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이 이라크 무너뜨린 것 기억하기 때문에 현재의 북한은 미국을 믿지 못하는 것
▶ 북한과의 신뢰 먼저 회복후 설득해야
하노이 2차 미-북 정상회담 이후 북미관계가 교착 상태에 빠졌다. 한반도 평화의 길은 다시 요원해진 느낌이다. 미국은 북한을 외면하고 있고 북한은 한국에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내고 있다. 분명해진 사실은 한반도의 평화가 남과 북의 의지와 노력만으로는 힘들다는 점이다. 한반도의 운명과 미래는 국제적인 역학관계 속에서 요동치고 있으며 미국이 결정적인 키를 지닌 강대국이라는 것을 북미회담의 순항과 파행에서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숱한 전문가들도 예측 못한 2차 하노이 회담의 결렬 충격은 또한 우리에게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특히 미국을 움직이는 지배계층(Establishment)들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가를 입증해주었다. 이에 본보는 미국의 대 한반도 정책과 미 국민의 심층 여론을 한국의 입장과 관점에서 바라보고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미 국민의 시선, 미국을 움직이는 워싱턴 핵심 엘리트들의 속마음을 통해 조명해보고자 한다.
그렉 브래진스키 (Gregg A. Brazinsky)
2005년 코넬 대학교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국제관계학(International Affairs)으로 이름난 조지워싱턴대 엘리엇스쿨(Elliott School of International Affairs)의 교수이다. 주로 미국과 아시아의 관계에 대해 연구하고 가르치며 한국의 광복, 정부 수립, 한국전쟁, 이승만 정권, 박정희 정권 등 1945년 이후의 현대사 연구도 오랜 시간 진행해 한국을 매우 잘 이해하고 있다. 한국에 대한 애정이 각별해 ‘배투호’라는 한국 이름으로 불리기를 좋아한다. 브래진스키 교수는 대학 내 냉전시대를 연구하는 ‘The Cold War Group’의 책임자를 맡고 있기도 하다.
- 현재 한미관계를 어떻게 보는가?
▲ 한국은 현재 미국의 가장 중요한 동맹 중 하나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는 과거 정권들에 비교했을 때 동맹국들에게 큰 매력을 느끼지 않고 있으며 실질적인 이익을 우선시한다. 이는 동맹국과의 마찰을 야기해왔다. 트럼프의 실리우선주의적 접근법이 한미관계에 손상을 준 부분이 있다. 예를들어 지소미아를 놓고 보면 처음 한국이 지소미아 폐기를 선언했을 때 미국 정부의 여러 인사들이 한국의 결정을 비난했지만 반대로 일본이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배제했을 땐 그렇지 않았다.
미국이 바라보기엔 일본이 국가 발전에 너무나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공화당과 민주당을 가리지 않고 일본을 편애한다. 미국의 권력층은 한국과 일본간의 역사를 잘 모르고 있다. 이렇듯 미국의 이익만 추구하다 보니 동맹국들과의 마찰이 계속 생기고 있다.
- 지난 북미회담은 성공적이었나, 실패였나?
▲ 우선 나는 싱가포르 회담이 완전한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싱가포르에서 있었던 북미회담은 즉각적인 결과는 없었을지언정 미국과 북한의 관계를 형성하는 데에는 분명한 도움을 줬다. 또, 베트남 회담을 보면 트럼프 행정부 내에 크고 작은 문제들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내가 내부 자료를 전부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에 정확하게 진단할 순 없지만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과 트럼프 대통령과의 의견차이가 있었던 것은 분명하고 트럼프 대통령도 협상에 대해 모든 것을 꿰뚫고 있는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가령, 트럼프가 “북한과 협상하겠다”라고 말하더라도 거기엔 많은 디테일이 누락되어 있다. 실무진과 스킨쉽을 충분히 하지 않은 것이 아닐까 한다. 나는 지난 북미회담들에서 미국이 처음부터 너무 큰 것을 바랐던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북한이 경제 제재를 한둘 풀어준다 해서 덜컥 핵시설을 중단하고 핵무기를 폐기하겠는가. 단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 미국 내에선 대북 경제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다.
