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urse Plants in Patagonia
▶ -파타고니아 지역을 여행하고 와서
은퇴하고 나니 나 자신이 비로소 내 삶의 주인이 된 느낌이다. 어렸을 적부터 꿈꿔 오던 ‘세상의 땅끝 마을 (Fin del Mundo)’을 가 보기로 하였다. 워싱턴에서 Chile의 Punta Arenas 공항으로 날아가 배낭족 대학생들과 어울리며, 버스를 여러 번 갈아 탄 후에 Argentina의 Ushuaia에 도착했다. 직행으로 갈 수도 있었지만 Patagonia 지방의 풍광을 구경하고 싶어서 택한 우회코스였다. 지방 버스로 Torres del Paine 국립공원을 거쳐 멀리 돌아서 간 셈이다. 상상만 해왔던 ‘땅끝 마을’에선 제대로 걷기가 힘들 정도로 강한 바람이 자주 분다. 그 탓에 작물이나 채소 재배는 힘들고, 대신 지평선 너머로 한도 끝도 없이 펼쳐져 있는 관목 지대에서 주로 양을 방목한다.
이곳 토착 동물인 낙타과의 ‘Guanaco’는 쫓겨나 보호구역 안에서 살고 있다. 삐쩍 마른 떠돌이 몇 마리가 먹을 것이 많은 울타리 안 방목지에 들어가지 못해, 위험을 무릅쓰고 도로가에서 어렵사리 풀을 뜯고 있다. 얼마 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에서 본 원숭이 일가족의 모습이 생각난다. 그 원숭이들은 길가의 휴게소를 점령한 채 지나가는 차에 먹을 것을 구걸하고 있었다. 수종 갱신 사업으로 천연림을 베어 내고 Eucalyptus림을 조성하는 바람에, 먹이가 없어져 사람들에게 손을 내미는 신세가 되었단다.
크게 보면, 사람이나 야생의 동물이나 밥줄 놓치면 그 운명은 기본적으로 비슷한 모양이다.
Ushuaia의 여객선 터미널 근처에는 바로 앞에 펼쳐진 Beagle Channel을 둘러보는 Daily Excursions을 파는 여행사 Booth가 많이 있는데 나는 그중에서 금방 출발한다는 관람선의 표를 샀다. 1831년 Charles Darwin이 영국에서 HMS Beagle호를 타고 이곳에 도착하여 얼마간 머무르며 자료 수집과 연구를 하였다 하여 ‘Beagle Channel’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Beagle호의 선장은 이곳에 머무는 동안 과로로 쓰러져 병사하였다고 하는데 그의 묘지에 세웠던 내 키 높이 정도 되는, 세월에 바래어 회색이 되어 버린 십자가를 Punta Arenas의 자연사 박물관에서 보았는데 Charles Darwin을 간접적으로나마 만난 듯하여 기분이 좀 묘하였다. 왜냐하면 그도 선장의 장례식에서 바로 이 십자가를 보았을 터이니까.
이곳에서 북쪽으로 약 100 miles 정도 올라가면,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나아가는 마젤란 해협(Estrecho de Magallanes)이 있다. 마젤란이 세계 일주를 할 때 이곳을 지나면서, 추운 날씨에도 벗은 채로 횃불을 들고 뛰어다니는 거인족을 만났다고 하는데, 이 주변 지역이 그들의 횃불로 환하게 밝아 보여 이곳을 ‘Tierra del Fuego(불의 땅)’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어쩌면 지구 상에 남아 있던 마지막 수렵 채취인(Hunters & Gatherers)들이었을 그들은 바느질을 할 줄 몰라, 동물의 털가죽을 그냥 망토처럼 어깨에 걸치고, 물개의 기름을 몸에 발라 추위를 견디었다고 한다. 1800년대 후반에 서양 선교사들이 옷도 가져다주고, 집과 학교도 지어주고 글도 가르치고, 복음을 전파하며, 문명세계로 이끌려고 노력하였으나, 불행히도 구제품 옷 속에 묻어 들어온 벼룩(Ticks)이 매개하는 질병 때문에 1905년에 멸족되었다고 한다. 자연사 박물관에 전시된 그들의 사진을 보면 몸집이 꽤 큰 동양인의 모습 이었으나, 마젤란 항해 일지에서 묘사하는 만큼 그렇게 큰 거인은 아니었다.
Beagle Channel 안에는 조그마한 섬들이 많이 있는데 그중에서 물개가 살지 않는 어느 섬에 내려 섬 전체를 돌아다녀 볼 기회가 있었다. 어찌나 기온이 찬 지, 살을 에이는 듯한 영하의 강풍이 쉴 새 없이 몰아치고, 그 추위에 얼굴 근육이 얼어서 마비될 지경이었다. 섬의 곳곳엔 관목이나 풀이 자라지 못하는 암석층의 지질이 흔하게 보인다.
그런데 이 황량한 달나라 같은 곳에서 한 가지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초록색 이끼들로 뒤덮인 채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둥근 덩어리들이었다. 호기심에, 그 위에 올라가서 굴러도 보고, 발로 힘껏 차 보기도 하였으나 어찌나 단단한지 꿈쩍도 하지 않아 그냥 바위 덩어리 인 줄 알고 지나 쳤는데, 답사를 계속하면서, 그중 깨어진 덩어리 하나를 우연히 발견 하고서야, 이것이 바위 덩이가 아니라, 아주 작은 잎이 촘촘하게 모여진 다년생 초본 식물의 덩어리임을 알게 되었다. 안내인 설명으로는 정확한 이름은 잘 모르지만 보통 이곳 사람들이 ‘Cushion plant’라고 부르는데 일 년에 약 1 mm 정도 씩만 자란다고 한다.
