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하마드 알리의 부고는 외국의 현역 국가원수 수준을 넘어 그 이상으로 다루어졌다. 그에게 권투 헤비급 세계 챔피언을 세 번 했었다는 경력만 있었더라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만 하더라도 제 1면 톱기사로 그의 일생과 일화들이 시작되어 14, 15,1 6면으로 이어졌고 스포츠 페이지의 제 1면은 물론 7,8,9면이 모두 그의 이야기로 채워졌다.
1942년 그가 간판페인트공 이었던 아버지와 부자 집 식모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을 때의 이름은 캐시어스 클레이였다. 그는 열두살 때 그의 자전거를 훔쳐간 도둑에게 보복하려고 권투를 배우기 시작했단다. 클레이의 노력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고등학교 졸업 전에 여러 차례 아마추어 챔피언이 되었을 뿐아니라 1960년 로마 올림픽에서 경량급 권투에서 금메달을 타게 되었다. 클레이는 프로로 전향한 다음 고향 켄터키주의 루이빌을 떠나 마이애미에서 훈련을 받게 되었던 바 인종분리가 심하던 시절이라 백인들의 백화점에서 옷을 사지도 못하는 경험에 더해 거리를 뛰는 운동을 하던 중 경찰의 검문을 여러 차례 당하기도 했었다는 일화가 있다. 클레이에게는 처음부터 사람을 끄는 카리스마가 있었던지 19세에 당시 미국의 최고사진잡지였던 라이프의 여러 면이 그의 사진들로 채워졌다는 것이다. 사진작가에게 자기가 인내와 힘을 기르기 위해 물속에서 훈련을 받았노라고 설득시킨 결과였다는데 사실은 잡지 사진 포즈를 취할 때까지는 수영장엔 가보지도 못했단다.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잡지의 표지에 그가 40번 이상 등장한 것이 최고기록이며 ‘최고(The greatest of all time)’라는 상찬을 받고 있다. 모든 스포츠를 총망라해서 말이다.
1964년 클레이가 헤비급 챔피언이었던 소니 리스톤을 넘어뜨리고 권투 세계 최고정상에 오른 것이 불과 22세 때였다. 그 다음날 그는 미국을 깜짝 놀라게 한다.
자신이 이슬람의 미국 종파인 ‘네이션 오브 이슬람’교도라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인기에 영합하는 것을 우선순위에 두는 스포츠계에서는 전대미문의 돌출행동으로 평가되기도 하지만 용기있는 소신의 결과라는 시각도 있다. 이름 자체를 캐시어스 클레이에서 무하마드 알리로 바꾼 것도 그 직후의 일이다.
더 놀라왔던 일은 1967년에 알리가 징병을 거부했던 사실이다. “루이빌의 흑인들이 개처럼 취급을 받고 인권이 부인된 상황에서 그들이 나에게 군복을 입히고 1만 마일을 가서 월남사람들에게 폭탄과 총알을 퍼부으라고 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라고 알 리가 항변한다. “나는 베트콩에게 아무런 원망도 없다... 그들은 나를 (흑인비하 표현인) ‘니거’라고 부른 적이 없다.”
그가 종교적인 이유로 병역거부를 선언한 것이 미국정부에는 물론 권투연맹에도 통할 리 없는 상황에서 군대를 못가겠다는 그의 결정은 용기 있는 행동이었고 희생이 뒤따랐다.
마틴 루터 킹 박사 같은 민권운동가들은 그의 양심적 병역거부를 큰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칭찬했지만 권투연맹은 즉각 그의 선수권을 박탈하고 권투시합에 나올 권리도 3년간 정지시킨다. 그는 연방지방법원에서 5년형을 선고 받았지만 상고 결과 1971년에 연방대법원이 9대0으로 그 선고를 무효화시킨다. 알리는 당시 권투계로 돌아와 세계 헤비급 챔피언이 되었다.
권투보다는 민권운동과 세계평화운동으로 그는 많은 사람들의 칭찬과 사랑을 받다가 권투 때문에 생긴 파킨슨병으로 30년 이상을 고생하던중 작고한 것이다.
1970년대 중반에 미국에는 징병제도가 없어져 양심적인 병역거부란 말조차 생소하게 들린다. 그러나 아직도 국민개병제도가 있는 나라들에서는 중요한 이슈다. 유엔의 인권헌장에 종교의 자유가 포함되어있고 각 나라의 헌법에 종교의 자유 보장이 모두 들어있다. 종교의 자유 중에는 사람을 죽이기를 거절할 수 있는 권리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확실한 종교의 신념 때문에 군대에 갈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병역대신 대체(사회공익) 봉사제도를 마련하고 있는 나라들이 많다. 한국에서는 여호와의 증인들이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과 이웃사랑에 대한 계명 준수를 이유로 병역을 거부해온 결과 1953년부터 1만8,000명이 도합 3만2,000년의 옥고를 치루었다. 이제는 한국도 대만처럼 대체 복무제도를 도입하여 양심적인 병역 거부자들이 민간부문에서 사회에 봉사하도록 하는 길을 열어 놓을 때가 되었다. (지난주 칼럼에서 소극의 한자를 웃을 소(笑)로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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