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한인 부모들의 교육목표가 ‘내 아이 기 안죽게 키우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한국인은 자식이 기 죽는 일을 혐오한다. 수직적 서열문화 속에서 보다 나이가 어려서, 직급이 낮아서, 학벌이 부족해서, 재산이 없어서, 집안이 별볼일 없어서, 외모가 못나서, 명품이 없어서, 존경받을 수 없는 직업이라서, 수도권 강남 출신이 아니어서, 심지어는 미국에 와서도 영어를 잘 못해서, 백인이 아닌 소수민족이라서, 수입이 적어서, 부자 동네 싱글 하우스에 살지 못해서, 값비싼 고급 자동차를 몰지 않아서, 자녀가 똑똑하지 못해서, 키가 크지 않아서, 등등 여러가지 다양한 조건때문에 보다 잘난(?) 사람에게 까여(?) 기가 죽는 피해를 입어왔다고, 그것이 평생 한이라고 호소들 한다. 그래서 내 아이만큼은 남부럽지 않은 실력을 갖추고, 남보란 듯이 성공해서 떵떵거리며 기세 등등하게 살았으면 하고 바란다. 이것이 한인학부모들이 가진 교육열의 실체다.
내 아이가 혹시나 기죽을 세라, 백인 아이들이 함부로 무시할 수 없도록 태권도를 시키고, 왕따 예방 차원에서 든든한 친구 그룹을 만들어 주려고 아이가 원하는 친구 부모를 초대해 정성껏 모신다. 인생길에 만나는 그 누구도 없어보인다고 못나보인다고 무시하지 못하도록 빚을 지는 한이 있어도 명품 옷을 입히고, 성형을 시키고, 키크는 약을 먹이고, 고급차를 사준다. 심지어, 평생 기를 세워 줄 학벌을 만들어 준다고, 이름 있는 아이비리그 명문대학을 목표로 악기, 스포츠를 비롯한 각종 특별활동과, 성적관리를 위한 고액과외등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이것은 한 마디로 말하면, 내 자녀가 기죽임, 즉 불리(bully)를 당하게 하지 않으려고, 남보다 높은 위치, 갑질을 할 수 있는 자리, 즉 불리를 가할 수 있는 위치로 올려 놓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 결과,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한국인 아이들이 뭉쳐서 다른 한인 아이들을, 혹은 다른 소수민족 아이들을 왕따시키고 괴롭히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이것은 무시할 수 없는 수의 아이들과 부모를 고통에 빠뜨리는 심각한 사회문제이다.
왜 이런 문제가 일어나는 것일까? 아이들의 자존감이 병들었기 때문이다. 이들 뒤에는 자존감이 병든 부모들이 있다. 많은 한인 부모들은 바로 자신의 말과 태도와 눈빛이 아이의 자존감을 낮추고, 기를 죽이는 주범임을 자각하지 못한다. 지나친 기대를 하는 것, 남의 눈에 드러나는 성취를 할 때만 기뻐하고 자랑스러워 하는 것, 부모가 바라는 대로 따라 오기만을 강요하고 아이의 의사나 감정은 존중하지 않는 것, 남이 인정해줄 만한 좋은 결과와 실력에만 큰 가치를 두는 것. 이러한 양육태도는 아이의 존재가치가 남의 시선에 달려있다고 말해주는 것과 같다. 부모가 반복적으로 전하는 이 메시지는 자녀의 중심을 파괴하고, 남의 평가와 의견에 심하게 휩쓸리는 병약한 자존감을 가지게 한다. 병든 자존감의 결과는 참혹하다. 평생 부모의 기대에 못미치는 자신을 미워하고 부끄러워하며, 남들도 자신을 무시하고 하찮게 여길까 봐 두려워, 상처입고 기죽은 내면을 ‘자존심’이라는 허술한 갑옷 속에 숨기고 사는 겁장이가 되거나, 혹은 특별한 실력 (혹은 외모, 학벌, etc.)을 갖춘 자신을 향한 찬사에 목말라하며 타인을 하찮게 여기고 제 욕심을 채우는데만 이용하는 교만한 ‘자기애성 인격장애자(나르시스트)’가 된다. 내 자식이 반드시 갑 자리에 올라 앉아 내 자존심을 세워주고, 내 한을 풀어주고, 내 꿈을 이뤄주어야 한다는 욕망이 자녀를 병들게 하고, 가정을 무너뜨리고, 각종 사회문제를 일으키는 주범을 낳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녀를 어떤 사람으로 어떻게 키워야 하는 것일까?
우리의 교육목표는 ‘을’ 위에 군림하는 ‘갑’을 키우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진정한 목표는 자녀가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여기고, 조건없이 존중할 줄 알고, 건강한 관계를 맺어갈 줄 아는 사람으로 키우는 것이다. 그리고, 나의 외적 조건에 상관없이, 내 모습 그대로 부족함 없는 귀한 존재임을 아는 높은 자존감을 길러주고, 이 자존감이 어떤 주변의 평가에도 흔들리지 않도록 깊고 강하게 뿌리내릴 수 있게 돕는 것이다. 이 일을 잘 해낸다면, 당신은 어느 정치인, 자선사업가, 혹은 종교지도자보다도 건강한 사회를 이루는데 큰 공헌을 한 셈이다.
건강한 자존감을 길러주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할 일은 자존감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다. 한국문화 속의 서열문화, 불리 문화를 바로잡는 일이 급선무다. 이 문화는 피지배집단을 다루기 위해 한국의 지배집단이 전통적으로 구사해온 전략에 불과하다. 지금 우리가 여기서 깨어나지 않으면, 이 악한 문화는 자녀세대로 흘러 내려가 그들을 지배하고 괴롭힐 것이다.
우리 자녀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이제는 이 병든 문화에서 벗어나자. 외적인 것만 중요시 여기는 겉치레 문화, 나보다 약해보이고 부족해보이면 무시하고 핍박하는 불리 문화, 경쟁의식과 자격지심으로 무의미한 일에 시간과 에너지만 낭비하게 하는 서열 문화에서 깨어나자. 무엇을 하든, 얼마를 가졌던, 어떤 모습이든, 어떤 환경에 처해 있든 당신은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받고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 당신의 자녀도 그렇다. 기를 죽이는 사람도 기가 죽는 사람도 낮은 자존감의 병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타인을 불리하고 괴롭히는 것도 악한 일이지만, 손상된 자존감을 내버려 둔 채 피해의식과 패배의식 속에 살며 마음에 원한과 상처만 쌓아가는 것도 선하지 않다. 자존심을 세우는 것 또한 낮은 자존감을 숨기고 남이 나를 높여주기를 바라며 ‘어깨에 뽕을 넣는 일’에 불과한 허무한 발버둥이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말하건데, 우리가 원하는 자녀의 모습은 타인과 자신을 동등하게 사랑하고 존중 할 줄 아는 균형잡힌 건강한 사람, 어떤 위기의 상황에서도 남의 말에 휩쓸리지 않고 내면의 목소리에 집중해서 위기를 극복하고 발전을 이루어가는 내면이 강한 사람이다. 부모인 우리 자신부터 병든 문화 속에서 입은 상처를 씻고, 자존감을 회복하여 자녀에게 건강한 모범이 되어야 한다.
문의 giantes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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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주 <메릴랜드주 ESOL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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