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의 이름은 수명이 참 길다. 그의 27년의 짧은 생애는 하나의 맑은 유리상자 안에 들어있는 것 같다. 들여다 보면 나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그의 삶이 시였습니다. 시인은 자신이 시가 먼저 되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쉽게 씌여지는 시’는 그에게는 아주 쉬웠습니다.” 라고 지난 토요일 조지메이슨 대학에서 있었던 윤동주문학제에서 축사자 한분이 말씀하셨다.
그의 시 ‘별헤는 밤’에는 ‘이름’이라는 단어가 8번이나 나온다고 기조연설이 상기시켜 주었다. 윤동주는 시를 일기(日記)처럼 썼다. 시 밑에 날짜를 꼭 적었다. 이 시의 날짜는 1941년 11월 5일이다. 일본유학을 하려면 이름을 일본이름으로 바꾸어야 한다. 깊은 고뇌의 시간이었다. 창씨개명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5일 후 ‘참회록’을 쓴다.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만 24년 1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1945년 2월 26일, 만주에 사는 가족은 그의 사망 전보를 받는다. 시신을 인도하러 간 부친과 삼촌 앞에는 수줍게 웃음을 띈 건장한 청년, 윤동주가 아닌 한 줌의 재가 있었다. 옥살이를 같이 하던 사촌 형 송몽규를 만났는데 그 몰골이 너무나 초췌하다. 매일 이름 모를 주사 맞는다고 한다. 4일 후 송몽규도 사망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가 없는 80여년을 살았다. 여전히 높은 파고로 출렁이는 격량의 역사였다. 한반도의 분단, 4.19, 군사 독재, 5.18… 때로는 침전하다가 그 만큼 또 솟아 오르며 생존의 파도를 꼭 붙잡고 살아왔다. 그런데 문득, 돌아보니 조국의 위치가 달라져있다. 문화강국, 경제강국, BTS, 오징어 게임, 기생충, 냉장고와 휴대폰 등으로 조국은 지구촌 인류의 일상속에 깊숙히 스며들어 있다.
윤동주가 별을 세던 밤하늘을 올려다 본다. 밤의 어두움은 저 멀리 밀려나 있고 고층 아파트 불빛과 가로등, 자동차의 물결이 대낮 같다. 별이 없는 하늘 아래서 우리의 아이들은 어떻게 꿈을 꾸나. 맑은 물, 맑은 공기, 비옥한 땅은 상품화되어 있고 지구의 하늘과 산과 들과 바다와 생명들은 플라스틱과 화학물질로 죽어가고 있다. 그런데 누구도 부끄럽다고 말하지 않는다.
윤동주문학제는 벌써 4회째 열린다. 윤동주를 우리보다 더 사랑하는 세계인들이 점점 많아진다. 몇분을 기조연설자로 모셔왔다. 그런데 금년에는 특별한 손님을 모셨다. 미국대학에서 한국을 공부하는 젊은이다. 이 학생은 American University의 학생을 대상으로 워싱톤윤동주문학회가 실시한 ‘동주문학상’의 수상자이다. 그는 ‘서시에 대한 성찰’이란 제목의 수필을 낭독해 주었다.
워싱턴 윤동주 문학회는 2006년 1월 7일 ‘윤동주문학사상 선양회’로 20여명의 회원으로 시작했다. 그의 사망 61년만에 지구의 반대편 세계의 심장, 워싱턴 지역에서 그의 이름을 기리는 문학단체가 생긴 것도 놀라운데 벌써 18년이나 지났다. 수상학생을 추천한 교수님은 ‘‘K-문학’을 세계에 펼칠 때’가 되었다고 한다. 한국 관련 과목을 듣는 전공, 비전공 학생수가 미국 전 지역의 대학에서 갈수록 늘어난다고 한다. 워싱턴 지역만 하더라도 조지 메이슨 대학은 한국학 전공 학과가 있어서 약 200여명의 학생이 택하고 있고 아메리칸 대학에도 부전공이 설치되었다.
축사자는 윤동주의 시비가 연세대학교 “그가 살았던 기숙사 앞 비탈길에 서 있음”을 주지하라고 하신다. 그의 삶이 비탈에 서 있었듯 2024년을 사는 인류의 생존도 비탈에 서 있다. 지구촌의 커다란 두개의 전쟁, 기후변화, 초고속으로 달리는 기술사회, 그만큼 빨라지는 가치체계의 격차, 휴머노이드의 출현. 반면, 우리에겐 기쁜소식도 있다. 2024년도 노벨문학상은 53세의 여린 한국 여성에게로 왔다. 얼마나 기다리던 노벨상인가? ‘역사적 트라우마를 직시하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한 시적 산문’으로 그녀는 이미 스러져 사라진 한맺힌 사자(死者)들에게 목소리를 주었다.
이젠 힘센 사람이 상을 받지 않고 약한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 상을 받았으면 좋겠다. ‘K-문학’ 차례이다. 스웨덴 아카데미가 한강을 찾아낸 것처럼, 시인이란 소리를 들은 적도 없지만 일기처럼 시를 쓴 부끄럼 많은 윤동주의 여린 목소리가 ‘K-문학’으로 지구 구석구석으로 스며들었으면 좋겠다. 어쩌면, 이 일이 비탈에 선 인류를 살 수 있는 곳으로 가는 길을 가리켜 줄지도. 밖에서 들리는 커다란 소리가 아닌, 마음속에서 지속적으로 울리는 작은 목소리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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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영 워싱톤윤동주문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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