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춘원 이광수가 1917년 최초의 순 한글 장편 소설 무정을 매일신문에 연재한 것을 기념한 ‘무정 소설 발간 100 주년 기념 심포지엄’이 워싱턴 근교 조지 메이슨 대학에서 열렸다. 춘원학회 회장이신 송현호 교수의 무정 소설 발간 100 년 후에 새로운 조명 이란 논문도 좋았고, 양왕용 교수의 시인으로서의 춘원의 자리 매김 논문도 좋았다. 그러나 그날 심포지엄의 하이라이트는 일본 니가다 대학의 하타노 세즈코 (Hatano Setsuko) 교수의 ‘무정과 한글’이란 주제의 논문발표이었다.
그런데 나는 언제나 일본인에게서 한글이나 한국 언어 이야기가 나오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바로 오구라 신페이(小倉進平)이다. 그리고 그의 존재는 어떤 의미에선 자존심이 상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그 분이 1911년 조선총독부에 일하면서 최초로 이두문자를 해독하고 그래서 신라의 향가를 읽을 수 있게 됐다는 사실 때문이다. 아쉽게도 나는 그를 학자로서 그 연구 성과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지만 한국의 많은 국문학자들이 그의 연구 성과를 식민정책의 일부분이라고 평가 절하하고 매도하고 있어 나 같은 사람은 목소리도 못 내고 있다. 그러나 내가 이번에 만난 하타노 교수는 이러한 논쟁조차 일으킬 대상의 분이 아니었다. 그분은 한글을 연구하다가 춘원의 소설을 읽고 감탄이 아니라 매료되어서 30년을 춘원의 작품 세계에 빠져 들어간 분이다. 그리고 이곳저곳 자료 수집을 하다가 아무도 존재조차 몰랐던 춘원의 여러 편의 소위 옥필(肉筆) 시 원고를 발견하기도 한분이다. 그런데 이번 심포지움에서 그 분은 흥미로운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좀 구체적으로 설명 하자면, 사실 여지껏 무정이란 소설이 한국 현대문학에 있어서 역사적인 금자탑을 쌓은 점은 처음으로 소설을 순한글로 써서 남녀, 지식층이나 일반 대중 모두가 읽을 수 있게 했고, 그리고 이로 인해서 글자 속에 언어의 통일내지는 한 언어권으로 단단히 결속되는 계기는 물론 많은 사람들이 풍족한 어휘를 사용하게 되었다 는 점일 것이다.
그런데 하타노 교수는 새로운 학설을 내 세웠다. 그 학설이란 소설 무정에서 춘원의 원고는 한글과 한자(國漢文)로 되어있었다. 그런데 그 원고에 한문이란 것이 한글로 바꾸어도 그 내용을 충분히 알아볼 수 있게 쓴 것이었고, 매일신문의 나까무라 겐타로(中村建太郞)씨가 이것을 순한글로 바꾸었다는 내용이었다. 다시 말해서 춘원이 많은 단어들을 한문으로 썼다 해도 그 글은 한글로 가는 길을 열어준 것이었고, 그래서 다음과 같이 한글로 바꾸어 썼을 때 그 내용을 이해하는데 조금도 문제가 없었을 것이란 것과 그래서 매일신문의 나까무라 겐타로씨가 아무런 문제없이 춘원의 국한문 원고를 순한글로 바꾸어 실었다는 내용이었다. 이해를 돕고자 내가 한 예로서 국한문 원고의 한 구절을 순한글로 써본다 “경성학교 영어교사 이형식은 오후 두 시 사년 급 영어시간을 마치고 6 월 볕에 땀을 흘리며 안동 김 장노 집으로 간다.”
나는 지금 온 생을 춘원 문학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하타노 교수의 발표대로 1917년 당시 춘원이 무정 소설을 국한문으로 썼는지 아닌지 그 여부에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하타노 교수는 물론이고 오쿠라 센페이, 나까무라 겐타로 같이 일본 제국주의 공무원으로서 한국 언론의 검열이나 정책 수행을 하는 사람들이 자기 나라 정책과 무관하게 한글 지키기, 한국 문학 문화 지키기에 노력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 소위 친한파의 존재에 뜨거운 마음을 느낀다. 그러면서 물론 일본번역 소설이 한글판으로 많이 출간되기는 하지만 이제 한국도 예를 들어서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작품 세계에 푹 빠져서 30년 이상 일생을 연구하는 친일파가 나왔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친일파 하면 나라 팔아먹는 놈들이란 인식에서 벗어나 이제는 서로의 문학 예술세계 더 나아가 정신세계를 탐험하는 새로운 세대의 패러다임으로 가야 한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나는 얼마 멀지 않은 장래에 춘원의 세계를 탐험하는 하타노 교수 같은 친한파의 노력을 아주 높게 평가하는 세대가 올 것으로 믿는다. 그러면서 일본의 정신세계를 탐험 할 일본내 친일파의 등장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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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묵 문인/ 맥클린,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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