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송화 꽃씨를 도둑해 온 적이 있었다. 자주 들르던 화원에서였다. 계절은 가을로 치닫는데 여름내 누구에게도 선택되어지지 못했던 화분들이 한쪽 구석에서 시들어가고 있었다. 그 속에서 채송화를 발견했다. 반가움이 와락 하고 달려들었다.
채송화는 한해살이의 정해진 생명을 마무리하고 있는 중이었다. 늦은 감이 있이 피워 놓은 몇 송이의 꽃빛이 참으로 고왔다. 꽃을 오므린 자리마다에는 도토리 모자 같은 씨앗이 달려 있었다. 손가락으로 건드리니 아주 작은 꽃씨들이 터져 나왔다. 나는 엉겁결에 까만 꽃씨들을 모아 주머니에 넣었다.
이듬해 가을, 무심코 손을 넣었던 스웨터 주머니에서 만져진 꽃씨들을 뒤뜰 흙 위에 털어 버렸다. 추운 계절이 지나고 봄이 찾아왔다. 뒤뜰에 나가보니 붉은 빛을 띤 낮선 싹들이 무더기로 올라와 있는 게 보였다. 작은 나비떼 같은 싹의 모양이 밥풀때기처럼 변할 때쯤에야 나는 그것들이 채송화임을 알아챌 수 있었다. 도톰한 줄기가 새 발자국처럼 가지를 뻗더니 마침내 그때의 그 꽃빛을 고스란히 간직한 꽃들을 피워냈다. 이듬해도 또 그 이듬해도 꽃들은 씨앗을 터트려 저절로 꽃을 피워냈다.
올해도 채송화가 피었다. 채송화는 아주 오래된 기억의 꽃이다. 장독대 돌 틈이나 담장 밑에서 피던 그 꽃을 할머니는 뜸북꽃이라 부르셨다. 뜸부기가 울 때쯤이 되면 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일 것이다. 읍내로 이사 가고부터는 어머니의 채송화를 보며 자랐다. 어머니의 채송화는 어머니가 빨래를 마칠 시각쯤에 피어나곤 했다. 젖은 빨래가 무거워 부드러운 곡선을 그으며 늘어져 있던 빨랫줄 밑에서 피어났다. 톰방톰방 빨래에서 떨어지는 물을 받아먹으며 피어났다.
채송화, 촌스러운 듯 한 그 꽃잎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내 유년의 마당 끝이 생각난다. 그 돌담 밑 꽃밭에서 여름마다 피고 지던 봉선화, 백일홍, 맨드라미, 분꽃이 생각난다. 하이타이 거품이 구름처럼 부풀어 오르던 어머니의 빨래 함지박이 보인다. 샘가에 틀어두었던 트랜지스터라디오가 생각난다. 김세원의 그윽한 목소리로 시작하던 아침 음악방송이 생각난다. 어머니의 푸르던 팔뚝이 생각난다.
발길이 드문 뒤뜰에서 자기들끼리 피었다가 지는 채송화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꽃망울을 매달기 시작한 채송화 몇 포기를 앞뜰로 옮겨 보았다. 새로운 땅에 뿌리를 잘 내리라고 흙을 꼭꼭 눌러주고 물도 듬뿍 뿌려 주었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채송화에게로 먼저 가보았다. 이틀이 지난 다음, 채송화 줄기가 남김없이 사라져버린 사건이 일어났다. 잘라져 나간 줄기의 마디마다 하얀 수액이 상처처럼 맺혀 있었다. 사슴의 소행이었다. 펜스가 있는 뒤뜰은 꽃들에게 안전지대였지만 앞뜰은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뿌리에 붙은 흙덩이까지 뒤집혀 있는 채송화 포기들이 가여웠다. 뒤뜰 제자리의 식구들과 같이 살았더라면 당하지 않아도 될 수난이었다.
현관 외등의 촉수를 더 올려놓고 사슴의 접근을 막아보려 했지만 허사였다. 한 차례 더 줄기를 뜯기는 사건이 생기고부터는 어두워지면 덮개를 덮어주기로 했다. 깜빡하고 잊은 날에는 자다가도 놀라 일어나서 앞뜰로 나갔다. 덕분에 밤의 뜰에서 풀벌레 소리를 듣기도 하고 소나기를 만나기도 했으며 하루만치의 살이 오르고 있는 달을 목격할 수도 있었다.
뒤뜰의 채송화들은 무성하게 꽃을 피워댔지만 앞뜰의 채송화는 가느다랗게 줄기만 웃자라 올릴 뿐 꽃을 피우지 못했다. 그 모습이 나고 자라던 땅을 떠나 낯선 땅으로 옮겨온 이민자의 모습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만 길게 뽑아 올리며 자라는 채송화의 모습이 삶의 균형 없이 앞으로 내닫기만 했던 내 모습과 닮은 듯해 더 애착이 갔다. 과연 꽃을 피우기나 할 수 있을지 아침저녁으로 들여다보며 꽃의 기별을 기다렸다.
며칠 전 이른 아침에 물 조리개를 들고 앞뜰로 나가보니 옅은 햇살 속에서 채송화가 피고 있었다. 분홍과 하양, 주홍의 꽃들이 작은 연등처럼 제각기의 빛깔로 피어나고 있었다. 작고 여린 꽃들이었다. 송이도 작고 꽃잎도 아주 얇았지만 내겐 아주 귀하기만 한 꽃들이었다.
과거에 대한 기억 없이는 어떠한 아름다움도 없다고 했다. 내게 채송화가 더 특별한 이유는 머언 기억 저편에서 피고 졌던 여름 꽃들에 대한 기억 때문일 것이다. 아버지의 탯줄과 나의 탯줄이 묻혔을 유년의 마당 끝에서 피어나던 그 꽃들 말이다. 흔하고 하찮았던 한해살이 꽃들이 햇볕을 향해 꼿꼿이 일어서던, 그 원초적 생명력을 보고 자란 까닭일 것이다. 나는 그 오래된 기억의 삽화 위에 터무니없이 줄기만 키운 채송화 몇 포기를 그려 넣어본다.
유난히도 더운 여름 밤, 로시니의 현을 위한 소나타 3번을 들으며 잠을 청해본다. 오래 전의 아침 마당에 울려 퍼지던 음악이 나를 채송화 피던 샘 가로 데려간다. 그 샘 가에 엎드려 엉덩이를 하늘로 향한 채 비누거품을 묻히고 머리를 감는 소녀가 보인다. 꽃밭에 거꾸로 피어 있는 채송화들이 소녀를 어지럽게 한다. 놋대야 맑은 물속에 색색의 채송화 꽃잎들이 잔영으로 떠 있다. 그 출렁이는 꽃잎들 속에 머리칼을 담구며 어지럼증을 즐기는 한 소녀가 보인다. 한여름 밤이 깊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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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미 수필가 /포토맥,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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