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웠던 여름을 등지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워싱턴의 곳곳에 연주회들이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연주회를 열심히 좇아다니는 마니아들은, 굳이 바깥으로 표현하지 않을지 모르나, 적어도 무의식 속에서라도 아래의 세가지 마인드를 가지고 음악회에 접근할 것이다, 우선 “시간을 내서 힘들게 왔는데 오늘 연주 좋아야 할 텐데” 라는 음악회에 거는 예술성 측면에서의 기대와 “그런데 알아들을 수도 없고 졸리면 어떡하지?’”하는 대중성 측면에서의 우려, 마지막으로 “기왕 왔는데 사람도 많이 오면 더 좋겠다”는 흥행성에 대한 소망이다. 적어도 위의 세가지 중 두가지를 만족시킨다면 그날의 음악회는 꽤 성공적인 음악회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세 가지를 다 얻고 돌아갈 때 관중들이 얻는 보람과 기쁨은 클 것이다. 그리고 그 감동은 ‘새로운 에너지 충전’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의 삶에 크고 작은 변화를 만든다. 지난 7일 애난데일연합감리교회에서 있었던 ‘크리스천 클래시컬 싱어즈'(이하 CCS)의 연주는 이 세가지를 다 만족시킨 훌륭한 음악회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CCS의 이번 음악회가 이전의 음악회들과 눈에 띄게 다르다고 느낀 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예술적 측면에서의 만족은 각 연주자가 갖는 기량과 음악적 역량이 가장 큰 몫을 차지한다는 점은 어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그만큼 동등하게 중요한 부분이 음악회의 ‘프로그램 구성’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즉 음악회의 ‘컨텐츠(내용물)’ 인데 어떤 작품을, 어떤 주제 아래 적절히 선정해서 분류하고, 효과 있게 하나의 음악회로 만드느냐는 것이다. 나는 CCS의 이번 음악회가 이전의 음악회들과 눈에 띄게 다르다고 느낀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과거의 프로그램이 각 싱어들이 좋아하는 독창곡들과 앙상블들을 일관성 없이 나열해 놓은 느낌이 있었다면 이번 음악회는 보기에도 일목요연하게 장르를 나눠 각 세곡씩 묶어서 재미있게 연결하면서도 각 장르의 컬러를 느낄 수 있게 만들었다. 거기에 그들의 예술성 있는 연주가 어우러져 ‘시너지 효과’를 가져왔다고 본다.
현대 음악의 흐름은 ‘자연스러움’으로 흘러가는 경향을 보인다. 더불어 관중들도 음악회에 거는 기대가 ‘지나치게 어려움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아나운서 장양희의 오버하지 않는 깔끔함으로 진행된 음악회는 대중이 선호하는 ‘열린 음악회’로 전개되었는데 대부분의 곡들이 듣기에도 편안한 곡들이었지만 그런 가운데도 예술성을 잃지 않는 노래들이었다.
CCS의 연주자들은 이곳 워싱턴의 오페라 및 성악 무대와 뉴욕과 유럽의 무대에서 활동했고 또 활동하고 있는 남성 성악인들로 구성되어 있다. 물질적 흥행성을 벗어나 비영리 단체로서의 성격을 띠고 활동하고 있지만 그들이 가진 재능은 흥행을 고려해 볼만한 충분한 역량들을 가지고 있었다. 든든한 후원자들이 스폰서하고 연주자들이 더 나은 연주를 위해 집중할 수 있을 체제가 구축된다면 이 단체는 워싱턴의 큰 자랑거리가 되어 미 전역에 영향을 미칠 만큼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전체 연주회를 ‘하나의 주제’ 아래 더 역동적이면서도 흥미 있는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 전문성을 띤 음악 감독이 필요하다고 본다. 또 대부분의 단원들이 뛰어난 음악 해석자들이지만, 싱어들이 서로 알려주지 못하는 미묘한 부분들을 고쳐주고 역량을 끌어내어줄 성악 코치가 필요하다.
연주자 모두 엄청나게 아름다운 미성을 갖고 있음은 자타가 부인하지 못할 것이지만, 흔히 성악가들에게서 쉽게 볼 수 있는 가사 전달의 부정확성, 또 그 아름다운 소리와 함께 더 과감히 표출될 수 있는 내재된 음악성을 누군가가 터치하고 끌어내어줄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그날의 음악회 마지막 무대는 주종식, 남성원, 신윤수가 연주한 ‘쓰리 테너스’의 무대로 도니제티의 ‘남 몰래 흐르는 눈물,’‘그리운 금강산’ 등 총 3곡을 연주했는데 음악적 테크닉과 비평이라는 단어를 머리 속에서 잊어 버렸을 만큼 역동적이고 파워풀했다. 관중들은 “브라보”를 외치며 열광했고, 이 모습 속에서 이제부터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희망’을 볼 수 있었다.
<이성희 미드웨스트 음대 교수 전 워싱턴음악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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