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봉희의‘클래식 톡톡(Classic Talk Talk)’
지난달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3번으로 아직 피아노 협주곡의 감동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면 이번에는 안드레 와츠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이 그 바통을 이어 받는다. 내년 1월에는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라이브로 감상 할 수 있는 기회도 있으니 놓치지 않길 바란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3번, 그리고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은 오늘날 러시아를 대표하는 피아노 협주곡들로 꼽힌다.
라흐마니노프(Sergei Rachmaninoff, 1873~1943)는 특히 피아노에 탁월한 재능을 보이며 어려서부터 러시아 음악계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자신이 피아니스트였기 때문인지 그의 중요 작품은 대부분 피아노를 위한 곡이다. 다른 사람보다 유난히 큰 손을 가졌던 그의 피아노 작품은 피아니스트들에게 끊임없는 힘, 열정, 긴장감을 요구한다. 당시 그는 건반을 장악한 채 육중하고 화려한 연주를 선보였고, 청중들은 그의 초인적 기교에 열광했다고 전해진다.
라흐마니노프는 17세 때부터 피아노 협주곡을 쓰기 시작하였다. 그 중 피아노 협주곡 2번(Piano Concerto No.2 in C minor, Op.18)이 제일 유명한데, 1901년 자신의 연주로 초연하여 대성공을 거두었다. 피아노 협주곡 2번으로 그는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로서 확실한 입지를 다지게 된다. 1909년 미국까지 건너가 순회 연주회를 열었고, 이 무렵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완성하기도 하였다. 당시 최고의 피아니스트 호로비츠(Vladimir Horowitz, 1903~1989)에게 피아노 협주곡 3번을 헌정하였으며, 호로비츠로부터 “내가 바라던 바로 그 협주곡”이라는 찬사를 들었다.
그러나 그런 라흐마니노프에게도 어려움은 있었다. 젊은 나이에 작곡했던 교향곡 1번의 초연이 실패를 하면서 3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그는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게 되었다. 쇠퇴해가는 창작력과 그로 인한 강박에 정신 상태가 악화되었던 것이다. 라흐마니노프는 니콜라이 달 박사의 도움으로 자기암시치료를 통해 우울증을 극복하게 된다. 치료가 효과가 있었는지 그는 새 협주곡을 쓰게 되었고, 이 곡을 후에 달 박사에게 헌정한다. 이 작품이 바로 피아노 협주곡 2번이었다. 라흐마니노프의 이야기는 한국에서 뮤지컬 <라흐마니노프>로 재탄생해 인기를 얻기도 하였다. 뮤지컬 <라흐마니노프>는 그가 교향곡 1번의 실패로 힘들어했던 시기의 심리를 집중적으로 다뤄 당시 그의 치료를 도왔던 니콜라이 달 박사와의 이야기를 그렸다.
교향곡 1번 초연 실패의 아픔을 가진 라흐마니노프는 매우 긴장했었지만, 그는 피아노 연주자로 직접 무대에 오를 것을 결심하였다. 라흐마니노프는 뛰어난 피아니스트이기도 하였다. 그렇기에 자신이 작곡한 곡을 직접 연주함으로써 완벽에 가까운 해석력으로 초연을 성공적으로 끝낼 수 있었을 것이다. 1901년, 그렇게 피아노 협주곡 2번 초연이 완전한 성공을 거두며 그는 자신감을 회복하고 작곡가로서의 걸음을 다시 걷기 시작하였다. 또한 이 작품으로 미하일 글린카 상(Mikhail Glinka)을 수상하는 영예도 얻었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어두웠던 시기에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기고 재기의 발판을 만들어 준 중요한 작품이다.
라흐마니노프는 네 곡의 피아노 협주곡을 남겼다. 그 중 피아노 협주곡 2번이 가장 자주 연주되며 대중적으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은 2015년에 KBS 클래식 FM이 마련한 설문조사에서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클래식 음악’으로 뽑히기도 하였다. 이 작품은 러시아적인 우수를 담고 있는 피아노 협주곡의 걸작으로 힘과 테크닉을 모두 요하는 난이도 높은 곡이다. 1악장은 장중한 피아노 독주로 시작해 오케스트라가 드라마틱한 1주제를 제시한다. 마치 파도가 몰아치는 것 같은 선율로 가득 하다. 2악장은 느린 템포의 악장이다. 자유로운 형식의 환상곡으로 피아노의 독무대와 오케스트라의 풍부하고 다채로운 음색이 잘 어울린다. 특히 2악장은 미국의 팝가수 에릭 카먼(Eric Carmen, 1949~)이 노래했던 ‘All by Myself’의 오리지널 선율을 담고 있다. 이는 클래식 음악을 팝송에 적용시킨 대표적인 예이다. 마지막 악장인 3악장에서 화려하고 장대하게 펼쳐지는 피아노 테크닉은 묘기에 가깝다.
개인적으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이 깊어가는 가을밤의 정취와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오는 11월 17~19일, 볼티모어의 마이어호프(Meyerhoff)와 베데스다의 스트라스모어(Strathmore)에서 피아니스트 안드레 와츠(André Watts, 1946~)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들고 청중들과 만난다. 와츠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자리매김 할 수 있었던 첫 번째 계기는 그의 나이 16세 때였다. 미국 출신의 지휘자,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였던 레너드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 1918~1990)으로부터 일찍이 눈도장을 받은 와츠가 뉴욕 필하모닉과 함께했던 청소년 음악회는 당시 CBS를 통해 미국 전역에 방송되었다. 와츠는 리스트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잘 소화해 내었다. 이후 건강 문제로 무대에 서지 못한 글렌 굴드(Glenn Gould, 1932~1982)를 대신했던 연주로도 주목을 받았다.
안드레 와츠는 레온 플라이셔(Leon Fleisher, 1928~)를 사사하며 피바디 음악원에서 공부를 해 볼티모어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하였다. 와츠는 2년 전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3번으로 볼티모어를 다시 찾았다. 볼티모어 심포니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이었다. 당시 필자는 우연히 연주 전날 리허설을 관람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운 좋게도 그가 피아니스트로서 오케스트라와 소통하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고, 리허설 후 직접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음악을 하는 후배로서, 팬으로서, 리허설 후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순간은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당시 인자한 웃음으로 나를 맞아 주었던 그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다음날, 콘서트에서 라이브로 와츠의 연주를 다시 들었다. 그가 연주했던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3번은 깔끔하고 세련되어 청중들의 기립박수를 받기에 충분했다. 2년 뒤인 오는 11월, 안드레 와츠와 볼티모어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다시 만난다. 2년 전 그의 모차르트를 기대했던 것처럼 그의 손으로 연주될 라흐마니노프도 기대해 본다.
* 음악회 정보 및 티켓 구입: 볼티모어 심포니 오케스트라(Baltimore Symphony Orchestra) 공식 웹사이트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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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희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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