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이 없어 고개 숙이고 일자리 찾아 다닐 때였습니다. 마침 발끝에 커다란 철문이 보여 올려다보니 교도소였어요. 여기라도 알아보자고 그곳을 찾아 들어가 할 일이 없느냐고 물었지요.” 허스키 보이스를 가진 중년 남자의 목소리다. 교도소라는 말에 끌려 라디오 채널을 바꾸지 않고 고정했다. 그는 그렇게 그곳 간수가 되었다고 한다.
멀리 사는 친구 찾아 가는 길. 벌써 두 달 전이다. 듣자마자 써 뒀어야 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 지금은 이야기의 살도 빠지고 맛도 떨어진것 같아 서운하다. 그래도 끝없이 떠드는 선거전 이야기가 아니어서인지 그때 그 스토리가 계속 머릿속을 맴돈다. NPR(National Public Radio)에 들어가 그날 나간 방송을 뒤져 봤지만 찾을수 없다. 재방송이었던 듯 싶은데…. 노트를 써 둘 걸…. 운전 중이라 그리 못한 것이 아쉽다. 그가 얻은 직장은 감옥의 간수였는데 그 중에도 사형 집행하는 간수였다. 그런 일이라 자리가 비어 있었던가? 물론 그 사람의 성도 이름도 기억하지 못한다. ‘사형 집행수’라는 것 외에는.
“처음으로 집행 단추를 누른 날은 어찌나 기분이 묘한지 샤워장에 들어가 뜨거운 물을 틀어 놓고 온몸을 씻고 또 씻었어요. 왜 그런지 모르겠습디다. 끊임없이 씻었지요. 그리고 식탁에 앉았는데 음식에 손을 댈 수가 없더군요. 넘길 수가 없고 삼키면 뭐든 도로 올라오는 겁니다. 결국, 독한 술을 벌컥벌컥 곯아떨어질 때까지 마셨지요. 돈벌이가 이렇게 힘들 줄 몰랐습니다.” 쉰 목소리로 가식 없이 솔직담백하게 털어놓았다.
군대서 사형집행 할 때는 다섯 명의 집행인들이 총으로 쏘는데 그 다섯 중 하나는 총알이 장전 되지 않은 빈 총이라는 소릴 들은 기억이 난다. 집행인들에게 “내 총은 장전 되지 않았을 것이다”는 생각을 주기 위해서겠지. 그러면 뜨거운 샤워를 계속 안 해도 될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사형선고 받은 사형수는 많아도 사형집행이 되는 사형수는 그렇게 많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다행이라면 다행 아니겠어요? 직업상 저는 죄수와 사적인 관계는 갖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눈도 맞추지 않으려 애씁니다. 그래도 그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아요. 일 년 열두 달 같이 사니까요. 집행이 있던 날엔 음식엔 손도 안 대고 샤워만 하니까 아내도 입 다물고 제 눈치만 봅니다.”
“사형수들이라는 편입견 빼어놓고 사람을 보면 사형수도 너나 나같이 다 그렇고 그런 비슷비슷한 사람들입니다. 제 보기엔 큰 차이 없어요. 그들을 지키고 있자면 싫어도 이름, 생년월일 등등의 기본사항은 알게 됩니다. 아무리 고개 돌리고 등 돌려도 매일 만나 같이 지나는 사람들이니까, 또 같은 사람이다 보니까 정 같은 감정이 오가게 마련이죠. 아내는 절대 정 주지 말라고 말립니다만 그게 맘대로 되나요? 그중 루이라는 젊은이가 있었는데 어쩌자고 제 막냇동생과 나이와 이름이 같은겁니까? 게다가 붙임성이 좋아 자꾸 동생 같은 생각이 드는 겁니다. 아내는 펄쩍 뛰었지만, 그 많은 사형수 중 루이가 처형될 가능성은 적다고 우겼지요. 루이는 자신은 결백하다고 하더군요. 다 비슷한 소리들 하지만 루이의 말은 더 믿음이 갔습니다. 저도 루이만은 처형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랐지요.”
“집행일엔 아침 일찍 연락이 옵니다. 루이를 데려오라는 지시였습니다. 철렁하더군요. 내가 말없이 발끝만 내려다보며 걸으니까 루이가 무슨 낌새를 느꼈는지 떨리는 소리로 물었습니다. ‘설마 오늘이 그 날은 아니겠지요?’ 하고. 절 바라보던 그 눈을 잊을 수가 없어요.” 사형 집행수의 목소리도 떨리는듯했다.
“이 일 그만두고 싶은 생각 수도 없이 했지만, 직업은 있어야 사는 것 아닙니까? 아내와 자식들 있는데 어쩌겠습니까? 스트레스 좀 덜 받는 일을 하면 좋기는 하겠지만, 뜻대로 되는 세상인가요? 제가 56세 되던 날 심근경색으로 병원에 실려 갔습니다. 깨어 날 때 어쩌자고 먼저 떠오르는 얼굴이 아내도 아니고 자식도 아닌 루이의 얼굴입니까? 루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겁니까? ‘오늘이 그 날은 아니겠지요?’하고 묻던 바로 그 소리 말입니다.” 그 소리를 끝으로 허스키 보이스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첫 심근경색 후 다행히 살아 집에 돌아왔지만, 그로부터 4년 후 심장마비로 그 역시 갔다,”고 아나운서가 후기를 남겨 주었다.
가는 날, 집행수도 물었을까? “오늘이 그날은 아니겠지요?” 하고.
너는?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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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혜 맥클린,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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