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춘원 이광수의 소설‘무정’100주년을 기념하며>
동양권에서 소설의 시작은 패관(牌官)문학으로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본래 중국 한나라 때에 패관이란 직책을 가진 자가 시정에 떠도는 이야기들을 황실에 고하여 정치를 펴는데 도움을 주려는 것이 목적이었다. 하나 실제로는 황제를 비롯한 궁중사람들의 호기심 더 나아가 흥미로운 이야기꺼리를 모아서 알렸기에 인기가 높았다.
한국에도 고려 때에 이러한 시정에 떠도는 이야기, 설화, 또는 아마도 누군가가 지어낸 이야기들을 글로 적었기에 왕궁은 물론 양반들이 흥미롭게 읽혀 진듯하다. 물론 이러한 글이란 한문으로 서술되었다. 기록에 의하면 고려 고종 때에 이규보의 백운소설, 이인로의 파한집, 이제현의 역용패설들이 소개 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이 계속 이어지고 창작의 문턱에 들어섰다. 그리고 대부분이 문맹들이었던 서민들에게는 글자로 전래되지 않고 구두로 승계되어 급기야 이것이 홍보가, 심청가, 춘향가 같은 판소리로 전개되기도 하였고, 다른 또 한 갈래는 문자화되었다. 허균의 홍길동전, 김만중의 구운몽, 박지원의 열하일기 중 호질, 양반전 같은 것이 좋은 예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이 19 세기 말부터 이 고전소설과 현대소설의 징검다리로 근대소설이 있다고 하면서 1906 년 이인직의 ‘혈의 누’ 1908년 신채호의 ‘이순신’ 같은 것을 꼽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1916 년 이인직의 사망 후 다음 해인 1917 년 춘원의 ‘무정’ 소설부터 현대 소설의 시작이라며 춘원 본인은 물론 많은 문학 평론가들이 그렇게 자리매김하고 있지만 나는 춘원과 평론가들이 구분해 놓는 근대소설과 현대소설이란 분계를 동의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여 이인직, 신채호의 작품 역시 현대소설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록 평론가들이 말하는 근대 소설이란 것이 조강지처와 시앗 이야기, 또 대부분의 내용이 권선징악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할 수도 있고, ‘뭐 뭐라고 카더라’ 하는 식의 고전소설에서 크게 달라지지는 못했고, 묘사보다 설명, 그리고 개화기의 계몽의 치중된 점이 있다하더라도 전문이 한글로 그리고 소설로서 구성이 그런대로 소설로 자리매김이 되었다는 말이다.
그러면 내가 현대소설의 시초가 춘원이 아니라고 한다면 나는 그의 가치와 자리 매김은 어디서 찾아야 하나? 나의 대답은 ‘춘원을 영국의 작가 셰익스피어와 같은 자리에 그를 올려놓고 싶다’ 이다.
사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그 내용이나 소설 구조 등을 오늘날에 눈높이로 살펴 볼 때에 시대적 사회상을 잘 그려냈다고 할 수 있으나 그 소설이 깊은 맛은 예를 들자면 러시아의 명작 소설들에 비하면 좀 못한 것 같다.
그러나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당시 서로 소통이 어려운 지방마다 제 각각 하나의 나라 같은 언어에 가까운 사투리를 묶어서 하나의 영어권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베니스 상인에서 포샤의 ‘살 한 파운드는 되나 기독교의 피 한 방울도 안 된다’는 법정 변호, 햄릿의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로 시작하는 독백, 줄리어스 시저에서 ‘나는 그를 묻으러 왔지 그를 찬양하러 오지 않았다’ 하는 안토니오의 명연설 같은 것으로 영어로의 언어의 통합은 물론 영어의 단어와 문장의 영역을 넓힌 것으로 그의 최대의 가치를 찾아야 할 것이다.
나는 춘원을 한국 땅에서 영국에서의 셰익스피어와 동일한 위치에 올려놓아야 한다고 생각되는 점이 바로 이 때문이다. 사실 춘원은 당시에 경상도 전라도 함경도 등 사투리를 표준말로 바꾸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한국 땅에서 서로 최소한 소통을 하게했으며 사람마다 그저 마음대로 쓰던 언문(당시 한글을 그렇게 불렀다)을 독자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하나의 언문으로 통일 시켜 나가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그는 무정 소설 하나 속에서 남자 주인공 이형식, 신여성의 김병옥, 그리고 주인공 박영채의 입을 통하여 햄릿의 독백,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발코니에서 대화, 베니스의 상인에서의 포샤의 법정 공방 등 주옥같은 글들과 비견할 수 있는 명문들을 무정이란 소설 한편에 다 실린 것이라 믿어진다.
그리고 소설의 기승전결의 기법과 글의 내용이 지금의 눈높이로서는 우리를 감동시킬 수 없을지라도 당시의 독자의 눈높이로는 정말 코르페니쿠스적 발상의 변화와 전개이었을 것 같다. 확실히 춘원을 그 시대에 우리가 가졌다는 것은 한국 문학계에 축복이었으리라 생각된다.
<
이영묵 문인/ 맥클린, VA>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