우리가 어떤 식물의 이름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보통 식물의 생식기관에 해당하는 꽃이나 열매의 생김새와 구조를 살펴보는 일이 아주 중요하다. 그 이유는 잎이나 줄기는 일 년 내내 주변 환경에 노출되어 있으므로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어 그 고유한 모습이 많이 변하지만, 꽃과 같은 생식 기관은 일 년 중 어느 특정 시기에만 잠깐 나타나고, 또 잘 보호된 곳에 위치하고 있어 환경의 영향을 덜 받게 되므로 그 식물 종의 고유한 특성을 잘 보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식물 채집 방학 숙제에서 과제물인 식물 표본에 꽃이나 열매가 없으면 무조건 불합격당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요즈음은 그 식물의 모양새나 생태학적 특성들을 세밀히 관찰하여 Google에다 잘 설명해주면, 대개의 경우 그 사진과 함께 그 식물의 이름을 비슷하게 알아낼 수가 있는데 그것은 Google database 안에 식물도감이나 검색표가 이미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요즘 사람들은 머리를 두 개 가지고 있는 셈인데 하나는 원래 목 위에 있는 자기 머리이고, 또 다른 하나는, 양 손 엄지 손가락으로 연결되는 Internet 머리이다. Google을 검색해보니 이 식물은 산형과(Umbelliferae)에 속하는 Bolax gummifera인데, Patagonia의 Andes고산 지역이나, Tierra del Fuego, Falkland Islands 등에 분포한다고 한다.
이 지역 Conception(Chile) 대학교의 연구 논문인 “Nurse effects of Bolax gummifera cushion plants in the alpine vegetation of the Chilean Patagonian Andes (2002, University of Conception)”에 의하면, Andes의 고산 지대나 남극권에 가까운 지역 등, 자연환경이 극단적으로 한계적인 상황에서는 초본이나 관목류 등 지피 식물이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려 식생 천이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일이 아주 어려운데, 바로 이런 환경에서 Bolax 같은 Nursery 역할을 하는 식물 종이 맨 처음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자라면서, 자기 몸 전체로 온실 같은 보호 공간을 형성하고 그 안으로 다른 식물들을 불러들여, 그들이 생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한다. 이 지역에서 자연환경과 균형을 이루어 안정된 Lenga forest를 형성하는 데는 초기 단계에서 이 같은 Nurse plants의 도움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한다.
나는 1970년도 초에 관악산에서 산림식생의 천이에 관한 연구를 하였다. 산림 식생을 상층부 우점종에 따라, 몇 가지 형으로 분류하고 그 안에서 자라고 있는 치수들의 종류와 개체 수를 세어서 식생 천이의 방향을 알아보려 하였는데, 흥미롭게도 언뜻 보아 아무것도 자라지 않을 것 같은 암반 나대지에도 자세히 살펴보면, 갈라진 바위 틈새 속에서 소나무나 노간주나무 등 건조한 토양에 강하고 강렬한 햇볕이 있어야만 싹을 틔우는 양수 수종들을 다수 관찰하였는데, 이들이 바로 Patagonia의 Bolax 같은 Pioneer species에 해당한다. 그 당시에 나는 6.25 전란을 거치며 심하게 파괴된 관악산의 산림 식생이 나대지에서 시작, 소나무 숲, 참나무 숲의 단계를 거처 단풍나무, 까치 박달, 서어나무 등의 숲으로 복원되어 나아갈 것이라고 예측하였는데, 50여 년이 지난 지금, 과연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지, 궁금하다.
인간 사회를 잘 들여다보면 어느 면에서는 산림 군락의 천이 과정과 비슷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한국의 어느 유명한 기업가 한 분이 개척자 정신으로 아무것도 없는 맨 땅에 공장을 세워, 많은 고용을 창출하였는데, 나중에 먹고 살만 하게 되니까, 자기 보고 나가라고 한다고, 크게 섭섭해 하였다 한다. 소나무 씨는 토양이 건조하고 강렬한 햇볕이 있는 벌거벗은 땅에서만 발아를 하는데, 일단 소나무 숲이 형성되고 나면, 토양도 습해지고, 햇볕도 차단되어, 더 이상 그 안에서는 자기 씨의 싹을 틔우고, 살아남을 수 없게 된다. 자기가 애써 변화시킨 환경에서 역설적으로 자기는 살 수 없게 되고, 이 새로운 환경에 적합한 다른 수종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게 된다. 즉 소나무는 “Victims of its own success”이라고 할까? 크게 보아, 산림 식생은 이런 식으로 기후와 토양 등 주변 자연환경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평형을 이룰 때까지 끊임없이 변화를 계속한다.
Pioneer stage에서 Climax stage까지.
이병굉 박사
●1962-1966서울대학교 농생대 산림과학부 졸업●1973-1976 프랑스 몽뻴리에 대학교 이학박사 (산림 생태학)●1977-2013 미국이민, IT 분야에서 30년 근무후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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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굉 박사 <웃브리지,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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