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월요일 저녁에는 한국일보 지령 1만호 기념행사 덕에 좋은 이태리 음식을 즐길 수 있었다. 조금은 기름진 음식이라 아쉬운 것이 있었다면 김치와 소주 정도였지만 바로 그 다음 날이 우리 부부의 결혼 53주년이었기에 아내와 함께 참석할 수 있었던 게 무척 고마운 일이었다. 나의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해서 희미해진 기억을 되살려 내가 경험했거나 기억하는 한국일보에 관한 옛이야기라도 할까 한다. 존칭은 일체 생락한다.
우선 1959년에 딱 한 번 만났던 한국일보 창립자 백상 장기영에 대한 회고가 적절할 듯하다. 일제 아래 대학이 아니라 선린상고 출신이지만 그에게 얼마나 출중한 실력이 있었는가는 그의 한국은행 경력에서 볼 수 있다. 평행원으로 출발했지만 한은 부총재까지 올라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시 이승만 독재 정부 아래서 동아, 조선 등 항일의 역사가 있었던 신문만이 아니라 가톨릭교단과 관련이 있던 경향신문마저 반정부 논조이던 시절 불편부당과 춘추필법의 중립지를 표방하는 한국일보를 장씨가 창간한 것이 내 기억으로는 1954년이나 1955년이었을 것이다. 당시에 정부기관지인 서울신문이 위에 언급한 세 신문들과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우던 때였다. 한국일보는 창간 때부터 6개월에 한 번씩 견습자들을 공채하는 최초의 신문이 되었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대학 졸업자들만 응시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고등학교 졸업자들도 그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나 자신의 경험을 고백해 보자, 1957년에 몹시 아팠다는 핑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서울대 시험에서 낙방을 하고 외국어대학에 진학했던 나는 기울어진 가세 때문에 직장을 찾을 수밖에 없던 형편이었다. 한국일보에 두 번 응시했던 기억인데 두 번 다 떨어졌다. 경기고등학교 동창이던 정근모와 이동복은 견습기자 시험에 합격했다. 정근모는 고1때 문리대 물리학과에 들어갈 정도의 과학도였던바 미국 미시간대학에 박사과정을 하러 가기 직전에 재미삼아 응시했다가 덜컥 붙는 바람에 그의 매형이 장 사장에게 사정사정해서 미국엘 보냈다는 이야기를 그 사람에게서 직접 들은 기억이 있다. 정근모는 과기처장관을 두 번 지냈다. 이동복은 한국일보 정치부 기자를 하다가 이후락의 방북 이후 남북조절위의 대변인을 거쳤고 국회의원도 지냈다. 내가 1959년 동아일보 견습기자 제1기생 모집에 붙을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한국일보 시험에 두 번 떨어지면서 생긴 요령 때문이었을 것이다.
1959년 나의 초봉이 3만환이었고 한국일보의 견습기자는 1만환이었다. 당시 최고 부수를 자랑했던 동아일보에서는 한국일보의 출중한 기자들을 많이 뽑아 왔던 기억이다. 박현태(문공부차관 역임), 박권상(KBS 사장), 홍승면 등 열 손가락으로 세야 될 한국일보 출신들이 내가 미국으로 온 1964년 이전에 동아일보 식구들이 되었다. 그 밖에도 나와 관훈클럽 회원으로 안면이 있던 임방현, 조세형 등 한국일보 출신들이 상당수 정관계 진출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언론계에 큰 족적을 남긴 장기영은 박정희 민정 초에 경제기획원 장관으로 있으면서 한국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당시에 그의 비서를 하던 김기병 과는 고등학교 한 반에서 알던 사이다. 워싱턴 DC 부근으로 1978년에 이사 온 나는 1985년을 전후해서 유석희가 경영하던 동아일보 워싱턴 판에 가끔 기고하곤 했었다. 나중에 유석희가 자신의 사촌형 유태희의 한국일보로 적을 옮긴 다음 그에게 나의 칼럼을 쓰는 아이디어를 상의했더니 해보라고 해서 정기적으로 쓰기 시작한 것이 20년 정도 된 것 같다. 그동안 편집국 여러분들의 신세를 무척 많이 졌다. 왜냐하면 최신 기기 공포증이 있다고나 할 정도로 영문 타이프마저 정확하게 못 치는 주제라서 내가 원고를 개발 새발 그리다시피 쓴 다음 팩스로 보내면 편집진이 타자해서 내게 돌아오는 것을 고쳐 다시 팩스로 편집국에 보내는 1960년대식 송고 방식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코스코(Costco)의 3, 4불짜리 핫도그 점심으로 내 아내와 데이트한다는 것이 포함된 칼럼을 보고 그 따위 글 같지 않은 것을 쓸 바에는 그 누구처럼 절필하는 게 나을 듯 하다고 준열하게 꾸지람을 주신 어느 독자의 제안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가 가까워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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