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돼지 뒷다리를 염장해 숙성시킨 명물 하몬에 1불짜리 생맥주 한 잔의 맛
▶ 마드리드에서 아빌라, 살라망카로 향하면서
마드리드의 새끼 가이드 마드리드 비행장에서 입국수속을 마치고 나오자, 비행장에서 모두 모이는 호텔까지 가도록 한 한국가이드가 나를 맞이하였다. 자기는 마드리드에 박물관과 축구장만을 가이드 하는 ‘새끼 가이드’ 라고 했다. 아마도 한국관광객이 많아 이제 가이드도 분업화 했는지도 모르겠다. 장식이 아주 동양적으로 아늑한 어번(Urban) 호텔에 여장을 풀고 저녁 모임시간까지 시내를 돌아 다녔다. 17년 전에 마드리드를 왔었는데 그동안 많이 변한 듯 했다. 솔 광장 앞에 섰다. 그 광장에 자그마한 호텔이 있었고 헤밍웨이가 마셨다는 2층 카페에서 칵테일 한잔을 했었는데 그런 호텔이 안 보인다. 변한 것인지, 내가 잘못 기억하고 있는지 아리송하다. 다시 마요르 광장을 찾았는데 이곳 역시 전혀 기억이 안 난다. 좁은 골목으로 가서 플라맹고 춤도 구경을 했었는데 말이다.
그러다가 이곳 사람들 틈에 끼어서 거닐다가 영국식 펍(pub)도 아니고 카페라고 할 수도 없고 어찌 보면 지붕이 있는 포장마차 같은 곳에 들어갔다. 돼지 뒷다리를 염장하여 몇 년 동안 숙성시킨 스페인의 명물 하몬(Jamon)을 얇게 썬 한 접시가 약 10달러. 생맥주 한 잔에 약 1불이다. 두세 명씩 모여서 서서 떠들어 대며 마시고 있었다. 연인들, 친구들, 즐거운 대화를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그냥 그 분위기가 좋아 맥주를 몇 잔을 들이켰다. 흑돼지 스테이크와 와인 드디어 우리 여행팀의 첫 출발이다. 첫 스타트부터 좋았다. 축구의 명문 레알 마드리드 축구장 Vip 석에서는 시합이 없는 날 예약을 받아 저녁 식사를 제공한다. 어찌 이 힘든 곳에 예약을 했는지, 우리는 이곳에서 저녁을 즐겼다. 메뉴는? 휴우… 도토리만 먹고 자란 소위 리베리코 흑돼지 스테이크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적포도주를 곁들여 먹는 그 맛은 한마디로 환상이었다.(정식 이름 Iberian sirlon w/red wine sauce이고, 그날 또 하나의 다른 메뉴인 salmon w/Iemongrass 가 있었지만 흑돼지 스테이크가 단연 최고이었다)
프랑코의 쿠데타 다음날 아침 아빌라(Avila) 성으로 떠났다. 마드리드를 떠난 지 얼마 안 되어서 언덕위에 거대한 십자가가 보인다. 전몰자의 계곡으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프란치스코 프랑코 총통의 승전기념탑이자 그의 무덤이다. 잠시 영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가 생각난다. 그러면서 오늘날의 가치관으로 무엇이 정의이었는지 생각하게 한다. 1936년 사회주의 정부인 ‘인민전선파’ 선거에서 승리하자 프랑코가 쿠데타를 일으킨다.
