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주변에서 흔히 듣는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말은 옛날부터 내려오는 순수한 우리 말 표현이 아닌 것 같다. 30년 넘게 미국에 살면서 이 곳 생활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하는 나 자신도 여기 사람들이 흔하게 쓰는 이 말을 쉽게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연세 많이 드신 노인들은 대부분 이런 표현을 잘 쓰지 않는 데다, 어쩌다 주변에서 ‘아이 러브 유’나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해보라 하면 아주 쑥스러워한다. 분명 우리 나라에도 그리고 옛날에도 사랑한다는 뜻의 말이나 표현을 어렵지 않게 했을 것이 분명한데 무슨 말을 어떻게 했을까?
사람은 누구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람과 항상 같이 있고 싶어하는 것이 사실이다. 자기의 것으로 영원히 소유하고 싶어하고, 자주 자기의 것임을 확인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사랑하는 남녀는 결혼을 하고 친한 친구들은 의형제를 맺기도 한다. 그리고 아주 좋아하고 마음에 드는 물건은 아예 비싼 돈을 주고라도 사서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버리기도 한다.
사랑을 표현하는 한자어의 ‘애(愛)’자는 지금 우리는 ‘사랑 애’ 자로 알고 있지만 원래 ‘아낀다, 소중히 여긴다’라는 뜻으로 쓰여졌다. 자기 것처럼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사랑하는 사람이 갖는 근본적인 마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사랑과 소유욕과는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 같다.
옛날 어른들이 귀여운 어린 자식이나 손자를 안아주면서 하는 말들이 있는데 누구나 자주 사용하거나 들어왔을 것이다. 아마도 사랑한다는 뜻에 가장 가까운 표현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이구, 이거 내 새끼!”
“이거 누구 새끼야?”
나도 나의 아이들이 어려서 귀여워하거나 사랑스러워 할 때, 또는 얼마간 떨어져 있다가 다시 반갑게 만났을 때 안아주면서 ‘아이구, 이거 내 새끼!’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하곤 했다. 그리고 그런 말을 자주 했었나 보다.
그랬더니 하루는 아들이 나를 사랑한다는 표현으로 “나는 아빠 새끼야” 라며 내 품에 안길 때가 있었다. 물론 그 말을 들었을 때 나의 기분은 몹시도 좋았었다. 지금은 다 커서 장가가고 분가도 했지만 아직도 사랑하는 자식에게서 듣고 싶어하는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내 자식, 내 새끼, 또는 내 것’이라는 말에는 단순히 나의 소유물이라는 사실만 표현된 것이 아니다. 나의 것이기 때문에 내가 소중히 여기고 잘 돌볼 책임이 있다는 뜻까지 포함되어 있는 말이다.
몇 해 전 한국에 있을 때 TV에서 훌륭한 고등학교 교사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방영되었는데 학생들을 사랑하는 한 선생의 마음 씀씀이가 돋보였다. 학습자료를 정성스럽게 준비하는 것하며 다양하면서도 재미있게 가르치려고 노력하는 장면들을 보면서 한때 교사였던 내가 보기에도 훌륭한 선생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선생 반에서는 수업을 마치고 학생들과 선생이 같이 인사하면서 ‘지는 당신 꺼라예’ (경상도 억양을 넣어야 제 맛이 난다)라는 말을 한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표현을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말보다 ‘저는 당신의 것입니다’라는 말이 얼마나 더 적절하고 나은 표현인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주고 싶어하는, 받기보다는 주는 것이 강조되는 사랑의 본질이 포함된 말이 아닌가.
요즘 우리 사회에서도 ‘아이 러브 유’라는 말을 너무나 생각 없이 쉽게 사용한다. 미국 사람들은 사람뿐만 아니라 어떤 물건이나 음식을 보고 조금만 좋아도 ‘아이 러브 …’라고 쉽게 이야기한다.
사람 사이에서 조금만 친해도 ‘사랑한다’고 쉽게 이야기하고, 남녀간에도 별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사랑한다는 말을 하기 때문인지 결혼 후에 이혼도 쉽게 하는 것 같다.
그에 비해 우리 말 표현 ‘지는 당신 꺼라예’라는 말에는 아주 깊은 뜻이 담겨있다. 서로간의 굳건한 믿음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사랑, 헌신과 희생을 감내하면서도 상대방을 소중하게 여겨는 사랑이 포함되어 있다. ‘지는 당신 꺼라예’는 강요하지 않으면서 책임을 확인하는 사랑, 시간을 초월해 영원히 운명을 같이하고 싶어하는 사랑의 뜻이 함축되어 있고, 조건 없는 자아 희생적인 사랑, 그러한 서로간의 사랑으로 인해 무슨 일이 일어나도 마음의 평안을 확인해 주는 말이다.
입에 발린 낮 간지러운 ‘아이 러브 유’나 ‘사랑해’라고 가볍게 던지는 말에 비해 얼마나 뜻 깊은 우리 나라 우리 말 표현인가.
김평웅 보건학 박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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