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 가장 덥다는 삼복(三伏) 더위의 시작이다. 벌써 여기저기로 여행이나 피서 갈 생각으로 들뜬 사람도 있고, 무더위가 싫다며 일찌감치 ‘방콕’으로 행선지를 정하고 방안에서 나름 알뜰 피서를 궁리하는 사람도 있다. 여름을 나는 모습이 서로 다르다.
아마도 우리 민족의 여름나기는 보양(保養)의 음식문화를 빼 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시골에서 자란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 올리면 매년, 한 여름 삼복더위를 맞으면 마을 분들이 개나 돼지를 잡아 함께 먹으며 여름을 났던 기억이 난다. 초복(初伏) 중복(中伏) 말복(末伏)이 농경사회에서 여름나기의 대표적 이벤트였고, 이에 따른 단백질 풍부한 보양 음식은 땀을 많이 흘리고 일에 지친 사람들의 빼놓을 수 없는 여름나기 지혜요 문화였다.
요즘 한글 달력을 보면 대부분의 달력에 아직도 복(伏)날이 친절하게 표시되어 있다. 오히려 중국어 달력에는 복날이 나와 있는 것이 그리 많지 않다. 이는 우리 한겨레의 삶 속에는 아직도 복날의 의미와 문화가 여전히 살아있음을 의미한다.
복날의 기원은 중국의 진한(秦漢) 시대에서 왔다는 것이 정설인 듯하다. 삼복의 날짜는 초복은 일곱째 천간(天干)인 경(庚)이 하지(夏至, summer solstice) 이후 세 번째 오는 날이고, 중복은 네 번째 오는 날이며, 말복은 입추(立秋) 후 첫 번째 오는 경일(庚日)에 해당된다.
역사 기록을 보면 우리 민족은 복날에 더위를 피하기 위하여 음식과 과일과 술 등을 준비하여 계곡을 찾아 발을 담그기도 하고 개를 잡아먹기도 하였다는 기록이 나온다. 복날과 관련하여 지금까지 뚜렷하게 남아 있는 문화는 단연 보양(保養)문화이다. 요즘도 이날에는 몸에 좋은 각종 보양음식을 파는 식당들마다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특별한 모습을 본다.
물론 지치기 쉬운 한 여름 무더위를 이겨내기 위하여 보양 음식을 먹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음식이 풍부하지 않았던 시절, 한 여름 보양음식 섭취는 더없이 좋은 삶의 지혜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지금은 사시사철 음식이 넘치고, 사람들마다 영양 과포화로 오히려 성인병을 걱정하는 시대이다. 해마다 한 여름 복날이 다가오면 보신(補身)의 이름으로 수없이 희생되는 수많은 특정 동물에 대하여 국내외의 불편한 시선들도 있다.
이제 복날의 본래의 의미는 사라지고, 단지 여름의 무성(茂盛)함과 가을의 도래를 알리는 날이요, 특정 음식을 먹으며 한 여름을 나는 보양음식 문화로 자리를 잡았다. 복날은 먹는 날이 되어 버렸다. 시대변화와 함께 지나친 보양 위주의 여름나기 문화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
정보화 시대의 여름나기로 몸을 튼튼히 하는 적절한 보양(保養)과 함께 마음을 닦는 수양(修養)을 추가하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한 여름 집에서나 피서지에서 마음을 닦는 수양의 길로는 독서가 제격이다. 신영복 선생은 책은 먼 곳에서 찾아온 반가운 벗이라고 말하며, 독서는 모름지기 자신을 열고, 자신을 확장하고 그리고 자신을 뛰어 넘는 일이라며 독서를 예찬한 일이 있다. 좋은 책을 읽음은 곧 삶의 양식을 얻음이요, 훌륭한 스승이나 좋은 벗을 만남이요, 미래 시대를 살아갈 정보(情報)를 접하는 것이니 수양의 길로는 제격이다. 또한 예로부터 독서는 마음의 양식에 비유되었으니, 초복이나 중복에 구약성경에 나오는 에제키엘 예언자처럼(에제3:3) 책 한 권 먹는 것(읽는 것) 그리 어색하지 않을 듯하다.
한 여름 삼복더위에 책을 읽는 독서의 즐거움은 또 그 맛이 특별하다. 무더운 여름 시원한 나무그늘 아래에서 하는 독서, 한 여름 소나기 소리 들으며 하는 독서, 모처럼 휴가의 여유 속에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책과 마주하는 기쁨은 절경(絶景)이나 미식(美食)의 즐거움에 비견할 수 없을 정도이다. 화제의 신간이나 불후의 고전도 좋고, 젊은 시절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이나 오래 전 사놓고 아직 읽지 못한 책도 좋고, 성경이나 여러 종교 경전 등등 모두 독서삼매(讀書三昧)로 인도하는 수양의 길들이다. 거룩한 책을 옆에 두고 날마다 책을 읽는 것은 왕처럼 사는 길이라는 말씀도 있으니(신명17:19), 독서는 가히 마음과 삶을 다듬는 최고의 수양이라 할 만하다.
올 여름 복날에 삼계탕 한 그릇 먹을 때마다 적어도 책 한 두 권 읽어내는, 몸의 보양과 마음의 수양이 함께 하는 여름나기가 되면 어떨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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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석 성공회 워싱턴한인교회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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