내전이 시작된다. 한쪽에선 ‘군사 쿠데타와 맞서 공화국을 지키려는 투쟁’이라하고 한쪽에선 ‘무신론 공산주의에 맞선 로마 가톨릭 국가의 수호자’라고 한다. 명분은 제쳐 두고 어찌되었던지 프랑코의 군사 정권이 승리했다. 그리고 프랑코가 1975년 사망할 때까지 아주 오래 동안 그의 정권이 이어져 왔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스페인에는 사회주의, 우익 보수의 정당이 존재한다. 그러나 사회주의자들이란 영화에서 기관총을 쏘아대던 배우 게리 쿠퍼의 그 공화파의 후예가 아니라 프랑코 품안에서 자란 사회주의자들이다. 스페인은 옳은 길을 걸어 왔는지? 그리고 프랑코는 내전 때에 20-30만 명이 유럽으로 망명할 만큼 독재자로 기억 될 것인가? 아니면 2차 세계대전에서 줄타기로 전화를 모면하게 해서 전쟁 희생자를 내지 않은 것으로 기억 될 것인가? 무엇이 옳은 것이었는지? 한참 생각에 잠겨 있는데 버스가 어느 사이에 언덕에 섰다.
유네스코 문화유산 아빌라 성아빌라 성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소위 ‘4 기둥의 정자(Los Cuatro Postes)’이었다. 아빌라 성은 도시 자체가 그 안에 있는 대성당과 함께 유네스코의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건축물이 로마네스크와 고딕 양식으로 잘 보존되어 있는가 하면, 스페인 전역을 지배하던 이슬람 세력에 대항하여 군사를 일으킨 알폰소 6세가 이곳에서 발진하여 이슬람 세력을 소위 리베리아 반도에서 몰아낸 시발점이기도 한 역사적인 곳이기도 하다. 우리는 다시 버스에 올라 이제 아빌라 성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대성당 등 건축물과 성녀 테레사 수녀의 발자취를 쫓는 기행을 시작했다. 그날 점심은 아빌라에서 먹었다. 메뉴는 아빌라 갈비 스테이크, 스페인은 남부 평야와 북부 산간지방으로 대별 할 수 있다. 그리고 아빌라가 산간지방의 관문정도이다, 이 지역에서 자연스럽게 방목으로 자란 소고기가 아주 유명하다, 고기에 소위 마블(marble)이 없다. 그냥 뻘게 보인다. 아 그 맛이란….
이슬람세력과의 최전선 드디어 아빌라 성 안으로 들어섰다. 아빌라 성은 카스티야 레온 주의 주도이며 약 60만 명이 사는 해발 1100미터 높이에 있는 도시로 성 전체가 유네스코 보존지역이다. 스페인은 남부 넓은 평야에 안달루샤라고 불리는 곡창 지역과 북부의 산악지대로 구분되는데 중세기에 이슬람 세력이 안달루샤 지역을 지배할 때에, 기독교 세력이 이슬람 세력과 대치하는 방어와 차후 이슬람 세력을 리베리아 반도에서 몰아내는 출발점이 바로 이 아빌라 성이다.
그리고 그 역사 가운데에 알폰소 6세(Alfonso VI of Leon & Castille)가 있다. 그는 세력 확장을 크게 하고 1107년에 전 스페인 황제라고 스스로 칭했다. 그리고 유럽의 변방이었던 스페인에 전통의 유럽문화를 대대적으로 유입하고, 문자까지 서고트족 글자에서 그리스의 키롤링거 글자로 바꾸는 등은 물론 건축양식도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짓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오늘까지 남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곽 등 건물과 로마네스크와 고틱 양식이 혼합된 대성당이 이곳 아빌라에서 최고의 그리고 최대의 볼거리이다.
로마네스크는 10세기에 로마시대 집회장소 바시리카에서 십자가 형태로 변화를 하여 성당으로 시작한 건물 양식이나 천장과 창문이 투박하고 작고 비효율적이다. 12세기에 이르러 이를 개량한 것이 고딕 양식이다. 전문가가 아니라 딱 말하기는 어렵지만 외부는 로마네스크 양식 같으나 들어가서 보니 대성당 천장과 콜로이스터(coloister) 등은 이미 로마네스크 양식에서 벗어나 아름다웠다.
