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만 해도 초목을 시작으로 세상이 온통 여린 연둣빛이더니 어느덧 푸른 이파리에서 청춘의 활력이 그대로 전해진다. 봄은 화사한 꽃과 함께 오기도 하지만 매일 푸르러지는 수목의 색과 새들의 노랫소리와 함께 온다.
집 뒤 텃밭을 다녀온 남편의 푸념과 함께 우리 집에도 봄이 왔다.
“아무리 새대가리라도 그렇지 어떻게 그런 곳에 둥지를 만들어 알을 낳냐고.”
삽, 긴 호미, 땅을 뒤집는 농기구, 낙엽 긁는 갈퀴 등을 집 뒷벽에 거꾸로 세워 두었는데 그 위에 울새가 집을 지었다는 얘기였다. 한 동안 남편은 그의 농사연장을 쓸 수 없게 되었다.
궁금해서 살살 까치발을 하고 뒤뜰로 나가보았다. 어미 새는 알을 품고 있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휙 달아나버렸다. 둥지를 올려다보니 세 개의 파란 알이 놓여있다. 정말 연장들의 뾰죽뾰죽한 끝에 위태롭게 둥지가 걸려있다.
새라고 생각이 없었겠는가? 햇빛, 바람,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에 차양이 달려있고, 벌레를 쉽게 찾을 수 있는 텃밭 옆이니 제격이 아닌가. 또 작은 연못이 현관 앞에 있으니 물도 멀지않고, 나름대로 최상의 자리였다. 그렇지만 둥지를 높이가 제 각각인 위험한 연장 위에 짓다니. 둥지는 약간 앞쪽으로 기울어져 있어 불안했다. 제발 별일 없이 안전하기를 바라는 수밖에.
이곳 미동부에 흔한 아메리칸 울새(American Robin)는 워싱턴 지역의 봄 전령사이다. 붉은 색이 도는 오렌지 빛깔의 가슴과 노란 부리에 잿빛 날개를 가진 새이다. 새는 보통 계절을 따라 매해 똑같은 경로로 이동하지만, 울새는 기후보다는 먹이를 따라 이동한다. 초가을이면 열매나 과일이 풍성한 곳으로 떠났다가, 눈이 녹아 땅속에 있던 지렁이들이 고개를 내미는 초봄에 이곳으로 돌아온다. 수놈이 먼저 와서 장소를 물색해 영역을 정하고 짝을 찾기 위해 부르는 노래이니 그들의 가장 매력적인 목소리 일게다. 그 소리가 우리에겐 봄의 소리이다. 그들은 4월이 가장 바쁘다. 알을 깔 둥지를 만들어야하기 때문에.
우리집 앞에는 남편이 애지중지 키우고 있는 지구본처럼 멋지게 손질된 장미나무가 있다. 작년 봄에는 새가 장미나무 안에 둥지를 만들어 예쁜 알을 네 개나 낳았다. 얼마나 안성맞춤의 자리인가. 두주 후에 아직 눈도 못 뜬 네 마리의 새끼들이 태어났다. 자기 몸보다 더 크게 입을 벌리고 침입자인 내가 부모인 줄 알고 밥 달라고 요동치는 모습이, 마치 네 개의 노란 튤립이 활짝 피어나 바구니에 담겨 요란한 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 삼사일 동안 어미 애비는 해가 떠서 질 때가지 벌레를 잡아와 먹였다. 둥지에 하루 종일 100번 이상 들락날락 해야만 하는 즐겁지만 고된 노동. 그 덕분에 남편의 장미는 시들시들 몸살을 앓았다.
애기 울새는 점차 어미가 갖다 주는 벌레도 통째로 먹을 수 있게 되었다. 태어난 지 두주쯤 되었을까? 둥지에서 땅으로 뛰어내렸다. 그리고 날갯짓을 시작하고 나는 연습이 시작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푸드득 푸드득 날개에 힘이 붙어 둥지를 떠났다. 나중에 알았지만 둥지는 떠났어도 나뭇가지에서 며칠 동안 부모 새로 부터 보호를 받다가 완전히 독립한다고 한다. 어미 새는 또 새로운 둥지를 만들고, 알을 품고, 새끼 키우기를 한 계절에 두세 번 반복한다.
우리도 미국 이주 43년 동안 밀워키 위스콘신(Milwakee, Wisconsin)을 시작으로 많은 둥지를 만들고 옮겨 다녔다. 가장 오래 살았던 곳은 13년 동안 살며 세 아이들을 다 키워 내보내고 우리 내외만 남았던 맥클린 버지니아(McLean, Virginia)의 여덟 번째 둥지였다. 어른이 된 아이들이 우리를 방문하면 함께 찾아가 추억을 떠올려보는 그리움의 둥지. 울새가 새끼들을 혼자 날 수 있도록 키워 날려 보냈듯이 우리도 아이들을 키워 독립 시켰던 곳이다.
아이들이 나무라면 연한 잎사귀는 많이 푸르렀으나 녹색으로 완전히 변하지 않았고 아직 더 자라야만 하는 나무들이었다. 나는 세 아이를 걸스카웃, 보이스카웃, 축구, 레스링, 테니스 게임, 바이올린, 피아노, 발레, 아트레슨을 시키느라 울새처럼 하루 종일 수도 없이 집을 들락거렸다. 남편은 남편대로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게 행복해서 열심히 일을 했다.
몸통은 어른 비슷하게 커졌으나 스스로도 헷갈리는 나이 16살. 그들은 조금씩 나는 연습을 해야 했다. 자유를 갖기 위한 통과의례가 운전이다. 우리가 시키는 운전 연습에 감질난 아이들은 우리 차를 밤에 슬쩍 타고나가 박아오기도 하고, 전봇대를 들이받아 완전히 너덜너덜해져서 폐차시키기도 했다. 한 놈은 길옆 개천으로 빠트려서 견인차를 불러 끄집어내기도 했다.
그들의 수많은 날갯짓이 시작되었다. 세상이 뭐 별것이냐고 더 멀리 떠나겠다며 큰소리를 쳤다. 하루빨리 부모에게 묶인 끈을 풀고 싶어 안달이 난 나이였다. 푸드득 푸드득, 하나 둘 우리의 둥지를 떠났다. 18살이었다. 울새가 나뭇가지에서 연습을 하듯 아이들도 대학에서 혼자 살며 직접 세상을 접하고 친구와 함께 좀 더 높이 나는 연습을 하며 차차 우리로부터 완전히 독립하였다. 이젠 각자 자신의 둥지를 만들어 살고 있다.
작년에 할 일을 끝낸 장미나무 안의 빈 둥지는 둥그러니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다. 우리의 열한 번째 둥지도 둘이만 덩그러니 남은 빈 둥지이다. 아이들은 미국인으로 키워놓고 아직도 한국 엄마 아빠인 우리는 멀리 날아간 자식들을 가끔 기웃거리고 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새대가리라고 흉본 울새에게 물어보아야겠다.
<문영애 워싱턴 문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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