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의 버지니아주 변호사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 1년에 12학점을 취득해야 되는 번거로움을 마감날인 10월1일이 다가올수록 더욱 버겁게 느낀다. 지난주 컴퓨터 화상을 통해 들은 1학점짜리의 내용은 ‘법률의 국제화’로서 외국 유학생들이나 교환 방문객들을 고객으로 만나게 되는 미국 변호사들이 유의해야 할 사항들을 미네소타 대학의 유학생센터에 근무하는 두 명의 변호사가 토의하는 내용이었다.
제일 중요한 점으로는 문화의 차이를 이해하라는 것이었다. 예로써 한 강사는 자기가 중국 대학 초청으로 세미나를 하러 가면서 선물을 사가기 위해 교내 중국인 직원에게 물어본 경험을 이야기했다. 미네소타 대학 이름이 찍힌 조그만 달력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달력은 받는 사람이 그해에 죽을 것이라는 예고로 받아들일 수 있어 안된다는 대답이었고, 역시 대학이름이 들어간 편지봉투 개봉용 조그만 칼은 받는 사람이 주는 사람 손에 찔려 죽는다는 암시가 된다고 해서 다른 것을 골랐다는 경험담이었다.
유학생들, 특히 아프리카나 아시아에서 오는 사람들은 자녀교육에 있어서의 체벌문제에 신경을 써야 한다. 계부나 계모가 아닌 친부모와 자식사이라도 말 안듣고 속을 썩이는 자식 이라고 자기 고국 관습대로 회초리나 혁대를 휘둘렀다가는 아동학대죄로 감옥에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이번 세미나에서 들은 것은 아니지만 옆집의 귀엽게 생긴 아이를 보고 한국의 할아버지나 할머니 식으로 “야, 너 참 귀엽게 생겼구나. 고추 한번 만져보자”고 했다가는 성학대죄로 실형을 받을 수 있는게 미국이다.
한 시간짜리 세미나를 듣자니까 52년전 내가 유학 왔을때 문화의 차이를 몰랐거나 무시했기 때문에 경험한 불이익을 회상하게 되었다. 대부분 대학원 유학생들은 학생비자인 F-1으로 미국에 왔지만 나의 비자는 J-1이었다. 동아일보 외신부 기자 시절 풀브라이트 장학생 시험에 합격되어 학교 선택조차 내 손을 거치지 않고 스탠포드 커뮤니케이션과로 정해진 소위 교환 방문객 신분이었기 때문이다. 왕복 여비와 수업료는 물론 한 달에 205달러씩 생활비도 지급되는 조건에다가 J-2 비자로 몇 달 후 나와 합류한 아내도 취업자격이 있었기에 밤잠을 설치고 책과 씨름하는 고역 말고는 호사스러운 유학이었다. 단 공부가 끝나면 적어도 2년은 귀국해서 활동한 다음에나 다시 미국에 올 수 있다는 조건이 있기는 했다.
그런데 당시 스탠포드에는 매스 커뮤니케이션 분야에 있어서 세계적 석학이었던 윌버 슈람 석좌교수가 있었다. 그의 저서가 얼마나 여럿이고 그의 연봉이 다른 교수들과 비교가 안 되었든지 이태리의 스포츠카 페라리를 몰고 다니던 멋쟁이 노신사였다. 내가 그의 국제 커뮤니케이션이란 세미나를 이수중 물어볼 내용이 있어 그의 학생 면담 시간중 그의 연구실에 들르면 그가 “What can I do for you, Mr. Nam?”하고 묻곤 했다. 한국에서 막 도착한 것이나 마찬가지라서 미국 문화를 전혀 몰랐던 나에게는 그의 질문이 “용건이 무엇인지 빨리 말하고 나가주게”라고 감지되었다.
한국식으로 날씨부터 시작해서 가족 안부 등 이 이야기 저 이야기 등 담소하다가 본론으로 들어가는 문화에 젖어온 26세 청년의 무지와 오판 때문이었다. 슈람 교수의 말을 진정 도와주기 위한 질문으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상술한 것처럼 한국의 관습으로 윤색하여 오해했으니 내 대답이 제대로 나올리 없었을 것은 분명하다. 어찌되었건 그의 인도출신 제자들은 파리의 유네스코 본부나 기타 좋은 학교로 추천되어 나갔지만 나는 학문적으로 별 볼일 없어진 이유 중 하나가 슈람 교수의 “What can I do for you?”를 완전히 곡해했기 때문이라고 확신한다. 슈람이나 다른 교수들과의 가까운 인간관계를 구축하지 못했던 나의 학창생활은 또한 미국 습관을 거의 일부러 무시한 나의 옹고집 탓이기도 하다. 슈람 교수나 다른 교수들은 대학원 학생들을 성이 아니라 퍼스트 네임으로 부르곤 했으며 또 학생들도 몇년이 지나면 교수들을 퍼스트 네임으로 부른다. 그러나 나는 계속 교수들을 성씨 옆에 교수님을 붙여 부르곤 했기 때문인지 교수들도 나를 한번도 “선우”라고 부른 적이 없이 미스터 남으로 불렀다.
결국 교수들과의 친밀한 관계가 아닌 거리를 두는 관계였기에 소위 출세에 지장이 있었을 것이라고 회고한다. 또 나의 옹고집 중 하나는 반세기 이상 미국에 살면서도 누가 포옹(Hug)를 하자고 나오면 선뜻 응하지 못하는 자세다. 그러고 보면 꼭 한국에서보다 두 배 길게 미국에 살았으면서도 미국 문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이방인 신세가 아닐 수 없다.
<변호사 MD, VA 301-622-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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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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