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새벽, 한국의 밤 아홉시 뉴스를 실시간으로 전송받아 들으며 출근을 한다. 차창 밖 빙점으로 내려간 공기 속으로 쏟아지는 눈송이들이 초벌 빻은 떡가루 같다. 참 촌스런 발상이다. 촌스런 발상 속의 떡가루는 다시 말랑한 가래떡으로 변한다. 유년의 기억은 지워지거나 사라지지 않은 채 불안정한 방식으로 저장되어 있다가 불쑥, 그렇게 튀어나오는 법인가보다.
굵어지는 눈발이 차창의 이마를 들이받는 겨울 새벽, 나는 마음속 깊이 각인되어 있던 하얀 가래떡 하나를 쫓아 까무룩 먼 시간 속의 겨울로 발을 들여놓는다.
열두 살까지 내가 자란 곳은 차령산맥의 줄기가 가난한 어미처럼 서른 몇 채의 집들을 품고 있는 작은 동네였다. 동네 앞에는 그리 넓지도 좁지도 않은 들판이 펼쳐져 있었다. 그 들판에 뿌린 볍씨들은 이삭 껍질을 반쯤 열고 하얀 벼꽃을 피워낸 다음 알알이 영글어갔고 산 밑의 비탈밭에서는 콩이며 팥, 녹두 같은 것들이 깍지 속에 모여 여물어갔다. 베어낸 벼 포기나 빈 수숫대를 남긴 채 가을이 떠난 자리를 매서운 바람이 차지해버리면서 산촌의 겨울이 시작되었다.
겨울은 길었다. 그 긴 겨울에 징검다리처럼 놓여 있는 게 명절이었다. 명절은 곧 음식이었다. 부뚜막 위의 소금을 제외하고는 모두 그 동네에서 난 재료로 만든 음식들이었다. 그 순한 음식들은 내게 영혼의 음식과도 같은 것이었다.
겨울의 초입에는 작은설이라고도 부르던 동짓날이 기다리고 있었다. 길어진 밤의 길이가 정점을 찍는 그날 저녁에는 팥죽을 쑤어 먹었다. 동지가 지나면서 길었던 밤의 길이는 노루꼬리만큼씩 짧아졌다. 나는 팥죽 속에 들어있던 찹쌀 새알심을 좋아했다. 지난 봄 마늘밭 둔덕의 잡풀더미 속에 낳아 놓았던 오목눈이의 새알처럼 작았던 새알심은 쫄깃하고도 맛이 있었다.
명절음식을 위해 두어 마지기의 논배미에 따로 심어 거둔 찰벼에서는 향기가 났다. 나이 숫자만큼 헤아려 먹던 새알심이나 찰시루떡, 오곡찰밥이나 찹쌀산자에서도 그 쌉쌀한 찹쌀 특유의 향기가 났다.
가마솥 가득 쑤어 놓았던 동지팥죽을 다 먹고 달포쯤이 지나야 설이 되었다. 설밑에는 늘 고구마조청을 만들었다. 가마솥으로 가득 앉힌 엿물이 부르르 끓어오르면 거품 위에 바가지 하나를 엎어놓고 불땀을 줄여 조청을 만드는 할머니는 요술쟁이 같았다. 조청의 달콤함을 맛보기 위해서는 한나절이 넘는 기다림이 필요했다.
무릎께까지 닿는 부엌간의 문턱을 숱하게 들락거려야 가마솥 밑으로 조촘조촘 내려간 엿물이 조청으로 변하는 순간과 맞닥뜨릴 수 있었다. 갈색으로 졸아든 조청은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맛이었다.
땅에 떨어진 이삭 한 낱도 허투루 지나치지 않던 할머니가 쌀뒤주를 열어 말가웃이나 되는 쌀을 덜어내는 때가 설이었다. 섣달 그믐날이 되기 하루나 이틀 전, 불린 쌀을 이고 방앗간에 가셨던 어머니를 기다리는 일은 조청을 기다리는 일만큼이나 지루했다. 녹슨 함석지붕의 방앗간은 들판 끝 신작로에 면해 있었다.
