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요일 자유광장 상임대표 정기용 씨의 ‘냉면축제, 자존심과 돈키호테’란 칼럼을 재미있게 읽었다. 그가 몇십년 전 청년시절 미국에 오면서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금속활자, 팔만대장경, 한글 등 한국의 세계 최초 아니면 최고의 기록을 숙독했었다는 데서 그의 철학과 준비성을 느낄 수 있었고 나의 준비 결여가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 그분이 나이 들어 뒤늦게 민족적 자존심을 북돋는 우리 조상들의 지혜로운 유산 목록에 냉면을 추가한 것이 내 마음에 꼭 들었다. 초등학교 시절 번번이 점심 먹으러 집에 가는 것은 군수 아들이라 봐주었겠지만 점심 후 늦게 들어와 수업을 방해하던 것이 못마땅했을 담임선생님이 왜 늦느냐고 물으면 국수 한 그릇을 먹고 오느라고 그랬다는데서 나의 별명이 ‘국수 한 그릇’으로 고착되었을 정도로 나는 면류 음식을 좋아한다. 그러니까 여름철에는 거의 매일 냉면이다. 정 씨의 냉면예찬론이 귀에 쏙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오래 전에 있었던 정 씨와의 간접 인연이 생각났다. 내 기억으로는 정 씨가 1970년대 반독재 민주화를 기치로 내건 한민신보의 발행인 겸 편집인이었다. 당시 노폭대학에서 신문학 강의를 하던 나는 1978년 3월경 ‘한국 신문들의 길들이기(the taming of the Korean Press)’란 글을 컬럼비아 저널리즘 리뷰라는 컬럼비아 신문대학원에서 발간하는 격월간지에 기고한 바 있었다. 그런데 한민신보가 그해 4월6일자로 `전 동아일보 기자가 폭로하는 박 정권의 언론 탄압의 내막: 사회면마저 목졸린 상태, 반항도 소용없어, 긴급 조치 발동으로 꺼져버린 항거의 불길, 민족 배반한 동아일보 사주’란 제목과 부제들이 붙은 기사를 비교적 길게 실었었다. 그 `전 동아일보 기자’가 바로 나였다. 그런데 아주 오래된 것이라서 인터넷을 통해 찾고자 했어도 구글의 ID 넘버나 패스워드가 없는 나로서는 내용 전체를 볼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나의 글 도입 부분 몇 줄과 개요만은 읽을 수 있었다. 그것을 소개하면 대략 이러하다. 내가 동아일보에서 외신 해설 기사를 쓰던 시절 세계 2차대전 시 `중국 위의 적성’이라는 모택동 전기를 써서 유명해졌던 미국 언론인 에드가 스노우가 1960년대 초에 다시 모택동의 중국엘 가서 쓴 `강 건너편’이란 책을 출판한 데 대한 영국 신문의 보도에 입각한 글을 쓴 적이 있었다. 그런데 스노우의 글 중에 “중공 사람들에게는 모택동이 공자, 석가모니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합친 것으로 보여 진다”는 문장이 들어있는 것이 나의 글에 인용되었다. 내 글이 신문에 실리자마자 당시 편집국장이던 천관우 선생이 전화로 누군가와 말다툼 하는게 들렸다. “내가 편집국장이니까 모두 내 책임이라 어느 기자가 그 기사를 썼는지는 대줄 수 없다”라는 투가 중앙정보부의 언론담당관과의 대화였을 것이다. 천관우 씨가 만약 내 이름을 대주었다면 아마도 나는 남산에 끌려가 얻어터졌을 것이다. 그 당시 군사정권은 때때로 사전 검열을 통해 언론을 통제했고 독재에 항거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기사나 논설을 쓰는 사람들은 체포되어 수감되는 수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 되었던 사람들 중 군사혁명의 당위성 그리고 박정희의 민간 독재를 찬성하는 쪽으로 돌아선 사람들도 있다.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이던 이만섭 씨와 논설위원이던 황산덕 씨를 생각해 보면 된다. 물리적 탄압과 아울러 당근이 사용되기도 했다. 신문 발행인을 아예 정부 요직에 앉히는 방법이 있다.
동아일보 사장이던 최두선 씨의 ‘방탄 내각’ 그리고 한국일보 장기영 씨의 부총리 발탁 등이 있었다. 그리고 중앙정보부는 편집국들 내부에 소식통을 두는 방법으로 언론을 길들였으며 조선일보 등이 사옥 신축을 할 때 외자 승인 등으로 사주들의 환심을 사기도 했다. 그래도 언론기관 특히 동아일보가 고분고분 하게 지지를 안했을 때는 광고주들이 광고를 내지 못하게 압력을 가해 결국은 사주가 손을 들어 언론 자유를 외치던 신문인들을 해고시킨 사례도 있었다. 그런데 한민신보에서 전 동아일보 기자였던 내 실명이나 컬럼비아 저널리즘 리뷰는 언급하지 않았던 것이 좀 이상하게 생각되었던 기억이다. 또 한 가지 내 글 어디에도 “민족 배반한 동아일보 사주”란 말이 없었음에도 그런 부제를 붙인 것은 번역기자의 정치성향 때문이었을 듯하다.
정기용 씨가 만약에 메릴랜드에 올 일이 있다면 우리 집사람의 냉면 솜씨를 한 번 맛보이고 싶다. 육수로 꿩고기는 커녕 닭을 삶은 국물을 쓰지는 않지만 우리 집에서 재배하여 담근 오이김치 국물에다 깡통의 치킨 국물을 섞은 것을 쓰는 데도 나에게는 최고의 냉면 맛으로 느껴지는바 달인의 평가를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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