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토닌 스칼리아 연방 대법원 판사가 지난 토요일 급작스럽게 사망한 까닭에 그의 후임자 선정문제를 두고 미국 정계는 소용돌이 속에 빠져있다.
1986년에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이태리계로는 최초 대법원 판사로 임명되었던 스칼리아는 식견과 필력이 뛰어난 보수계의 ‘거인’으로 평가 받아왔던 사람이었다. 이미 소냐 소토마이어와 엘레나 케간을 대법원 판사로 임명한 오바마가 세 번째로 또 한명을 임명함으로써 자기의 아젠다를 퇴임 이후에도 몇십년 연장시킬 것을 모색하려고 할 것은 당연하다. 반대로 공화당은 대법원 판사를 인준하는 상원에서 56석을 가진 다수당이라서 오바마의 계획을 철저히 방해하고자 한다. 대통령선거가 금년에 있으니까 선거결과 누가 되든지 새 대통령이 지명하는 것이 순리라고 주장한다. 현재 대법원이 4대4로 보수 대 진보성향의 분포인데 스칼리아 후임을 어느 당의 대통령이 임명하는가에 따라 미국사회의 향방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에 당파간의 논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미국 대법원은 한국의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를 합친 것과 같은 권한을 행사한다. 헌법과 법률의 최종 해석기관이기 때문에 예를 들면 400만으로 추산되는 이민서류 미비자의 추방을 유예하는 오바마의 행정명령이 위헌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할 수 있다. 그러나 4대4로 교착상태가 되면 제5연방순회 법원의 위헌이라는 판결이 적어도 그 관할지역에는 효력을 발생하여 불체자들 다수가 추방되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 힐러리 클린턴이 공화당 쪽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임기가 2017년 1월 20일에 끝나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라고 목청을 높인 것은 오바마가 스칼리아의 후임을 임명해야만 그와 민주당의 치적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화당은 오바마가 진보성향의 인사를 임명하더라도 상원인준 과정을 통해 부결시킬 수 있는 다수당이기 때문에 오바마도 후임인선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공화당 쪽에서도 받아들여질 만한 정치색이 짙지 않은 중도성향의 인물을 선택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 있다. 따라서 현직 연방순회법원 판사들 중 오바마가 임명했지만 상원에서 공화당의원들도 만장일치로 인준 했던 인물들이 유력한 후보군으로 거명된다. 예를 들면 워싱턴 DC 연방순회법원의 스리 스린이바산 판사는 2013년 5월에 3명의 의원들이 결석한 가운데 97대 0으로 인준을 받았다. 그리고 그는 인도 출신으로 이민 온 배경에 더해 뛰어난 법과 대학의 성적 때문에 샌드라데이 오코너 전 대법원 판사의 법률보좌관을 거쳐 조지 부시와 오바마 행정부에서 법무부 대법원 담당부서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같은 맥락으로 베트남 출신 응우옌 제9연방항소 법원 여판사가 있다. 한국계 루시 고 판사도 물망에 오른 것처럼 보도되었지만 아직은 시기상조인 것으로 보인다. 삼성 대 애플사건을 다룬 연방지방법원판사로 명성을 얻은 것과 연방항소법원 판사로 최근 임명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상원의 인준 히어링을 거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기 대통령이 민주당 출신이라면 대법원의 공석이 생기는 경우 고홍주 전 인권담당 국무차관보와 함께 고 판사도 유력후보군에 들어갈 것이다. 스칼리아는 헌법 조문의 해석에 있어서 헌법제정자들의 당시 의도를 중시하는 ‘엄격한 해석주의자들’의 대표적 인물이었다. 헌법을 살아있고 숨쉬는 문서로 간주해서 시대의 상황과 가치관에 따라 해석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진보주의자들과 정 반대의 입장에서 있던 사람이 그였다. 43년전 그가 로우 대 웨이드 사건에서 대법원이 7대 2로 여성들의 낙태권리를 헌법적으로 보장된 것이라고 판결내린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그가 낙태권리를 아예 묵살하지 않으면 크게 제한하는 소수의견들을 학술적이고도 날카롭게 개진한 것은 보수성향의 법조인들만이 아니라 일반사람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쳐왔었다. 연방 헌법 어디에 여자들이 태아를 마음대로 낙태할 권리에 대한 언급이 있는가 라는 스칼리아의 날카로운 지적에 대해 연방헌법 수정 제 14조에 보장된 미국 각 주의 시민들의 평등권등 기본권리에 함축이 되어 있다는 진보주의자들의 해석의 근거가 박약하다는 느낌은 보수주의자들만 갖는 게 아니다. 또 결혼이 남녀 간의 연합이라는 성경의 근본사상을 믿고 실천했던 헌법기초자들의 배경으로 보아 결혼이 동성간에도 이루어 질 수 있으며 동성간의 결혼도 존중되어야 한다는 대법원의 2015년도 판결이 결코 헌법을 만든 사람들의 원래의도와 정반대된다는 스칼리아의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그런데 이 글을 쓰느라고 이것저것 읽다보니 대법원 판사들이(특히 교육배경이) 미국의 엘리트라는 점이 분명하다. 그것은 다음에 다루자. <변호사 MD, VA 301-622-6600>
<남선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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