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는 프랑스의 대문호 앙드레 모루아가 집필한 ‘미국사’(김영사 간)를 시리즈로 소개한다. 앙드레 모루아는 신대륙 발견부터 초강대국 반열에 오르기까지, 500년 미국 역사의 장대한 드라마를 유려한 문체와 심오한 통찰력으로 풀어냈다. 신용석 조선일보 전 논설위원이 번역을 맡아 원작의 미문과 의미를 충실히 살려냈다는 평이다. <편집자 주>
-세계열강으로 부상
아메리카는 독립 100주년을 맞이했다. 1876년은 독립선언, 1881년은 요크타운의 승리, 1887년은 헌법 100주년 기념일이었다. 이러한 기념행사는 지나간 100년의 과정을 검토하는 이정표가 되었다.
1776년에는 소수의 꿈같은 희망에 지나지 않던 아메리카가 1876년에는 세계열강 중 하나로 광대하고 부강한 국가로 성장했다. 필라델피아에서 갖은 고초를 겪어가며 제정한 헌법은 1세기 동안 시련을 견딘 후 놀랄 만한 적응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러나 워싱턴과 제퍼슨의 아메리카는 이미 존재하지 않았고 해밀턴의 아메리카가 탄생했다. 해밀턴의 유복자인 이 천재 소년은 해밀턴이 예상한 것과 전혀 다른 아이였다.
인구는 대부분 도시로 몰렸고 부와 사치가 판을 치면서 계급 감정이 날카롭게 대립했다. 뉴욕에서는 부호 400명과 대중 400만 명이 서로 대립하며 살아갔다.
-도시의 팽창
도시는 급격히 팽창하기 시작했다. 뉴욕 시는 인구가 1860년 1,174,779명에서 1900년 3,437,202명으로 증가했고 시카고는 109,260명에서 1,168,575명으로 늘어났다.
미니애폴리스, 세인트폴, 디트로이트, 클리블랜드, 밀워키 등에서도 인구가 2~3배 늘었다.
신세계의 건축가는 우아함보다는 대담성을 보여주고 있다. 뉴욕 5번가와 허드슨 강변도로에는 르네상스식 저택, 이탈리아식 별장, 플랑드르 지방의 시청 등을 모방해 갈색 사암으로 지은 궁전 같은 건물이 줄지어 들어섰다. 이들 건물은 너절한 목각 장식이 더덕더덕 붙어 있는 가구, 멋없이 두껍기만 한 커튼, 두 번 다시 볼 생각이 나지 않을 골동품 그리고 영국과 프랑스의 유치한 그림으로 꽉 차 있었다. 그 시대에는 뜨개질이 부인들의 소일거리로 널리 유행했다. 가구와 물건뿐 아니라 사람의 마음까지도 편물로 뒤덮였다. 1870년 최초의 아파트가 뉴욕 시 동쪽 18로에 들어서서 대성공하자 이런 건물이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다.
-교향악단의 창단 붐
재산을 축적한 사람들은 더욱더 외관을 장식하기 시작했고 이제 100만 달러로는 부자라고 할 수 없었다. 대금융자본가는 5,000만에서 1억 달러의 막대한 부를 소유했다. 그들의 가정에서는 영국에서 초빙한 집사가 제복을 입은 하인들을 부리며 주인 가족에게 영국식 예절을 가르치느라 애썼다.
이 무렵 아메리카는 유럽의 저명한 음악가들의 천국이었다. 뉴욕(1878), 보스턴(1881), 시카고 (1891)에서는 교향악단을 창단했고 특히 뉴욕에서는 음악 애호가들이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을 개설했다. 명사들은 그곳에 가족석을 갖는 것을 일종의 명예로 여겼다. 그것은 4두 마차, 2두 마차 등 가문의 자가용 마차를 갖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가톨릭교도의 증가
미합중국은 19세기 말까지 프로테스탄트 나라를 계승했고 전 국민이 그렇게 되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이민자가 급증하면서 가톨릭교도가 현저하게 증가했다. 1900년에는 900만~1,000만의 가톨릭교도(아일랜드인, 프랑스인, 이탈리아인, 독일인, 폴란드인)가 미국 내에 거주했다.
프로테스탄트교회는 여전히 신자를 장악했으며 주일에는 교회가 신자로 가득 찼다. 그러나 뜻 깊은 많은 사람이 과학과 종교의 대립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연구하는 데 몰두했다. 진화론과 성자 비판은 청교도의 자손들에게 커다란 고뇌를 안겨주었다. 일부 자유주의적인 프로테스탄트 신자는 성서를 위대한 시적, 도덕적 가치가 있는 아름다운 양서로 간주했다.
1893년 시카고에서 아메리카 발견 400주년을 기념해 도시, 공원, 정원을 위한 진보적인 설계를 주제로 박람회가 열렸다. 중서부의 농민들은 이곳에서 1894년부터 1900년까지의 풍작과 높은 농산물 가격으로 벌어들인 돈으로 안락한 생활을 누리기 위해 참고자료를 수집했다. 국민 모두가 늘어난 국가의 부를 분배받은 것이다.
-역사가의 논평
역사가 아서 슐레진저 2세 교수는 《미국사의 새로운 관점 New View point in American History》에서 다음과 같이 논평하고 있다.
“현대생활이 점점 복잡해짐에 따라 개인의 자유와 기회는 정부의 보호 및 감독으로만 공정하게 지킬 수 있다는 의견이 팽창해왔다. 그러나 미합중국 사회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가 민중의 지지를 받을 만큼 곤궁하지는 않았다. 대부분의 미국인은 지성적인 사회 통제가 한편으로는 무자비한 개인주의를, 또 한편으로는 정부의 간섭 정치를 저지한다고 생각한다.”
<
신용석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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