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에 남을 경멸하는 나쁜 표현으로 “xx 육갑한다”는 말이 있다. 여기서 육갑(六甲)은 전통적 10간(干), 12지(支)의 육십갑자를 가리킨다. 그런데 10간과 12지를 결합하여 갑자, 을축, 병인에서부터 신유, 임술, 계해에 이르는 60갑자를 헤아리는 일은 보통 사람에게도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그래서 가령 지적 수준이 낮은 사람이 60갑자, 즉 육갑을 헤아리는 모습이 우스꽝스럽다는 뜻에서 “xx 육갑한다”는 경멸적인 표현이 생긴 것이다.
어쨌거나, 금년은 한국이 일본의 점령으로부터 해방된지 60년이 되는 해다. 회갑을 맞은 한국의 지난 60년을 돌아보면 그것은 한마디로 파란만장의 연속이었다. 광복의 기쁨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처참한 동족상잔의 6.25전쟁을 치러야 했고 이어지는 경제적 빈곤 속에 독재와 군사통치의 탄압을 견뎌야 했고, 계속되는 엄청난 정치적, 사회적 소용돌이 속에 하루도 평안한 날이 없었다. 8.15, 6.25에서 시작된 숫자들의 행진은 그 후 4.19, 5.16, 12.12, 5.18, 6.23, 6.15 ... 등으로 끝없이 이어져 왔다.
‘회갑 한국’의 과거를 돌아볼 때 가장 놀랍고 자랑스러운 일은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경이적인 경제성장이다. 광복 당시 세계 최빈국 중의 하나였던 한국은 오늘날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해마다 보릿고개를 넘느라 허덕이던 나라가 세계 최다의 초고속 인터넷 가입자를 가진 IT 최강국으로 우뚝 서게 됐다.
하지만 오늘 회갑 한국을 둘러보는 우리들의 마음은 밝고 가볍지만은 않다. 언제부터 어떻게 시작됐는지 모르지만 8.15행사를 남북이 공동으로 치르면서 김일성, 김정일을 찬양하는 글이 인터넷에 심심찮게 오르고, 북한 대표단은 서울의 국립묘지를 방문하고, 민족주의자들은 맥아더 장군의 동상을 철거하라고 시위를 벌이고, 대학교수는 미국 때문에 6.25 통일전쟁이 실패했다고 주장한다.
그런가 하면 지난 정권들이 정치적 사찰 목적으로 자행해 온 도청 사실이 밝혀짐으로써 시작된 ‘X파일’ 사건이 끝 모를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보수와 진보가 사사건건 대립하고 충돌하는 가운데 사회적 불안감이 깔려 있는데다 기업과 시장과 부(富)에 대한 반감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어 기업하는 사람들은 국내투자 의욕을 잃고 있다. 그래서 지난 1995년 1만 달러를 넘어선 1인당 국민소득은 10년이 지난 오늘에도 1만달러 대에 머무르고 있다.
북한이라는 예측불가의 변수가 상존하는 가운데 정치혼란, 보혁갈등, 계층갈등, 경제난관 등이 계속되리라는 전망이다. 한국이 과거에 매달려 있는 동안 미국, 일본, 유럽의 선진국들은 물론, 중국, 인도 같은 신흥 강대국들도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면서 앞으로 30년, 50년 앞의 미래를 예측하고 전략을 세우기에 바쁘다.
한국이 앞으로 동북아의 중심이 돼야겠다는 생각에서 벌여온 일들도 불미스러운 일로 덜커덩거리고 있고, 수그러들 줄 모르는 이민과 유학, 자살, 패륜적 범죄 등이 한국사회의 밝지 않은 모습을 대변해 주고 있다. 그래서 회갑 한국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시선 속에 혹시라도 “xx육갑하고 있네”라는 경멸이 담겨 있을까봐 걱정이다.
하지만 한국의 미래만큼은 밝아야 하고 또 밝을 것이라고 애써 주장해 본다. 오랜 세월 축적된 한국인들의 지혜 그리고 높은 교육열로 길들여진 한국인들의 머리가 우수하다는 것이 여러 곳에서 증명되고 있다.
한국은 이제 IT분야의 최강국일 뿐 아니라 줄기세포 연구 등 초첨단 과학분야에서도 우수함을 과시하고 있다. 한국의 드라마, 영화, 가요 등, 이른바 한류로 대변되는 한국의 문화컨텐츠산업도 세계인들로부터 공감을 받으며 한국인들이 가슴으로 하는 일에도 탁월함을 드러냈다.
한국인들의 우수한 머리와 넓고 깊은 가슴, 그리고 여기에 한 가지 더, 한국의 ‘젓가락 문화’가 길러 온 섬세한 한국인들의 ‘손’까지... 한국은 선진 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는 요건을 다 갖추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미래를 지향하는 긍정적인 정신과 자세만 갖춘다면 회갑을 맞은 한국의 미래는 밝을 것이다.
바야흐로 한국의 밝은 미래를 위한 민족적, 국가적, 사회적 성찰과 아울러 안팎에 있는 ‘한국인’ 각 개인들의 긍정적인 다짐이 필요한 때이다.
장석정
일리노이주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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