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부탁해’라는 소설은 22개 국어로 번역되었고 200만부 이상 팔려 신경숙 작가에게 국제적 명성을 안겨준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모양이다. 그밖에도 많은 단편과 장편 소설을 써서 ‘창작과 비평사’(창비)에 큰 수입원이 되고 있는 신씨가 최근 표절 시비에 말려들었다. 그가 1996년에 발표한 단편소설 ‘전설’이 일본의 극우파 군국주의자였던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憂國)의 일부를 베꼈다는 표절 의혹을 어느 소설가가 제기하자 신경숙과 창비에서 처음(6월17일)에는 표절이 아니다 라고 주장했었다. 그에 대한 문단과 독자들의 강력한 반발이 위험 수위에 이르렀다고 판단했던지 창비는 “표절 혐의를 충분히 제기 할 법하다”는 내용이 포함된 사과문(?)을 발표한 것이 다음 날이다. 그러면서도 표절을 인정하지 않은 채 표절 의혹을 공론에 부치겠다고 했다는 보도였다.
신씨는 한술 더 떠서 미시마의 작품으로는 ‘금각사’ 외에는 읽어본 것이 없어서 ‘우국’은 알지도 못하는 소설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사실은 ‘우국’과 ‘금각사’가 1983년에 한국어로 번역되어 한 책에 묶여 있다는 점이 인터넷 등을 통해 전파되자 신씨는 경향신문과의 회견을 통해 자신의 새 입장(?)을 표명한 게 6월23일이다.
그는 그 회견에서 “아무리 지난 기억을 뒤져봐도 ‘우국’을 읽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제는 나도 내 기억을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라고 하면서 “문제가 된 (일본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우국’의 문장과 (내소설) ‘전설’의 문장을 여러차례 대조해본 결과 표절이라는 문제 제기가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부언했다. 그러면서 출판사와 상의해 ‘전설’을 작품집에서 뺄 것이며 “문학상 심사위원을 비롯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숙하는 시간을 갖겠다”라고 했단다. 그의 설명은 교언영색(巧言令色)의 전형처럼 들린다.
그래서 이 신문 저 신문을 읽어보니까 한국문단의 표절 문제가 심각하다는 인상이다. 심지어는 신인으로 문학계에 등단하기 위해 몇 년을 걸쳐 이곳저곳에 응모하는 가운데 심사위원이 탈락시킨 작품 내용을 나중에 자기 이름으로 발표하는 비리를 저지르는 사례마저 있는 모양이다.
어디 문단뿐이랴. 학계, 예술, 문학계 등 한국 사회 전체가 외국 특히 가까운 일본 것을 모방하고 표절해온 역사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 같다. 모방과 표절 습성은 한걸음 더 나가 연구 결과의 과대 선전과 더 심각하기로는 과학적 연구의 기초가 되는 실험 결과의 허위 조작으로 이어진다. 한국 과학계의 제1호 노벨상 수상자로 떼 논 당상이라던 황우석의 비극을 예로 들 수 있다. 대학교수가 대학원 학생의 논문을 지도한답시고 몇 마디 거들고는 그 논문의 제1저자로 자신의 이름을 집어넣는 뻔뻔스러운 행태도 비일비재하다.
내가 2003년 가을학기에 어느 언론대학원에서 미국신문(역)사를 강의했을 때 깜짝 놀란 경험이 있다. 원서 강독이라서 교과서의 내용을 학생들이 영어로 요약하여 리포트를 쓰게 한 적이 있었는데 며칠 후에 교수들의 연구발표회에서 한 교수가 어느 학생의 리포트를 한 자의 가감도 없이 자기 이름을 집어넣고 배부하던 황당한 경험이었다. 그러면서 1950년대 말 견습기자적 경험도 생각났다. 서대문구에 있던 사회과학연구소에 취재하러 들렀더니 고등학교 동창생 하나가 열심히 노트를 하고 있었다. 무엇을 그처럼 열심히 적고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외국 유학을 가서 학위 논문을 쓸 때 사용하기 위해 남들의 석박사 학위 논문들을 베끼고 있다는 천연덕스러운 대답이었다. 그러니까 신정아 씨의 예일대학 박사학위 증서 위조 사건 같은 게 발생되는 것이다. 이미 몇 해가 지났지만 그는 가짜 학력을 내세워 동국대학의 교수가 되었고 한국 최고의 미술 큐레이터로 자타가 공인하다가 거짓이 드러나 감옥엘 가기까지 했었다.
한국 어른사회의 표절, 조작 등 거짓 풍조는 어린아이들에게도 영향을 주어 각종 시험에 대리 응시하는 악습, 논문 대필, 가짜 경력 조작 등 갈수록 기승을 부린다. 토마스 제퍼슨 고등학교 졸업반으로 세계적인 영재라서 하버드, 스탠포드의 동시 수업 입학 허가를 받았고 페이스북의 저커버그의 전화도 받았었다고 발표한 김 모 양의 해프닝도 그 같은 한국 풍조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 아이만의 생각이었을까. 아니면 부모의 협조가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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