삼동네 함지박이란 함지박은 다 나와 줄을 섰을 것이니 우리 집 함지박의 차례는 언제쯤일지 가늠키 어려운 일이었다. 구 밖에 나가 목을 빼고 방앗간 쪽을 바라보고 있으면 방앗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발전기 돌아가는 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려왔다. 통통통 통통통통, 바람이 동네 쪽으로 치불면 들려오다가 다시 방앗간 쪽으로 내리 불기 시작하면 아스라이 멀어져갔다.
어머니가 가쁜 호흡과 함께 대청마루에 내려놓던 함지박 안에는 두어 뼘내기의 뽀얀 가래떡이 가지런했다. 할머니가 베보자기를 열고 손으로 끊어 주시던 가래떡은 말랑하고 따뜻했다. 말랑하다는 낱말이 그처럼 어울릴 수 있는 음식이 어디 또 있을까. 쪼르르, 내가 살강으로 간장종지를 가지러 가면 할머니는 벽장의 조청단지를 꺼내와 조르르, 조청을 따라주셨다. 나는 행여 달콤한 조청을 떨어뜨릴까봐 턱을 한껏 치켜들고 가래떡 한 입을 베어 물었다.
가래떡의 말랑함과 조청의 달콤함에 감았던 눈을 살짝 뜨면 작은 속눈썹 밑으로 앞산의 풍경이 통째로 들어왔다. 겨우내 그 많은 나무들을 베어내 주고도 수더분하게 앉아 있던 앞산, 그 산과 나 사이의 하늘로 메밀꽃 같은 눈송이들이 풀풀 날아들었다.
그날 밤, 가래떡 함지박은 서생원들을 피해 시렁 위에서 잠을 자야 했다. 꾸덕꾸덕 알맞게 굳어 있는 가래떡을 동글동글하게 썰어 대광주리에 가득 담아 놓으면 한 해 동안 뜨고 지던 하늘의 낮달들이 모두 내려앉은 듯했다. 썰지 않은 가래떡은 물두멍 속에 빠트려 두었다가 화로에 굽거나 뜸 들이는 밥솥에 얹어놓으면 다시 말랑한 속살을 내어주었다.
집 나갔던 빗자루도 돌아온다는 섣달그믐날 저녁이 되면 온 동네의 굴뚝이 바빠졌다. 한 섬지기의 굴뚝에도, 열 섬지기의 굴뚝에도 똑같이 하얀 연기가 하늘로 솟아올랐다. 집집마다의 부엌에서는 가마솥의 엉덩이가 달궈지며 시루떡이 쪄지고 수정과가 달여지고 수수부꾸미가 지져지고 있었으리라.
설날 아침이면 꿩고기나 닭고기로 국물을 내어 끓인 떡국을 먹었다. 뽀얀 국물 위에 샛노란 지단이 꽃처럼 얹혀 있던 그 떡국의 맛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순결한 맛이었다. 그 따뜻한 떡국 한 사발에 행복한 나이 한 살을 얻어가진 아이들은 늘 한 치수 크기 마련인 헐렁한 설빔을 입고 쭈뼛거리며 대문간을 들랑거렸다.
사회계층간의 관계를 지칭하는 갑을관계라는 말이 이슈화되고 있다. 뉴스마다 갑의 횡포니 을의 눈물이니 격앙된 목소리가 시끄럽더니 오늘은 을의 반격이라는 또 다른 말이 등장한다. 차창 밖의 눈발도 분분하고 갑과 을의 싸움도 분분한 새벽, 나는 먼 기억의 포구에 발이 빠진 채 방앗간을 지나 벼꽃 피던 두렁길을 지나 그 동네로 가고 있다.
갑수네 굴뚝에도 을수네 굴뚝에도 하얀 저녁연기가 나란하던 그 동네의 어귀에 서있는 나의 손에는 아직도 말랑한 가래떡 하나가 쥐어져 있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