성녀 테레사의 자취 그리고 또 하나의 볼거리가 이곳 아빌라에 있다. 16세기의 성녀 테레사(Teresa de Ahumada ) 수녀의 발자취이다. 그는 승모승천 대축일에 성모 마리아에게서 카르멜리 목걸이를, 그리고 성 요셉으로 부터는 하얀 망토를 입혀주는 환시를 보았고, 천사로부터 불이 붙은 창으로 찔리는 아픔을 체험하였다 하며 교황 그레고리 13세로부터 1562년에 카르멜 수녀원 설립을 허가 받았다. 그 후 그는 1567년 남자들의 수도원 가르멜 수도원도 열도록 하여 15개의 여자 수도원, 17개의 남자 수도원을 열었고, 성인으로 추대 된 분이다. 이곳 아빌라에는 테레사 수녀님이 다니던 성당, 그리고 테레사 수녀님이 세운 성당들을 볼 수 있었다. 물론 여러 그림, 조각, 유품도 함께 말이다. 반나절이라는 짧은 방문을 마치고 우리는 스페인에서 1218년 알폰소 9세의 의해 시작된 그래서 가장 역사가 긴 대학이 있는 살라망카(Salamanca)로 향했다.
마요르 광장 먼저 도착해서 스페인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그래서 건축미를 자랑하는 마요르 광장(Grand Plaza Mayor)을 찾았다. 이곳은 17세기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가와 프랑스의 부르봉 왕가 간에 7년간 왕위 계승권을 가지고 전쟁 끝에 프랑스의 부르봉 왕가가 승리하자 그를 지지했던 살라망가를 위해서 지었다고 한다. 물론 그 웅장함과 아름다운 건축미에 감탄을 하였지만 내가 가장 감명 깊었던 것이 있었다. 일층 아치 형 문 위로 기다란 띠의 공간이 있었는데 이곳에 스페인의 역사적 인물들이 촘촘히 붙어 있었다.
나의 판단으로는 천하에 나쁜 놈으로 잉카 왕과 백성을 무자비하게 죽이고 약탈을 한 정복자 피사로가 있는가 하면 성녀 테레사의 조각도 붙어 있었다. 그런데 그냥 접시모양의 빈 공간이 여러 개가 있었다. 미래에 스페인을 위하여 나타날 분을 위해서 남겨 놓은 것이라고 했다. 아직도 서로 비난하고 깎아 내리려고만 하여 초대 대통령을 위한 동상하나 변변한 것 하나 없는 한국 실정을 생각하니 새삼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콜럼버스의 계란과 살라망카대학 자유 시간에 남들은 기념품이다 무어다 하면서 바쁜 시간에 나는 식품가게를 구경하였다. 한 마디로 돼지 뒷다리를 염장한 소위 하몬 전문집처럼 온통 하몬(Jamon)이 정말 많이 걸려 있었다. 드디어 살라망카 대학 입구에 섰다. 인구 16만의 20%인 4만 명의 학생이 있고, 12세기부터 보관된 도서는 스페인 국립 도서관 다음으로 책을 많이 보관하고 있다 한다. 대학 정문에는 아르곤의 페르난도 2세, 카스티아의 이사벨라 여왕, 그리고 합스부르크 왕가 문양이 보인다. 문 앞에서 행상이 1유로짜리 개구리 모형의 장난감을 팔고 있었다. 문 문양에 해골이 있고 그 해골위에 개구리가 붙어 있는데 이를 보아야 행운이 온다하고 찾아보라고 한다. 이 조각은 대학생들 보고 날카로워지라 하는 뜻이라고 한다.
대학 안을 돌다가 커다란 강의실 같은 곳에서 발을 멈추었다. 콜럼버스가 항해를 할 돈을 얻고자 지리학자 회의에 나타나서 서쪽으로 또 서쪽으로 계속 가면 인도에 도착할 수 있다고 역설을 한 곳이다. 그 유명한 달걀을 깨트려 세운다는 일화를 만든 곳이다. 어찌 되었던지 돈 구하는 것은 물론 실패했다.
<다음에 계속>
<
이영묵 워싱턴문인회 전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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