▲ 많은 사람들이 봉쇄와 경제적 제재를 주장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북한을 몰아세우기만 해서는 미국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 북한은 한국전쟁의 폐허 속에서 살아남았으며, 극한의 빈곤함 속에서도 견뎌왔다. 김일성과 김정일이 사망했을 때 모두가 북한의 붕괴를 예상했지만 북한은 버텨냈다. 나는 미국이 북한에 대해 좀 더 현실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령 북한과의 관계를 어느 정도 회복한 뒤, 미국이 먼저 호의를 보인 다음 북에게서 상응하는 것을 얻고 미래에 관계가 완전히 개선됐을 때 또 상호간의 ‘등가교환’의 이치에 맞는 협상을 해야 한다. 분명한 것은 북한을 더 자극할수록 미국이 원하는 북핵 완전 폐기와는 점점 멀어지게 될 거라는 것이다.
- 미중관계는 미국의 대북정책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 최근 중국과의 관계는 위아래로 기복이 꽤 심한 편이었다. 중국과의 관계는 지금보다 개선되야 할 필요가 있다. 우선 중국과 마찰이 심화될수록 미국이 북한을 협상테이블로 불러들이기 더 힘들어진다. 미국이 북한에 아무리 제재를 가한다 하더라도 중국이 이를 도와주지 않으면 북한의 숨통을 완벽하게 옥죄는 것은 불가능하다. 큰 자금의 흐름이야 막을 수 있더라도 중국이 뒤에서 눈에 띄지 않게 북한을 돕는다면 어떻게 막을 수 있겠나. 미중관계가 악화되면 중국은 대북협상에서 미국을 도와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것이고 미국은 시간과 자원만 낭비하게 된다.
- 미국의 2020 대통령선거가 대북관계에 어떤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하는가?
▲ 그건 누가 이기느냐에 따라 달렸다. 우선 민주당의 경우 주요 경선 후보들이 북한에 대해 말을 많이 하지 않아서 정확한 예측은 어렵지만 버니 샌더스와 엘리자베스 워런 후보는 북한과의 대화에 더 적극적으로 임할 것이다. 반대로 조 바이든과 에이미 클로버샤 후보는 오바마 전 대통령의 대북전략이었던 ‘전략적 인내’를 다시 꺼내들지도 모른다. 오바마는 북한에 트럼프만큼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저 북한을 외교적으로 고립시켜 전쟁을 피하고 북한이 자멸하기를 기다렸다. 반대로,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할 경우 나는 트럼프가 계속 북한과의 협상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트럼프 정부가 북한에 기울인 노력이 단순히 눈앞의 대통령 선거를 위해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 만약 미국이 제재를 모두 철회한다면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것이라고 보는가?
▲ 북한은 절대 핵무기를 쉽게 내주지 않을 것이다. 핵무기는 현재 북한이 가진 가장 강력한 협상카드다. 사실 북한의 전력에 있어 핵무기가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미국이 북한과의 전쟁을 시작하길 원치 않는 가장 큰 이유는 한국을 향한 수많은 장사정포 때문이다. 북한이 전면전에 돌입했을 때 장사정포가 서울을 타격할 경우 셀 수 없이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다. 그런 상황에서 북한에게 핵무기가 없더라도 그렇게 큰 문제가 될 거라고 보진 않는다.
핵무기를 포기하게 하려면 북한에게 그에 상응하는 경제적 보상이 주어져야 하는데, 현재의 북한은 미국을 믿지 않는다. 북한은 미국이 어떻게 이라크를 무너뜨렸는지 잘 기억하고 있다. 우선 미국이 북한과의 신뢰를 회복한 뒤 핵무기 포기를 설득해야 할 것이다. 양국간의 관계가 정상궤도에 올라갔을 때 평화협정이나 경제원조 등의 강력한 혜택을 제안해야 핵무기 포기에 대한 가능성이 그나마 생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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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현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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