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 새재
나는 숱한 험한 산을 넘어 여기까지 왔다. 내가 처음으로 높은 산을 넘은 것은 해발 1천13미터의 문경 새재(조령)였다. 이조시대에는 영남에 있는 학자들이 과거를 보기 위하여 문경에서 조령을 넘어 충청도 연풍으로 가서 한양까지 간 그 길을 넘으며 과거 아닌 과거를 보러 다녔다.
그리고 해발 8백32미터의 대관령 고개도 넘었다. 그곳에 고속도로가 나기 전에는 아주 험난했다. 내가 처음 대관령 고개를 넘을 때가 늦봄이었는데 그늘에는 눈이 쌓여 있었다.
콜로라도 알파인 산장의 관광 안내소(Visitor Center) 위치가 3천595미터라고 하며 록키마운틴(Rocky Mountains) 국립공원 최고봉은 4천3백미터가 넘는다고 하니 현기증이 날 정도다. 내가 이런 높은 곳을 인생 후반부인 늦은 나이에 도전하고 싶은 생각이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록키마운틴 입구의 관광 안내소에나 가서 여러 가지 자료를 통하여 간접적으로 관광을 하고 내려올 심산이었다.
-한여름의 눈
그러나 가도 가도 관광 안내소가 나오지 않아 돌아올 수도 없어 계속 달리다가 관광 안내소에 도착하고 보니 돌아오는 길이 더 멀어 그냥 끝까지 갈 수밖에 없었다. 아찔아찔한 순간이 많았다. 현기증이 나서 내려다보지도 못하고 앞만 보고 달리다가 차를 세울만한 곳이 나오면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고 쉬면서 마음을 추스렸다. 한 여름에 눈을 만져보고 왔으니 감개무량하였다.
록키산맥을 찾은 이유 중에 하나는 친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죽기 전에 꼭 한 번 가보라고 하는 바람에 그냥 쉽게 생각하고 경치나 감상하자고 생각했는데 쉬운 드라이브 코스는 아니었다. 그래도 지금 눈 아래 펼쳐지는 눈 덮인 록키산맥을 상상하면 기분이 상쾌해지고 에너지가 솟아난다.
친구처럼 스키는 엄두도 내지 못하기에 한 여름에 콜로라도의 유명한 스키장을 찾아 겨울 풍경을 상상이나 해 보고 왔다. 스키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아무리 설명을 들어도 짐작이 가지 않는다. 이곳 워싱턴 근교에도 스키장이 많은데 콜로라도까지 매년 간다고 하니 그 만큼 눈의 질이 좋아서 스키하기에 좋겠거니 하고 짐작했다.
-명품 바이올린 나무
백두산이 2천744미터인데 록키 마운틴은 3천5백미터가 넘는 곳에 관광 안내소가 있고 최고봉은 4천3백미터 넘는 곳이 53곳이나 있다고 한다. 나는 록키 마운틴을 넘으며 나 아직 늙지 않았어!, 아직은 쓸 만하다며 마음의 힘이 생겼다. 3년 전 프랑스 니스에 가서 밴을 빌려 나폴레옹이 진군하던 알프스 산맥을 넘을 때 쌓은 실력으로 그 보다 더 험한 록키산맥을 넘었다.
해발 3천미터가 수목 한계선 지대라고 한다. 이곳에 매서운 바람 때문에 나무가 곧게 자라지 못하고 사람이 허리를 굽혀서 바람을 피하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생존을 위하여 머리를 숙이고 허리를 굽혀야 삶을 배우는 것이다. 이런 곳에서 자란 나무로 명품 바이올린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이번 여행에서 미국이 크다는 것을 실감할 수가 있었다. 아무리 달려도 끝이 없는 고속 도로, 주위의 험한 산맥, 한 여름에도 눈이 녹지 않는 산봉우리들, 한국의 땅덩어리 보다 더 큰 하나의 주를 달리고 달려도 끝이 없다. 미국은 남한면적의 98배나 된다. 초강대국임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전봇대와 폭설
겨울에 눈이 오면 순식간에 눈이 너무 많이 쌓여 도로가 어딘지 알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도로 곳곳에 표시를 하기 위하여 전봇대 같은 말뚝을 박아 도로 표시가 되어 있다고 한다. 제설작업의 기준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눈을 잘 치우기 때문에 스키 타는 사람들이나 주민들이 큰 불편 없이 다닐 수 있다고 한다.
한국내의 높은 산을 넘을 땐 생존을 위하여 넘어 다녀야 했지만 알프스 산맥이나 록키산맥은 넘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중간에 포기할 수가 없어서 끝까지 달려 본 것이었다. 우리의 인생도 전체를 미리 알았더라면 시작도 하지 않았을 것 같은 일도 많았지만 중도에 포기할 수 없어서 끝까지 가면 참 잘했다고 보람을 느낄 수 있었던 일이 많았다.
앞뒤 너무 재다 보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능력이 있는데도 시작을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위험을 감수해야 성공도 한다. 실패하더라도 경험에서 배울 수 있다. 미국에서는 실패에 대하여 관대하다. 개척정신이 강한 나라이기 때문이리라. 개척정신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미국은 없었을 것이다.
<
글, 사진/ 노세웅(로턴 VA)>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