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화요일부터 1주일 사이에 다섯 밤을 거의 새웠다. 대학이나 로스쿨 시절의 시험 기간에도 그래보진 않았다. 이 모두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고와 이세돌 9단 사이의 도전 5번기 대국 중계를 보기 위해서였다.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내의 한인들에게도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던 이번 대국들을 유튜브를 통해 관전하면서 여러가지를 느꼈다. 우선 미국 동부 시간으로 밤 11시, 그리고 마지막 날은 자정에 시작해 4-5시간이나 걸리는 대국들을 새벽까지 졸음을 참으며 지켜 본 나의 바둑에 대한 애착이 입증되었다. 내가 실제로 바둑을 두는 것은 어쩌다 지인들과 한 두 판 정도이다. 그런데 이렇게 밤샘까지 하면서 관전할지는 몰랐다. 덕분에 1 주일 내내 졸음과 싸웠다.
이번 5번기의 승패 결과만 놓고 볼때는 인공지능의 승리이다. 그러나 그러한 승리는 승부에만 초점을 맞추었을 때의 이야기이고, 바둑 자체에 초점을 맞추면 인간의 승리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그리고 역시 바둑은, 즉 인간이 만든 바둑이란 게임은 단순히 승부에만 초점을 맞추려고 생성된 것도 아니고 그래서도 안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누구나 바둑을 둘 때는 이기고 싶고, 그러기 위해 실력 향상에 노력을 기울일 수 있다. 그리고 실력 향상에 알파고와 같은 인공지능이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바둑은 단순한 승부를 넘어 그 이상을 추구하는 게임이다. 물론 이번의 도전기에서는 인공지능과 인간지능 사이에 승부 가늠도 중요했다. 하지만 이번에의 가늠은 지능 우위 가늠보다는 인간과 인공의 한계 파악에 좀 더 큰 가치를 두어야 하지 않나 생각된다.
인간이기에 가질 수 있는 중압감과 그 영향은 인간의 한계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그렇기에 우리는 “인간미”를 얘기할 수 있고 그에 대해 감사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기계가 능력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 같은 착수를 할 때, 우리는 그것을 오작동이라고 부르거나 더욱 발전시켜야 하는 대상으로 치부한다. 즉, 인간에게는 부족함이나 한계가 인간미로 이해되거나 용서되고, 인정되지만, 기계에게는 그저 좀 더 나은 기계가 되기위한 극복의 대상일 뿐이다. 그러기에 기계가 우리 인간처럼 감정을 느낄 수 있다면, 인간보다 더 큰 중압감에 쌓일 것이다.
바둑 실력이 미천한 내가 이번 대국에서 본 고수의 착수들을 다 이해한다고 감히 얘기 할 수 없다. 다행히 대국 해설자들의 설명을 통해 그 때마다 중요 착수의 장,단점을 들었다. 그러나 알파고가 보여 준 착수들 중에는 기상천외하다고 느껴지기 보다는 오히려 무례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보여지는 것들도 있었다. 그러한 착수들은 인간 사이의 대국에서는 아무리 유리해도 두어지지 않을 수 있겠다 싶었다.
이번 도전기를 통해 구글은 인공지능에 대한 마케팅 효과를 톡톡히 보았다고 한다. 그 가치가 수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또한 한국에서도 바둑에 관한 관심이 상당히 높아졌다고 한다. 바둑을 배우겠다는 학생들이 늘었고, 바둑용품의 매출도 대단하다고 한다. 또한 평소에 전혀 관심 없던 사람들도 바둑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바둑계에 너무 반가운 소식들이다.
나는 평소에도 좀 더 많은 페어팩스 카운티 학생들에게 바둑이 보급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왔다. 현재는 일부 학교에서만 주로 특별 활동으로 제공되고 있다. 바둑은 동양 3국에서만의 게임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보편화되기에 손색이 없다. 우리 한인들이 자랑스럽게 미국인들에게 내세울 수 있는 문화적 자산들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지난 주 교육위원회 정기회의 자리에 바둑판을 가지고 갔다. 동료 교육위원들과 교육청 고위 직원들에게 바둑과 이번의 도전 5번기를 소개했다. 그 후 몇몇 교육위원들로부터 바둑을 가르쳐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기본 규칙을 설명하는 유튜브 비디오를 찾아 보내 주어야겠다.
이번 주말에는 이번 5번기 기보들을 놓고 복기를 해보려 한다. 벌써부터 흥분이 된다. 그리고 이세돌 9단에게 수고했고 축하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넷째 대국 승리의 짜릿함과 마지막 대국 패배의 아쉬움이 아직도 나의 가슴에 그대로 남아 있다.
<문일룡 변호사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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