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지인으로부터 들은 얘기다. 1960년대에 미국으로 이민 와 잠시 남부지역에서 살았던 적이 있었다고 했다. 그 당시 집에 세탁기가 없어 코인론드로맷에 가서 세탁을 했다. 그런데 입구에 “Whites Only”나 “Colored Only”라고 써있는 사인들이 있었다. 처음에는 흰색 옷과 색깔 있는 옷을 세탁하는 론드로맷이 따로 있나보다 생각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백인과 흑인이 세탁하는 곳을 구분하는 표시였다. 아시아인은 “Colored”로 간주되었는데 모르고 백인전용 론드로맷에 들어갔었다고 한다.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미국에서는 오랫동안 인종차별로 인해 대중교통, 공공화장실, 식당, 공립학교 등 백인과 흑인이 같이 있을 수 없는 곳이 많이 있었다. 백인과 흑인 사이의 결혼도 1967년의 연방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는 주정부 차원에서 법으로 금지할 수가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버지니아 주에 실제로 그런 결혼금지법이 있었다. 유색인종에 속하는 한인도 백인과 결혼할 수 없었던 셈이다.
요즈음 미국 전체에서 가장 큰 뉴스가 되고 있는 것은 버지니아주 샬롯츠빌에서 벌어진 백인우월주의자들의 폭력시위 사건이다. 백인우월주의자들이 미국의 다른 곳에서도 유사한 시위를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분명히 반대 시위도 있을 것이다. 폭력사태가 이어질지 모른다.
지금 이 사건 직후 트럼프 대통령이 취한 행동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를 경악시키고 있다. 뒤늦게 백인우월주의자들과 KKK 단체 그리고 네오나치 같은 증오그룹들에 대해 주변에 떠밀려 마지못해 한 듯 보이는 비난성명을 발표하더니, 겨우 하루만에 그 마저 뒤집는 기자회견을 하고 말았다.
대통령 지지 세력에 증오그룹들이 포함되어 있음이 공공연하게 거론되고 있다. 몇 주 전 보이스카우트 행사에서 대통령이 했던 연설은 과거에 히틀러가 독일의 나치 청년그룹에게 했었던 연설을 연상시켰었다. 가슴이 섬뜩해진다. 대통령이 나라 전체를 끌고 나가는 지도력은 포기하고 자신의 추종 세력의 가려운 곳만 긁어 주는 행동을 취하는 것 같다.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 (Black Lives Matter)”에 이어 “백인의 생명도 중요하다”는 구호도 등장했다. 그런데 이에 나에게는 “Where are brown lives?” 라는 질문이 찾아온다. 지금 미국 내에서 일어 나고 있는 인종문제는 단순히 흑인, 백인 사이에 국한 되는게 아니라 미국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문제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갈등 사이에서 숨죽이고 조용히 관망하거나 우리와 전혀 상관없는 일인 양 방관해서는 안 된다.
25년 전 4.29 LA 폭동 때 흑백 갈등의 불똥이 우리 한인 사회에 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사실 한편으로는 인종 갈등 문제 해결에 우리 한인들이 담당해야 할 부분을 등한시 했던 점이 있었다는 자성도 있었다. 내가 선출직 공직자로서 일해 온 게 이제 거의 20년이다. 그동안 느낀 것 중 하나는 미국 내 소수계의 민권과 인권 향상을 위한 많은 노력에 우리 아시아인들은 수혜자일 뿐 공헌자로는 보이지 않는다는 시각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이민 역사가 짧은 아시아인으로서 그러한 노력에의 참여 기회가 원천적으로 주어지지 않았다고 항변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한인동포 사회를 돌아 보면 이러한 노력에의 참여 모습은 지금도 전반적으로 찾아보기 힘들다. 언론 보도를 통해 접해지는 뉴스에 관심과 우려를 표명하지만 해결책 모색 노력에의 동참은 극소수에 국한 된 것 같다.
과거에 이 지역, 특히 워싱턴DC에서도 흑인 사회와 한인 상인들 사이에 갈등이 적잖이 있었다. 그러한 갈등 가운데 우리 한인 사회에 던져졌던 도전은, 한인들은 아메리칸 드림 성취 기회의 터전을 닦아 놓은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에 무임승차 하고 있다는 비판이었다. 당시 그런 얘기를 들었을 때는 공정하지 않은 비판이라고 느꼈다. 그러나 요즈음의 인종갈등을 보면서 갈등해소의 노력에 우리가 더 이상 무임승차해서는 안 된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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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일룡 변호사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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