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스 베이더 긴스버그는 레이건 대통령이 임명했던 홍일점 샌드라 데이 오코너 다음의 대법원의 2호 여성 판사로 임명된 사람이다. 그럴 정도로 발군의 실력자다. 코넬대학의 수석 졸업자였던 긴스버그는 결혼을 해서 득남한 뒤에 남편의 모교였던 하버드 법대에 진학했던 바 1950년대 말 당시만 하더라도 성차별이 심했던 때라서 적지않은 수모를 겪었단다. 우선 500명 정원 중 9명만이 여자들이었다는데 교수들이 여학생들에게 남자들의 자리를 빼앗겼다고 비아냥거리기가 일쑤였다는 것이다. 긴스버그가 법대 2년을 마쳤을 때 남편이 뉴욕에 취직이 되었기 때문에 그는 콜럼비아 법대에서 졸업을 하게 된다. 로펌들이 여자변호사들은 남자들보다 훨씬 낮은 연봉을 주던 시절이라 연구생활을 거쳐 콜럼비아 법대의 최초 종신직 여교수로 임명된다. 그리고 연방대법원에서 성차별이 불법이라는 여섯 건의 역사적 사건들을 성공적으로 다룬 기록을 세운 다음 지미 카터에 의해 DC 연방 공소법원 판사로 임명된 게 1980년이다. 1993년에는 빌 클린턴 대통령이 그를 대법원 판사로 승진시켰다.
따라서 긴스버그는 여성권리 옹호자들이나 진보세력에게는 우상 같은 조재라 할 수 있다. 날카로운 예지와 직선적 표현이 그의 매력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우파 정객들은 그를 자주 못마땅하게 여긴다. 그런 긴스버그가 최근 신문과 방송 인터뷰에서 도널드 트럼프를 맹비난 했다가 반향이 거세지자 취소하는 촌극을 보여 심지어는 긴스버그의 옹호자들마저 당혹하게 했다.
긴스버그는 지난 주말 AP통신 그리고 뉴욕타임스지와의 회견에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는 경우 대법원 그리고 미국이 어찌될런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자기 남편이 살아있었을때 “이제야 말로 우리가 뉴질랜드에 이사를 가야할 것”이라고 농담하곤 했었다고 부언하기까지 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자기는 힐러리 클린턴이 11월 대선에서 승리할 것으로 추정한다고도 했다. CNN과의 회견에서는 긴스버그가 더 직설적이었다. 트럼프를 ‘협잡꾼(Faker)’으로 부르면서 긴스버그는 “그에게는 일관성이 없다. 그는 순간순간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말한다”라고 혹평한다. 트럼프가 세금보고들을 발표하지 않은데 대해서는 신문들이 그를 순하게 다루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곁들였다.
워낙 막말이라면 금메달감인 트럼프가 긴스버그의 실언을 그냥 놔둘리 없다. 그의 트위터 계정을 통해 트럼프는 “연방대법원의 긴스버그 판사는 나에 대한 대단히 어리석은 정치적 발언을 함으로써 우리 모두를 당황하게 했다. 그의 정신이 나갔다.. 사직하라”고 정면반박을 가한다.
그러나 긴스버그에 대한 비난은 트럼프와 그의 지지자들에게서만 나온 것이 아니다. 그 동안 여러 사설을 통해 트럼프의 자격없음을 조목조목 지적해왔던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마저 긴스버그의 반 트럼프 발언은 대법원 판사로서 해서는 안될 성격의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연방판사의 윤리 강령에 판사는 공직 출마자를 지지하거나 반대해서는 안된다고 나와 있는 것을 인용한 내용이다.
만약 2016년의 선거결과가 어떤 이유로 불확실해서, 2000년 대선 때 앨 고어와 조지 부시의 대결이 대법원에서 최종 판결됨으로써 결론 났던 것처럼 대법원으로 올라오게 될 경우 미리 편견을 보인 긴스버그는 기피 대상이 될 것이 분명하다.
그밖에 트럼프가 당선되는 경우, 대통령으로서 내린 행정 명령 등에 대한 대법원 사건이 생길 때도 같은 결과가 있을 것을 생각해보면 긴스버그의 발언이 적절하지 못했음이 분명해진다.
그래선지 14일에 긴스버그는 대법원의 공보처를 통해 트럼프를 비난한 자신의 발언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발표했다. “잘 생각해보니 언론기관의 질문에 대한 나의 최근 발언은 적절한 것이 아니었다”라면서 “판사들은 공직 후보자에 대한 논평을 피해야 한다. 앞으로 나는 보다 더 신중할 것이다”고 말을 맺었다.
트럼프에게 사과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트럼프가 계속 물고 늘어져 마치 FBI의 힐러리 클린턴 이메일 사건 불기소 결정 1주일 전에 빌 클린턴이 로레타 린치 법무장관을 30분 만났던 것이 악재로 남아있는 것처럼 긴스버그의 실언이 그 비슷한 결과를 가져올 지 알쏭달쏭하다. 긴스버그의 뛰어난 업적이 잠깐 동안의 말실수로 희석되는 것을 안타까워 하는 사람들이 적지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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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선우 변호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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