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준비를 위해 냉장고에서 꺼낸 스테이크용 고기 한 덩어리를 눈앞에 두고 오만가지 생각이 춤을 춘다. 미국의 농지 중에 87%가 짐승의 먹이를 위해 경작되는 것을 아는가. 세계적으로 쇠고기 소비량이 늘어나, 이윤이 많이 나는 소를 기르는 축사와 짐승의 곡물 밭을 일구려고 산림을 벌채하고, 지구의 산소공급처인 아마존 숲들이 계속 파괴되고 있단다.
소의 방귀가 지구를 뜨겁게 한다는 사실을 아는가. 소는 하루에 약 200리터의 메탄가스를 뿜어낸단다. 미국의 9800만 마리의 소의 방귀는 이번에 텍사스를 강타한 허리케인 ‘하비’와 플로리다를 강타한 ‘어마’에게 더 큰 힘을 실어주었다. 지구의 온도를 높이는 효과에 있어서 메탄은 이산화탄소의 21배라니, 소는 온실가스의 못된 주범이다.
아이고, 고깃덩어리를 다시 냉장고에 넣어야 하나 잠시 망설인다. 그러나 마음의 귀를 틀어막고 눈을 감는다. 지구를 잠시 잊기로 고개를 가로젓는다. 양심의 소리는 못 들은 척, 나의 게으른 마음은 ‘그냥 또 스테이크’라고 결정의 방망이를 땅땅 두드린다.
돼지고기를 싫어하는 나 때문에, 생선과 닭고기를 싫어하는 남편 때문에, 식단의 선택 폭이 좁아지기도 하지만 스테이크는 남편이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다. 내가 국을 끓이지 않아도 되는 유일한 메뉴이고 남편이 요리사가 되는 유일한 식단이다. 그는 바깥에 있는 바비큐그릴에서 스테이크를 굽는다. 수십 년의 경력으로 아직 미슐랭엔 이름을 못 올렸지만 스스로 별 3개 정도는 된다고 자랑하곤 한다. 바깥부분은 고소한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갈색이지만 속살은 여전히 불그스레한 육즙을 유지하는 자기만의 비밀을 간직한 프로 요리사 수준이다, 남편은 손님이 오면 무조건 스테이크를 굽자고 한다. 나야 제일 편한 메뉴인지라 마다하지 않는다. 또 대부분의 손님은 질 좋은 그의 스테이크에 만족해한다. 밥과 야채샐러드 하나만으로 식사준비는 간단하다. 때론 김치 하나만으로도 환상의 궁합이 된다.
그런데 ‘고기 맛을 아는 남자’가 되어 너무 자주 스테이크를 찾는 것이 문제이다. 고기를 먹으면 몸속에 엔도칸나비노이드라는 성분이 생긴다. 이것이 뇌의 칸나비노이드 수용체를 자극해서 쾌감을 느끼게 하여, 고기를 먹을수록 더 먹고 싶다고 한다.
미국은 세계 최대 육류 소비국이다. 일 인당 연간 육류 소비량이 89.7kg이다. OECD의 평균은 63.5kg인데 한국은 그에 못 미치는 51.3kg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한국은 돼지고기 소비가 많은 반면에 일 인당 GDP가 3만 달러 이상인 국가는 닭고기의 소비량이 쇠고기나 돼지고기보다 많다는 것이다. 닭고기는 쇠고기에 비해 1/28의 토지와 1/11의 물로 생산이 가능하고 값도 싸니 ‘착한 고기’이다. 세계에서 소가 제일 많은 나라가 인도이다. 인도는 일 인당 소고기 소비량이 2.6kg이다. 50%의 인구가 철분 부족이고, 10명에 9명은 단백질 부족 현상을 겪고 있다. 그러나 소를 신성시하여 쇠고기를 먹지 않는 그들도 환경문제에선 자유로울 수가 없다.
우리는 매일 요리하고, 먹고, 마신다. 그뿐인가,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일하고, 운전한다. 기후변화라는 지구 현상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듯 반복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모든 행동엔 탄소발자국이 따라다닌다. ‘불편한 진실’이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무시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그런 인식이 우리의 지구를 서서히 병들게 만들고 있다.
신문을 보다가 마스크를 쓴 중국 베이징 여성 사진 한 장을 보며 나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하얀 마스크에 달린 허연 튜브는 그녀가 메고 있는 공기를 걸러주는 필터 기계에 연결되어있었다. 직장으로 출근하는 장면이란다. 마치 중환자실에서 방금 나온 환자의 모습이다. 미국이라고 언제까지나 안전할까. 이것이 미래의 우리 손주들이 마스크를 쓰고 출근하는 모습이 아닐까. 우리가 상호의존하고 있는 지구의 모든 생태계와의 연결고리를 무시하며 현재를 계속 살아간다면, 그들을 이러한 험난한 재앙 속으로 더 빨리 내모는 죄를 범하는 것은 아닐까.
채식주의자가 될 용기는 없다. 그러나 한정된 자원을 이용하여 살아야 하는 우리의 미래를 위해 덜 먹을 수는 있다. 쇠고기를 덜 먹는 것이 환경오염을 염려해서 차를 안 타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이라 하지 않는가!
51% 이상의 온실가스의 원인은 가축 농사라 한다. 쇠고기에 비교하면 ‘착한 고기’인 닭고기에 정을 붙이도록 노력해야 할까? 일주일에 한 번은 고기 없는 식단을 의식적으로 실천해 볼까? 앞으로 나온다는 인조고기로도 똑같은 스테이크 맛을 낼 수 있을까?
나의 안이함과 혀끝의 쾌감을 위해, 내가 지금 바람을 심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 바람이 후에 큰 태풍을 몰고 올 텐데……. 건강문제, 경제문제, 자연환경문제를 생각하면 스테이크를 자주 식단에 올려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남편이 잘라주는 1/4 정도의 스테이크를 먹는다. 그는 ¾을 가지고 세상을 다 얻은 듯 행복해 보인다. 그를 쳐다보며 열두 가지 생각이 서로 꼬리를 문다.
나의 양심이여~ 매일매일 지구를 위해 분투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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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애 워싱턴 문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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