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농구를 좋아한다. 농구를 잘 한다는 뜻은 아니다. 단신에 체력도 딸리고 운동신경조차 둔해 농구를 직접하는 것은 엄두도 못낸다. 그러나 관전에는 상당히 관심이 있다. 내가 맨처음 농구시합 경기장에 가 본 것은 미국에 이민 오기 전 한국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이었다. 당시에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 농구팀이 제법 잘했다. 그래서 학교에서 가끔 단체 응원을 갔었는데 그게 동기가 된 것 같다.
그런데 농구시합에 대한 관심은 미국에 와서 고등학교에 다닐 때 극대화 되었던 것 같다. 당시 내가 2년간 다니던 학교가 바로 버지니아 주 알렉산드리아 시에서 유일한 공립고등학교인 TC윌리암스 고등학교였다. “타이탄을 기억하라”라는 영화의 소재가 된 학교이다.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그 학교 풋볼팀의 실력이 대단했다. 그러나 내가 다니던 때에는 농구팀이 더욱 명성을 떨쳤다. 나의 12학년 때에는 28승 무패의 전적으로 버지니아 주 챔피언이 되었고 워싱턴 지역 전체에서 최우수 팀으로 여겨졌다.
고교 재학 당시 나는 학교 농구시합을 거의 빠지지 않고 갔었는데 돌이켜 보면 그게 미국인 친구들을 사귀는데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미국인 친구들은 고맙게도 미국에 온지 얼마 안 되어 영어도 서툰 나에게 교통편을 제공해 주어가며 농구장으로 인도해 주었다. 관전에는 그다지 어려운 영어 사용이 필요 없어 손짓 발짓을 포함해 엉성한 발음과 문장으로도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점차 미국인 급우들과의 사귐에 자신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 친구들이 나에게는 학교에서 가장 친했던 미국인 친구들이 되었음은 물론이며 내가 이민자로서 고등학교 생활을 조금이라도 더 쉽게 할 수 있도록 도와준 은인들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좋아하기 시작했던 농구시합 관전은 지금까지도 지속되어 왔다. 교육위원으로서 카운티 내 고등학교 시합에도 종종 직접 가 보고 남자대학농구도 시간이 가능한대로 TV 중계방송을 통해 즐겨 본다. 내가 열심히 응원하는 하는 특정 팀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엔 내가 사는 지역 팀이나 객관적으로 전력이 떨어지는 약체팀을 응원한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강팀이 이기지만 어쩌다 한번 약체팀이 이길 때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이제 그 남자대학 농구의 시즌을 마감하는 “March Madness”, 즉 “3월의 광란”이라고 하는 토너먼트가 이번 주에 시작했다. 지난 주 일요일 저녁에 발표된 68개의 참가 초청팀이 3주간의 결전을 벌인다. 오늘 저녁까지의 경기를 통해 절반이 탈락하고 이번 일요일이 지나면 16팀만 남는다. 다음 주말에는 ‘Final Four’라고 부르는 4강팀이 결정되고, 그 4팀이 준결승과 결승을 치러 명실공히 미국 대학농구의 챔피언을 가리는 것이다. 토너먼트 네 지역에서 켄터키, 빌라노바, 위스콘신 그리고 듀크 대학이 1번 시드배정을 받았는데 많은 사람들의 관심은 역시 현재 34승 무패인 켄터키 대학의 40승 무패 우승 여부에 있다.
이 기간 중 미국에선 직장동료들 사이에 가장 중요한 화제로 떠오르는 것이 바로 이 대학농구 토너먼트라고 한다. 그 것만큼 평소에 전혀 상관없거나 다른 의견을 갖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공통화제가 되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도 전날의 게임 내용을 갖고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정책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는 정치인들도 농구 경기로 한 마음이 되기도 한다.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지 않은 한인 동포 1세들에게는 큰 관심이 안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평소 대화하기 힘든 자녀나 손자들과도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소재로 이것만큼 좋은 것도 없다. 같이 응원할 팀을 정할 수도 있고 일부러 서로 반대편에 서서 응원 경쟁을 벌일 수도 있다. 잘 모르는 부분은 자녀나 손자들로부터 배운다는 자세로 물어 보면 기꺼이 가르쳐 줄 것이다. 오늘 저녁의 게임들로부터 시작해도 결코 늦지 않다. 나 역시 동료 교육위원들과 올해도 결과를 예측하는 내기에 참여한다. 교육정책이나 현안들로 종종 대립하는 것을 다 뒤로 하고 같이 함께 웃어 볼 수 있는 기회이다.
나는 35년 이상 듀크대학 팬이다. 바로 아래 여동생이 그 대학을 입학한 이래 줄 곳 그래 왔다. 우리 집 애들도 마찬가지이다. Go Blue Devi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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