 마치 자신들의 일인 것처럼 꼼꼼하게 챙겨주셔서 세계 방문 일정이 순탄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런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한반도 평화통일이 가까워질 것이라는 소망과 희망을 가지고 나는 내일 스웨덴으로 떠난다.
◆후원금 접수처= https://www.generosity.com/volunteer-fundraising/thank-document-korean-war-vets-around-the-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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