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1970년대 중반에 버지니아주의 노폭 주립대학에서 신문학 선생을 하던 시절 버지니안 파이롯트란 신문의 편집인을 초청해서 특강을 부탁한 적이 있었다. 내용은 다 잊어버렸지만 자신의 젊었을 때 기자생활 경험 중 흑인 범죄 혐의자의 목에 밧줄을 걸어 굵다란 나뭇가지로 끌어올려 사형(私刑)시키는 것을 몇 차례 목격했었다는 대목은 아직 기억된다. 백인이 하나도 없었던 흑인 학생들만이 청중이었기에 그들의 부모 세대가 경험했을 끔찍스러운 차별과 억압의 역사가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가 걱정되어 그들의 얼굴 표정 변화를 몇 번 훔쳐본 기억이다.
한 두 달전 오클라호마 대학의 남학생 사교클럽인 시그마 알파 엡실론에 속한 학생들이 버스 속에서 흑인 비하의 최악 표현을 쓰면서 그들은 결코 그 클럽에 들어올 수 없으며 나뭇가지에나 매달려야 마땅하다는 투의 구호를 노래처럼 고성방가 하는 비디오가 SNS에 떠서 대학총장이 즉각 두 주동 학생들을 퇴교시킨 사건이 발생했다.
겉으로는 안 그런 척 하지만 속으로는 백인우월주의의 잔재가 남아 있어 피해자나 그 가족들에게는 몸서리쳐지는 과거를 다시 반복되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라는 생각으로 즐겁게 회상하는 못된 인간들이 존재하는 모양이다.
문제는 그런 인종 편견을 가진 자들이 경찰관으로 채용되는 경우 심각해질 수 있다. 꼭 일주일 전에 생긴 일이라서 관련 사실이 다 밝혀지기까지는 속단을 할 수 없다. 하지만 사우스 캐롤라이나주의 셋째로 큰 도시인 노스 찰스턴에서 백인 경관이 경미한 교통 법규 위반으로 스톱 당한 흑인의 차에서 나온 다음 도망치는 것을 뒤따라가면서 여덟 차례 권총을 발사한 결과 다섯 탄환을 명중시켜 죽게 만든 사건은 또 백인 경관 대 흑인 피해자의 유형(類型) 반복이다.
지난 토요일 사건 발생 시에는 오년 차 경찰관 마이클 슬레이거가 “권총을 발사했으며 피의자가 땅으로 쓰러졌다. 그가 나의 테이저 총을 빼앗아 갔다”라고 보고했었다. 테이저 총이란 경찰관에게 대항하거나 도망치는 피의자를 쏘아 전기 충격으로 잠간 동안 마비시키는 총 종류의 상표명이다. 그러나 이번 주 7일에 사건 발생을 셀폰 녹화한 젊은이의 비디오 테입이 공개되면서 죽었을 때 나이가 50세였던 월터 스콧 씨가 “걸음아 날 살려라”는 필사의 노력으로 도망가는 것을 따라 가면서 권총의 방아쇠를 연속 당기는 경찰관의 모습이 “인간 사냥” 같다는 내 아내의 느낌에 동감하는 사람들이 흑인들 가운데서만 있는 게 아니다. 그 비디오 테입이 CNN 등 케이블 뉴스와 소셜미디어를 달구기가 무섭게 노스 찰스턴 경찰은 슬레거를 파면시켰을 뿐 아니라 그를 제1급 살인죄로 체포해서 구금시킨 것이 단적인 예다.
미국의 많은 도시들, 특히 남부 도시들이 그러하듯이 인구 10여만의 노스 찰스턴 시도 인구 비례로 보면 40%도 못되는 백인들이 경찰관의 86%를 구성하고 있다. 물론 백인들인 시장과 경찰서장은 또한 스콧 씨의 가족을 방문하여 위로하는 예의를 갖추기도 했다.
피해자의 어머니 주디 스콧 여사는 연속 방영되는 그 비디오 속에서 아들이 달리다가 쓰러지는 것을 볼 때마다 말로 표현키 어려운 비탄 속에 빠진다면서 경찰이 시민들을 보호해야 되는 것이 아니냐고 절규하는 가운데서도 미국의 사법제도를 계속 신뢰하며 좋은 경찰관들도 있다고 믿는다는 말을 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노스 찰스턴 시 정부와 경찰의 신속한 대응은 흑인 시민들의 “총을 쏘지 마라, 흑인 생명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라는 구호 연창 데모가 과격하게 변모하는 것을 막아 미주리주의 퍼거슨 사태와는 대조가 되게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문제의 비디오 테입이 존재하지 않았더라도 가해 백인 경찰이 체포되었을 것인가를 진지하게 질문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노스 찰스턴 당국자들은 모든 경찰차와 경찰복에도 카메라를 장착하여 피의자에 대한 경찰력 행사나 발사 과정이 인종 차별적인 동기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확인해 보려는 노력을 하겠다고 발표한다.
이번 사건의 피살자 스콧 씨가 경찰에 의해 오전 9시반경 멈춤을 당한 것은 자동차 뒷 켠의 정지 빨간 불이 고장이 났었기 때문이란다. 그런 경우가 가장 많이 멈춤을 당하는 사람들은 흑인 남자들이라는 통계가 있다. 그 다음으로 히스패닉 남자들, 아시아계 남자들, 그리고 백인들 순위이며 가장 적게 멈춤을 당하는 것은 백인 여자들이란다. 그러나 경찰의 입장으로는 경찰에게 총격을 가하는 부류로 젊은 흑인 남성들이 많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는 변명도 있다. 인종 편견의 후유증이 심각해지니까 각자 마음을 쇄신해야 될 것이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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