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봉희의‘클래식 톡톡(Classic Talk Talk)’
“Essi sono, e vero, il frutto di una lunga, e laboriosa fatica” (그들은 오랜 시간과 노력의 결실이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는 하이든(Joseph Haydn, 1732~1809)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담아 작곡한 자신의 현악 사중주 Op.10을 하이든에게 헌정하였다. 모차르트의 <하이든 현악사중주>로 불리는 이 작품들은 14번에서 19번까지 총 여섯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이든 현악사중주>는 1782년에 작곡을 시작했지만 전 작품이 1785년에 완성되었고, 빈에서 출판사 아타리아(Artaria)에 의해 출판되었다. ‘오랜 시간과 노력의 결실’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모차르트는 현악사중주의 대가였던 하이든에게 이 작품을 헌정하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다. 그 노력의 증거는 모차르트의 자필 악보에 나타난 수없는 수정의 흔적에서 보여진다. 하이든의 음악 언어를 자신의 언어로 재탄생 시키는 것이 ‘천재’ 모차르트에게도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었던 것이다.
현악 사중주 (String Quartet)
‘현악 사중주’라는 장르는 유럽 음악의 가장 뛰어난 발명품 중 하나이다. 가장 이상적인 음색의 조합인 두 대의 바이올린과 한 대의 비올라, 한 대의 첼로가 만들어내는 현악 사중주를 통해 하이든은 고전 기악음악의 새로운 양식과 자신만의 독창성을 추구하고자 하였다. 당시 바이올린 족 악기들은 더 이상의 개량이 필요 없을 정도로 충분히 개발되어 있었다. 하이든에게 바이올린 족 악기 네 대를 사용한 이 조합은 호모포니(한 성부가 주선율을 담당하고 다른 성부가 화성적으로 반주하는 형태의 음악양식)와 폴리포니(몇 개의 성부가 대등하게 각각 독립성을 가지면서 전체적인 조화를 유지해가도록 하는 음악양식)를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매체였던 것이다.
그러나 19세기에 들어서며 ‘현악사중주’ 유행은 주춤하기 시작한다. 현악사중주를 하나 밖에 쓰지 않은 작곡가들도 생겨난다. 아마도 현악사중주가 범접하기 어려운 장르로 여겨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현대에 접어들면서 현악사중주는 다시 인기를 얻어 쇤베르크, 바르톡 등 음악가들의 곡들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하이든 현악 사중주 Op.33의 위치
1781년, 하이든은 현악 사중주 Op.33을 발표한다. 1772년 〈태양 사중주 Op.20〉 이후 약 10년 만에 내놓은 현악사중주였다. 하이든은 Op.33에 대해 “이 곡들은 이전과는 다른 전혀 새로운 방법(a new and special way)으로 작곡되었다”라고 말했다. 이에 Op.33은 출판되기 전부터 예약 주문이 쇄도했다. 음악학자 찰스 로즌(Charles Rosen, 1927~2012)은 그의 저서 <클래식 양식: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에서 이 작품을 ‘혁명적’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실제로 하이든의 이전 작품들과 비교해보면 Op.33에서는 이전과 다른 시도들을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4악장으로 이루어진 사중주의 3악장을 오랫동안 기악곡의 한 악장을 차지해온 궁중 풍 춤곡인 미뉴에트(Minuet) 대신 스케르초(Scherzo)로 작곡했다. 이탈리아어로 ‘농담’을 의미하는 스케르초는 해학적인 느낌의 빠른 음악이다. 이것은 이전 사중주에서는 볼 수 없었던 최초의 시도였으며, 스케르초의 삽입으로 곡의 분위기가 한층 가볍고 경쾌해졌다.
빈에 머물고 있던 러시아 대공 파벨 페트로비치(Pavel Petrovich, 1754~1801)에게 헌정되어 〈러시아 사중주〉라고 불리게 된 하이든의 Op.33은 그의 현악 사중주 중에서도 가장 완성도가 높으며 대중적으로도 제일 인기가 많다. 이 작품이 발표된 1781년은 모차르트가 잘츠부르크를 떠나 빈에 정착한 첫 해이기도 하다. 하이든의 <러시아 사중주>에 매료된 모차르트는 이 작품을 본보기로 삼아 자신의 현악사중주 작곡에 착수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여섯 편의 모차르트 현악사중주는 하이든에게 헌정되어 <하이든 현악사중주>라고 불리게 되었다. 또한 하이든의 제자였던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이 완성도 높은 첫 현악 사중주(Op.18)를 쓸 수 있었던 것도 하이든의 <러시아 사중주>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이든은 ‘교향곡의 아버지’로 잘 알려져 있지만 동시에 ‘현악 사중주의 아버지’이기도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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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희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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