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에도 인간성이 있다”고 하면 많은 사람이 저 여자 어찌 된 것 아닌가 할게다. 하지만 때때로 우리는 고양이나 개의 성격, 성향을 말 할 때 고양이성 (cat-ality) 혹은 개성 (dog-ality) 이라 하지 않고 그들의 인간성 (personality)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내 말이 그리 틀린 소리는 아니지 않을는지…. 그런 마당이니 유리의 성품, 성격을 이야기할 때 유리의 인간성이라 하여 번지수가 완전히 틀린 소린 아니질 않을까 고집해 보는 바다. (저 여자 맛 갔다는 소리 듣기 전에 이쯤 접어 두자)
하지만 내가 그리 주장하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나는 유리작업을 즐긴다. 처음엔 성당이나 교회를 장식한 스테인글래스에 반해 그걸 해 보고 싶어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이 유리라는 물질에 숨어 있는 나름대로의 성격이 자꾸 날 끌어들여 마치 무엇에 홀린듯 빠져들게 된 거다. 요즈음은 스테인글래스 보다는 도자기 만들듯 유리를 가마에 넣고 구워내는 일에 빠져 잠마저 설친다. 좀 더 예쁘게, 좀 더 맘에 들게 만들고 싶어 만들어 보고 또다시 구워 본다. 거기 쏟아붓는 시간도 시간이지만 내 주제에 주머니 사정도 만만친 않다. 때로는 먹고 자는 것 조차 잊고 덤빈다. 이리되면 취미라기보다는 중독에 걸린 건 아닐까?
혹자는 미쳤다, 개나 고양인 살아 움직이지만, 유리는 생명체가 아니지 않느냐? 거기에 무슨 인간성 운운이냐? 할 것이다. 나도 그랬었다. 유리작업에 빠질 때 까지는. 그러나 지금 나는 단언한다. 유리의 인간성(?)을 얕잡아 보지 말라고. 깨진 유리는 삐죽 빼죽 날카롭다. 조심, 조심 다루는 손을 가차 없이 할퀴어 피나게 하고 상처 낸다. 그런데 이 유리를 유리 굽는 가마에 넣고 천천히 열을 가하면 물렁해 지고, 좀 더 가하면 물처럼, 아니 꿀처럼 녹는다. 사람한테 사랑이라는 열을 가하면 물렁해지고 좀 더 가하면 물불 모르고 헤벌쩍 녹아들듯 말이다. 일단 그렇게 녹으면 그때는 내 주문대로다. 사람도 그렇지 않은가? 열불 오르면 이성은 도망가고 조물주 혹은 자연의 주문 속에 녹기 십상 아니던가?
사람은 서로 맘에 드는 끼리끼리 만나 붙는다. 유리도 그렇다. 아무 유리나 갖다 대고 열을 가한다 해서 다 들러 붙는 게 아니다. 궁합이 맞는 유리끼리라야 서로 합친다. 아니면 깨진다. 사람들 싸우고 갈라지듯 말이다. 유리 자르는 칼은 따로 있다. 칼끝에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다이아몬드 조각을 붙여서 그 다이아몬드로 하여금 유리를 자르게 한다. 여자의 마음을 사기 위해서도 아무리 작더라도 다이아몬드 반지는 하나 마련해야 한다. 그것도 서로 통하는 점이라 본다고 나를 너무 무식하다고 내치거나 나무라지는 말기 바란다. (여기엔 어쩌면 평생 다이아몬드 가락지 하나 얻어 끼어보지 못한 나 홀로의 애통한 마음이 있어 이런 비유를 찾아낸 것인지도 모르는 바이니 너그러이 양해해 주시길….)
유리 자르기 위해서는 금강석이 붙은 칼로 금을 긋고 그 선을 따라 시간을 끌지 말고 유리를 끊어 줘야 한다. 금을 긋고 나서 자르지 않고 시간을 흘리면 아무리 생명 없는 유리라 해도 그어 놓은 금 밑의 생명체(?)는 서로 다시 들러붙어 치유의 힘이 생기기 때문에 끊을 수가 없어진다. 금을 그었던 상처는 빤히 보이는데도 말이다.
사람 역시 한번 다치면 흉터는 남더라도 시간의 도움으로 치유가 되어 살아갈 수 있으니 이 역시 인간사와 유리 사가 서로 닮은 점이 아닐는지….
아무리 작고 못생겼다 해도 작품 하나 만들려면 꼬박 사흘은 걸린다. 자르고, 붙이고, 가마에 넣어 굽고, 다시 열을 가해 구부리는데 그 정도의 시간은 걸리니까. 그래도 이번 성탄, 새해에, 혹은 순이 생일엔 뭘 만들어 주면 좋아할까 생각하며 만들다 보면 밥 먹는 것도 잠자는 것도 잊는다. 내 깐엔 정성 들인 작품이니 받은 순이가 너무 천덕꾸러기로 굴리지 않기를 바라며 만든다. 실은 그저 유리일 뿐 별것은 아니니까. 유리의 인간성까지 읊어 가며 나 홀로 좋아서 하는 짝사랑일 뿐이니까.
오늘도 나는 유리작업을 한다. 부지런히 갈고 닦아본다. ‘개미가 도 닦는’심정으로 말이다. 새해에도 싫든 좋든 계속 닦아야 하는 게 인생사는 우리네 삶의 한 모습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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