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 2.0’ 시대를 전망-시험대 선 한미동맹
▶ 경제난 중 제대로 다룰 적기 판단
▶ 트럼프, 강한 대중 드라이브 예고
▶ 한국 이 시점 활용 새 외교 세팅을
전 세계가 트럼프 2.0 시대를 맞게 됐다. 트럼프는 그로버 클리블랜드(Grover Cleveland) 대통령 이후 131년 만에 ‘징검다리 집권’에 성공한 미국 대통령이 됐다. 더욱 강화된 트럼피즘으로 국제사회 곳곳에서 불협화음이 예견된다. ‘1기 트럼프’ 시기의 학습경험을 감안하면, 그래도 그의 정책이 예측 범위에 있다는 반론도 있다.
▲우려되는 ‘한미일 협력체제’ 약화 가능성
바이든 행정부에서 한국의 외교적 성과는 상당한 수준이었다. 한미동맹 70년을 계기로, 양국의 공동 이익은 전례 없는 수준으로 포괄성을 확보했고, 전통적 안보 및 비전통적 안보 위협이 두드러진 현 국제질서에서 매우 적극적인 협력 체제를 구축했다.
한국의 글로벌 지위 향상은 한미동맹 70년 성과의 요인이면서 동시에 결과가 되었다. 한미일 협력 시스템을 일궈 냈다는 점 역시 우리 외교가 한 단계 차원 높은 곳을 지향했다는 증거다.
한미일 3국협력은 아시아·태평양 국가 중에서 가장 앞선 경제와 민주주의를 이룩한 국가들의 협조체제인 만큼, 누구도 한국의 국제적 지위에 토를 달지 못하게 됐다. 사실 아시아 50여 개 국가 중에서 근대 국가가 설정한 두 개의 목표, 경제성장과 정치발전을 모두 달성한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이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이룬 우리의 외교적 성과는 트럼프 집권 2기에 어떤 운명을 맞을까. 전례 없는 미중 전략경쟁, 북한의 러시아 파병, ‘글로벌 사우스’로 상징되는 일종의 반미 연대의 확산 그리고 미중 사이에서 포지셔닝 안착이 어려운 한국 외교는 위협 요인이다. 이런 요인들이 상승 작용을 일으켜 우리에게 불리하게 전개된다면, 한미동맹 및 한반도 문제의 방향성이 흔들릴 수 있다.
▲미중 ‘양자 얽힘’ 해법이 한국의 활로
이런 위험요인을 바탕으로 글로벌 질서 및 한미동맹의 미래를 진단한다면, 대체로 세 가지 차원에서 분석하고 관련 해법을 고민해야 한다.
첫째, 트럼프 당선자가 선거 과정에서 주창했던 “당선되면 24시간 안에 러·우 전쟁을 끝내겠다”는 부분이다. 공화당이 거둔 “레드 스윕(Red Sweep)”이라는 여대야소(與大野小)로 인해 하루빨리 전쟁을 끝내고 싶은 트럼프의 의중은 고스란히 미 의회에 반영될 것이다. 이는 의회의 우크라이나 지원 승인을 어렵게 만들 것이고, 속단할 수는 없지만 우크라이나를 다소 불리한 입장에서 종전 및 평화협상에 나서게 할 수 있다.
북한의 파병으로 러·우 전쟁의 향방은 한반도 안보에도 직접적 영향을 미치게 됐다. 북한은 러시아로부터 다탄두 미사일 및 핵잠수함과 같은 첨단 기술은 물론이고, 러시아를 통해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로의 외교 진출까지 꾀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북한 문제를 다루는 한국과 미국의 고민이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다자외교에 흥미가 없는 트럼프의 스타일로 볼 때, 미국의 손실과 연관된 사안이 아니라면, 북한의 글로벌 사우스 참여를 제지하지 않을 수 있다. 북한이 최근 공공연하게 남북 사이에 ‘적대적 두 국가론’을 강조하고 있으니, 북한의 독자적 외교공간 확보에 국제사회가 느낄 부담감은 줄어들 수 있다.
