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한국일보 미주판에서 읽은 기사는 나에게 격세지감을 자아냈다. 스탠포드 대학에서 학생들의 가정 연소득이 12만5,000달러 미만이면 1년 4만5,000달러인 학비 전액을 면제해준다는데 더해 가정소득이 6만5,000달러 미만인 경우에는 2만달러인 기숙사비까지 면제해준다는 내용이었다. 그것이 1964년부터 3년 동안 스탠포드 대학원을 다녔던 나의 경험과 비교가 되었기 때문이다.
우선 리랜드 스탠포드 주니어(Leland Stanford Jr. University)란 정식 명칭을 가진 그 학교가 정말로 부자학교라는 점을 실감하게 된다. 은광으로 돈을 많이 벌었고 캘리포니아 연방 상원의원과 주지사를 지낸 스탠포드에게는 외아들이 있어 제2세라는 의미로 주니어라 붙였었다. 이태리에 가족여행 중 아들이 장티푸스로 열다섯에 죽는 불행이 닥친 한을 아버지는 아들이름을 붙인 대학 설립으로 극복하려고 8,000에이커가 넘는 땅을 구입하여 1891년에 학교 문을 연다.
미국 동부의 명문 아이비리그 대학들이 17세기 전후에 개교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일천한 역사지만 처음부터 일류를 목표로 했다. 허버트 후버가 31대 대통령으로 경제대공황 때문에 루즈벨트에게 패선 했지만 학교이름을 알리는데 일조했기 때문에 캠퍼스를 내려다 볼 수 있는 후버탑에다가 후버연구소마저 있다. 캘리포니아의 좋은 일기에다가 대학교수들에게는 소유권은 없지만 교수주택들이 주어지는 조건과 높은 연봉 때문에 특히 세계 2차대전 이후 노벨상 수상자들을 포함한 일류교수들을 많이 유치할 수 있었던 사실도 전공과목에 따라서 미국대학 서열에서 1~5위의 자리매김을 하게 된다.
사실 미국의 평균가구수입이 2013년 통계로 5만1,915달러인 것을 생각하면 이 글머리에 소개한 학비면제대상 가족이 중상층인게 분명해진다. 물론 그 숫자는 평균이라서 메릴랜드주는 평균 가구수입이 7만1,818달러이고 버지니아주는 6만2,478달러이다. 하지만 가난한 집의 학생들이 발군의 고교성적과 SAT의 높은 성적과 아울러 뛰어난 작문실력이 있어 합격만 되면 무료로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잘한 결정이다.
1964년 가세가 기울대로 기운 상황에 동아일보의 박봉생활을 하던 나로서는 풀브라이트 장학생이 되었기에 그 부자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윌리엄 풀브라이트라는 상원의원이 외국의 인재들을 미국에서 교육시키는 것을 장려하기 위해 장학금 제도를 기안했기 때문에 그의 이름이 붙게된 이 기금은 상당히 많은 수의 외국인들을 훈련시켰다. 당시에 스탠포드 학비가 1,500달러였는데 학비와 교과서 비용만 내주는 게 아니라 한 달에 201달러의 생활비도 나왔다. 아파트 값이 52달러였고 개스값이 평균 25센트고 싼데를 찾으면 18센트도 있었던 시절이라 두사람 생활이 가능했었다. 남들은 2년에 걸쳐 석사를 하는게 보통이었지만 마음이 급했던 나는 여름학기를 포함해서 1년에 커뮤니케이션 석사학위를 받았는데 윌버 슈람이란 유명한 교수가 중국이 곧 열릴 터이니 정치과로 옮겨 중국 등 국제 정치학을 연구해서 박사학위를 받는게 좋을 것이라고 권고해서 정치과로 옮겼다. 2년동안 미국 정치, 국제정치 및 국제관계 과목들을 이수하는 동안 정치와는 전혀 관계를 하지 않아야된다는 개인적인 소신과의 충돌로 적지않게 고충을 겪다가 박사자격시험 직전에 다시 신문학 쪽으로 옮기고자 했더니 학교 자체를 바꾸어야 되었다. 그래서 위로 선물인지 정치학 석사를 받기는 했다.
1964년 경제상태를 간단히 구글해보았더니 정말로 세상이 많이 변했다. 우선 당시 미국인구는 1억9천만이 조금 넘었을 뿐이다. 그리고 미국 가구의 평균 연수입은 6,000달러 미만이었다. 평균해서 3만 달러면 새 집을 살 수 있었고 새 차 값은 2,250달러였다. 빵 한봉지는 22센트, 우유 한 통에 27센트 그리고 우표는 5센트 씩이었다. 아내가 내 뒷바라지를 하기위해 조그만 회사의 경리보조로 일을 시작했더니 시간당 보수가 1.75달러였다. 지금은 없어진 포드의 페어레인이란 중고차를 1,100달러로 구입했더니 어찌나 고장이 자주 나던지 고생 꽤나 했었다. 그런데 학교의 학생 주차장을 지나다보면 당시에는 이름도 모르던 비싼 새 차들, 특히 외국산 차들이 즐비하게 주차되어 있었던 게 기억된다. 그런데 그때만하더라도 한국에서는 스탠포드가 거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 학교로 지정된 게 실망스러웠던 생각이 난다. 한국일보에서 편집국장을 하다가 동아일보 논설위원으로 오신 홍승면 선배님이 그 학교가 좋은데라고 안심시켰던 것도 기억된다.
<변호사 MD, VA 301-622-6600>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