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초여름에 집 근처에서 에스테이트 세일 싸인을 보고 찾아간 적이 있었다. 에스테이트 세일이란 자녀들이 돌아가신 부모의 유품을 전문회사에 위탁하여 처분하거나 집의 규모를 줄여 이사할 때 집 전체를 오픈하고 하는 세일이다. 나는 가끔 그 세일에 들러보는 일을 즐긴다. 세일하는 가재도구를 통해 낯모르는 사람들이 살아낸 삶의 흔적을 느끼고 그 궤적을 짐작해 보는 일이 흥미롭기 때문이다.
그 날의 싸인은 자주 지나다니는 길목의 붉은 벽돌집 앞에서 멈추었다. 세일의 마지막날인데도 집안에는 물건들로 가득 차 있었다. 주방에 켜켜이 쌓여 있는 그릇세트들로 시작하여 서재의 꼭대기까치 차 있는 책들과 레코드판, 차고의 연장과 크리스마스 장식품까지 온갖 물건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나의 시선은 방방마다 널브러져 있는 침구와 옷가지와 가구들 사이를 지나 창턱에서 시들고 있는 난(orchid) 한 포기에 멈추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물을 주지 않았는지 두툼한 난의 잎이 뒤틀려 있었다. 물기가 전혀 없는 화분은 아주 가뿐했다. 가격표마저 붙어 있지 않았다. 카운터는 생사가 불분명한 꽃값은 그만두고 화분 값으로 1불만 내라 했다. 물을 주고 볕 좋은 창가에 자리를 잡아준 난은 내가 난의 존재를 잊어버릴만 했을 때쯤에 꽃대를 밀어 올렸다.
하얀 나비 같은 꽃 하나를 피워 놓은 그 난을 볼 때마다 에스테이트 세일을 하던 붉은 벽돌집이 생각난다. 새주인을 찾기 위해 부동산 매매 싸인을 붙이고 적막하게 앉아 있는 그 집 앞을 지나노라면 그 많던 물건들의 행방이 궁금해지곤 한다.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물건들 중에 정작으로 쓰이는 건 겨우 20퍼센트 정도라고 한다. 그러니까 나머지 80퍼센트의 물건은 소유욕을 충족시켜주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을 뿐이라는 이야기이다. 나 역시도 너무 많은 것을 소유한 채 살아가고 있다. 방방마다의 옷장이나 서재, 서랍, 주방의 캐비닛에도 쓸데없는 물건들이 가득하다. 아까워서 지니고 있고 추억 때문에 버리지 못하는 물건들이다. 옷장에는 계절이 지나도록 한번도 입지 않은 옷들이 있고 서재에는 다시 읽을 기약도 없이 꽂아둔 책들도 있다. 냉장고 속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넘치는 건 물건만이 아니다. 자고새면 원치 않아도 새로운 정보가 날아들고 촌각을 다투며 정제되지 않은 말들이 문자가 되어 태평양을 넘나들기도 한다. 한쪽 티비에서는 과식을 금하고 운동하며 건강한 삶을 살라 하고 한쪽 티비에서는 이것이 맛있다 저것은 더 맛있다 설파하며 과식을 부추기고 있다. 이런 혼잡한 세상에서의 나의 삶과 삼칸 집을 손수 지어 간결하게 살았던 조부모님의 삶 중 어느 것이 더 행복한 것일까.
결혼하기 전에 할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시골집을 정리한 적이 있었다. 몇 벌 되지 않는 옷가지들은 불에 태워 재가 되었고 헛간과 곳간에 있던 농기구들과 자질구레한 물건들은 필요한 이웃들이 가져갔다. 쌀뒤주와 반닫이, 장독대의 질항아리 몇 점은 어머니가 가져왔고 나머지 또한 동네 분들이 가져갔다. 반세기가 넘게 같은 집에서 사신 흔적이 정리되는 데는 반나절밖에 걸리지 않았다.
두 해 전, 한국에서 어머님이 소천하시고 남편과 함께 아파트의 가재도구를 정리한 적이 있었다. 일주일이 넘게 정리하고 분류하여 지인이나 교회, 혹은 재활용품 처리장으로 보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마침내 아파트가 비워지고 미국으로 돌아오는 날까지 쓸 이부자리 한 채와 쓰다 버리고 갈 못난 그릇 몇 개로 사는 생활은 의외로 평화로웠다. 시간도 느리게 지나갔다. 벽에서 떼어낸 그림 대신 창 너머로 사선을 그으며 내려오는 초여름의 푸른 빗줄기를 오래 바라볼 수 있었다. 티비가 빠져나간 공간으로 밤기차의 기적소리가 들려왔다.
옛날 서민들의 방안 살림은 반닫이 하나에 시렁 하나면 족했다. 대신에 문을 열어 사철 다른 바깥의 풍경을 들여 놓고 머물게 했다. 정갈하게 닦아 놓은 대청마루에는 하얀 햇살 한 폭과 푸른 바람 한 줄기가 누웠다 가면 그만이었다. 한두 벌 무명옷은 헤지고 난 다음에도 걸레로 썼으니 옷장이 넘쳐날 일도 없었다. 들에서 거두어들이고 텃밭에서 따내어 차린 밥상은 소박했지만 냉장고에 채우고 얼리며 사는 오늘날의 식탁보다 건강했다. 쌀뜨물도 구정물도 돼지구새로 가면 그만이었고 티끌도 검불도 아궁이로 갔다. 그 시절은 쓰레기라는 단어조차 모르고 살았을 텐데 나는 오늘도 하루치의 무거운 쓰레기를 들고 밖으로 나간다.
커다란 쓰레기통을 길가에 내놓고 돌아서며 하늘을 올려다본다. 여름내 쏟아질 듯했던 별들도 이삿짐을 싸기 시작했는지 하늘에 별들이 드물어지고 있다. 가을은 언제나 텅 빈 하늘을 만들며 깊어간다. 가을이 깊어지면 숲의 나무들은 스스로 잎을 떨어뜨리며 제 몸을 비워내는 일을 시작할 것이다. 온몸을 비워낸 나무는 바람에게 길을 내주고 달빛이나 눈송이에게 의자가 되어주며 살아갈 것이다.
소유의 덧없음을 느끼며 내 인생의 가을도 깊어가건만 아직도 버리지 못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계절이 더 깊어지기 전에 쓸데없는 물건들을 버리고, 내 안의 어지러운 욕망을 정리하고, 넘치는 정보들을 차단하고, 단순한 사람 관계를 만들어봐야겠다. 할 수만 있다면 돌절구 하나가 전부였던 내 어릴 적 텅 빈 마당처럼 내 안이 그렇게 비워졌으면 좋겠다. 그 마당이 하오의 처마 그림자 하나를 품고 평온했던 것처럼 나도 남은 계절은 그렇게 단순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고 싶다.
pinkmd41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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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미 수필가 /포토맥,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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