둘째, 대중국 관계 및 한미중 관계다. 트럼프의 공약에는 대중 투자 금지, 중국 상품에 대한 추가 관세 부가, 동맹국들의 대중 투자 제한 등 전방위적 내용이 담겨 있다. 트럼프는 취임 이후 어떤 형태로든 이런 공약에 드라이브를 걸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표현으로, 글로벌 경제 네트워크가 가히 ‘양자 얽힘(Quantum Entanglement)’ 수준의 난맥상을 보이고 있어서, 미중 무역전쟁의 결과가 누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가늠하기는 어렵다. 다만, 중국이 저성장 기조를 보이고 국내 정치적으로도 여러 문제가 불거져 나오는 지금이야말로, 중국을 제대로 다룰 최적의 기회라는 게 트럼프와 참모들의 생각이다.
한국으로서는 이 시점을 한미중 사이의 안정적 외교관계를 세팅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전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미국과 중국 모두를 내 편으로 끌어들여야 하는 한국 외교의 고민을 풀어내야 한다. 소위 ‘2+2’로 불릴 수 있는 ‘한·미·중 정책협의회’가 그 해답이 될 수 있다.
협의체를 만들 수만 있다면, 한반도 문제를 다루는 우리 입장은 더욱 단단해질 것이다. 안보와 경제 문제를 함께 논의하는 차관급 정도의 3국협의체를 출범시킬 수 있다면, 한반도와 동북아 안보 환경에 획기적 전기가 마련될 것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중국을 강하게 압박하면서도 공존의 공간을 찾을 것이라는 차원에서, 한미중 외교 관계 상시화를 우리의 어젠다로 만들어야 한다.
셋째, 트럼프 행정부 2기에서 북한 김정은을 상대로 또 한번 과감한 딜을 시도할 가능성에도 대응해야 한다. 미국과 북한 간의 또 다른 정상회담은 2019년 하노이 회담의 실패를 기준으로 생각해 볼 수밖에 없는데, 지난 5년간 북한 핵무력은 더욱 고도화되었고, 한국과 미국을 향한 김정은의 적대심도 더욱 커진 게 사실이다.
‘고도화’와 ‘적대감’이 높아진 만큼 트럼프 대통령이 감당해야 할 문턱이 높아진 것이다. 외교와 ‘거래’를 동일한 의미로 받아들이는 트럼프의 입장에서, 대북 딜이 매력적이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더구나 향후 1년 안에 우크라이나 전쟁 혹은 중동 문제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낼 수 있다면, 트럼프 입장에서는 가능한 그 모멘텀을 향유하는 게 중요하지, 북한이나 대만 문제로 인해 스스로 외교적 난제를 만들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김정은이 큰 보상을 요구하는 대신, 트럼프에게 북한의 자원을 포함한 상당한 수준의 이권을 제안한다면, 혹시 세상일은 또 모를 일이다.
확실한 건 ‘한미동맹’이라는 명목으로 우리가 부담할 비용이 훨씬 커질 것이라는 점이다. ‘가치와 규범’이 한미는 물론 국제사회를 연결하는 고리라는 생각은 접어둬야 할 수도 있다. 이스라엘과 미국이 가치를 공유하는 관계라서, 트럼프가 이스라엘만을 싸고돈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합의한 SMA(한미 방위비분담금협정)도 어떻게 될지 장담하기 어렵다는 전문가들이 다수이고, 대규모 합동군사훈련이나 미국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트럼프의 재등장으로 복잡해진 여러 사정에도 불구하고, 한미동맹은 한국의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외교안보 자산이라는 점은 불변의 사실이다. 우리로서는 경제와 민주주의라는 두 개 목표를 모두 달성한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미국의 입장에서도 소중한 외교적 동력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만들어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트럼프가 한국을 ‘현금 인출기(cash machine)’라고 칭했지만, △미중갈등 심화 △한미일 전략적 가치 △한미 간 인태전략 공감대 등을 감안하면 트럼프 시대에도 한미동맹은 미국에도 상징적 의미가 크다.
외교 관계에는 원심력과 구심력이 늘 함께 작용하기 마련이어서, 한미관계에 놓인 다양한 이슈들을 관리하는 우리의 정교한 노력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차제에 한국의 외교 자율성을 증대하는 지혜가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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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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