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봉희의‘클래식 톡톡(Classic Talk Talk)’
헝가리 태생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 1811~1886). 당시 그가 태어난 지역은 독일어권에 속해 있었다. 또한 리스트는 음악공부를 위해 성장기의 대부분을 빈에서 보냈으며 평상시에도 헝가리어가 아닌 독일어를 사용하였다. 때문에 그의 음악에 헝가리적인 특징은 많이 나타나지 않는다. 빈에서 리스트는 뛰어난 음악교육자였던 체르니(Carl Czerny, 1791~1857)에게 피아노를 배웠으며 살리에리(Antonio Salieri, 1750~1825)에게 작곡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그는 프랑스에서 전성기를 맞았고, 연주 여행 생활을 접은 후에도 헝가리가 아닌 독일 바이마르 등에서 여생을 보냈다. 리스트는 피아노의 마술사라 불리며 쇼팽(Frederic Chopin, 1810~1849)이 제시한 피아노 기교를 퍼뜨리고 발전시켰으며, 표제음악의 일종인 교향시(symphonic poem)양식을 창시한 인물 중 한명으로 우리에게 기억되고 있다.
1827년, 리스트의 아버지인 아담 리스트(Adam Liszt, 1776~ 1827)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남과 동시에 큰 문제 없이 착실하게 음악가의 커리어를 쌓아가던 리스트에게 어려움이 닥친다. 연주여행도 중단되었으며 돈벌이를 위해 그는 어머니와 함께 빈을 떠나 프랑스 파리의 작은 아파트로 이주한다. 리스트는 1831년 파리에서 당대 최고의 기교파 바이올리니스트인 파가니니(Niccole Paganini, 1782~1840)의 연주를 듣는다. 이후 ‘피아노의 파가니니’가 되겠다고 결심한 리스트의 작품들은 극악의 난이도로 악명이 높아진다. 리스트의 바이올린 협주곡 2번 3악장을 모티브로 한 ‘작은 종에 의한 화려한 대 환상곡(Grand Fantasia de Bravoure sur La Clochette)’은 파가니니의 영향을 받은 리스트의 첫 작품이다. 이 곡은 <파가니니에 의한 대 연습곡집 S.141>에 수록된 여섯개의 연습곡 중 하나인 ‘라 캄파넬라(La Campanella)’의 시초가 된다.
리스트가 가장 중점적으로 작곡한 것은 피아노곡이었다. 그는 뛰어난 피아니스트였으며 태생적으로 큰 손을 가졌기 때문에 매우 화려하고 기교가 많이 섞인 곡을 즐겨 작곡했다. 웬만한 연주자들은 그의 음악을 연주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리스트의 많은 피아노곡 중 대부분의 작품들은 다른 작곡가의 곡을 편곡한 것이다. 당시 비싼 연주회장에 자주 갈 수 없는 일반인들을 위해 접하기 어려운 관현악곡을 피아노로 편곡하여 즐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작곡가의 곡을 편곡하거나 연주해서 알리기도 하였다. 이처럼 리스트는 자신이 직접 작곡한 음악보다 다른 음악가들의 작품을 피아노곡으로 편곡한 업적을 더 인정받고 있는데, 대표적인 작품은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의 교향곡 전곡이다. 9곡을 모두 피아노로 편곡한 이 작품은 매우 높은 난이도를 자랑한다.
피아노 분야의 뛰어난 활약상에 가려졌지만 리스트는 ‘교향시’라는 관현악 장르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교향시는 시, 소설, 회화 등 다른 예술분야에서 얻은 인상이나 작곡자가 착상한 시적 영감을 음악으로 표현한 것이다. 교향시는 작품의 길이가 길고 엄격한 형식을 가진 교향곡에 비해 훨씬 자유롭고 표제적인 특징을 가진다. 이후 슈트라우스, 생상스, 시벨리우스 등 많은 작곡가들의 중요한 음악장르로 자리잡게 된다.
무엇보다 리스트의 이름이 오늘날까지 남게 된 것은 악보로 남겨진 그의 음악 덕분이었다. 자신이 가진 기술의 전수에 인색했던 파가니니와 달리 리스트는 자신이 창안하고 터득한 운지법, 작곡법 등을 공개하고 가르쳐주었던 것이다. 리스트는 연주와 작곡 외에도 당시 많은 후배 작곡가들의 스승이자 후원자 역할을 하였다. 헝가리의 수많은 대 작곡가들을 배출한 헝가리 국립 음악원(Hungarian National School of Music)도 리스트의 주도로 설립되었다. 현재까지도 그의 모국인 헝가리에서는 리스트를 역사상 가장 존경하는 인물 중 한명으로 기념하고 있다. ‘리스트 페렌츠’가 그의 헝가리식 이름인데 리스트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여 2011년에 이름을 바꾼 부다페스트 국제공항(Budapest Ferenc Liszt International Airport)의 이름에 그의 이름이 들어가기도 했다.
리스트는 우아하고 간결한 화음을 짚는 고전적인 기법을 따르지 않고 관현악 음향과 맞먹는 화려하고 우렁찬 연주 효과를 추구했다. 이런 이유로 리스트는 낭만주의 안에서 고전주의를 지향한 브람스와 노선을 달리하였고, 그의 연주는 매우 감정적이고 화려하며 전례 없는 빠른 속도를 가지게 되었다. 아무리 그가 뛰어난 피아니스트일지라도 음악성 없는 피아노 기술자에 불과했다면 그의 이름과 작품들은 그대로 잊혀졌거나 손가락 연습용 교재로만 활용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뛰어난 음악성과 연주 가치 덕분에 그와 동시대에 활약했던 거장들 가운데 리스트의 이름이 후대에까지 남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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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희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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