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말에 버지니아 주 페어팩스 카운티의 캐런 가자 교육감 그리고 웨스트필드 고등학교의 팀 토마스 교장과 함께 한국을 방문한 것은 이미 세 차례에 걸쳐 본 칼럼을 통해 자세히 보고했다. 오늘은 이번 방문의 뒷 이야기를 하나 하고자 한다.
가자 교육감은 작년에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감으로 임명되기 전까지 줄곳 텍사스 주에서 살았었다. 텍사스 주에서 태어나 그 곳에서 초중고 뿐 아니라 대학을 다니고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그리고 교사직부터 시작해 교육감에 이를 때까지 줄곳 텍사스 주에서만 있었다. 그래서 이번 한국 방문 때 내가 내심 우려한 것이 음식이었다.
사실 가자 교육감이 한국 음식을 처음 접해 본 것 자체가 페어팩스 카운티에서 작년 7월 1일부터 정식으로 교육감직을 시작하기 바로 전, 그러니까 당시 교육위원회 의장이던 나와 첫 식사 회동이 있었던 5월 중순이었다. 그 때 나는 가자 교육감이 다인종, 다문화 지역인 페어팩스 카운티에서 일하려면 여러 다른 문화권 음식에도 익숙해져야 할 것으로 생각하고 일부러 한국음식을 택했다. 물론 본인에게 어느 정도 선택 기회를 주기 위해 부페 식당에서 했지만 말이다.
이번 한국방문 준비 중 여러 곳으로부터 교육감의 음식 선호에 대해 문의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교육감에게는 이번 방문이 한국 고유 음식 문화를 배워 보는 기회도 되어야 하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맛이 아주 강한 음식은 그래도 피했으나 덕분에 여러 다른 한국 음식을 대해 보는 경험을 했다. 그런데 거기에도 한계가 있었다.
부산에서의 일이다. 호텔 체크인 후 부산까지 왔으니 바닷가를 보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에 광안리 해변으로 갔다. 택시 운전사의 안내로 저녁 식사를 위해 어떤 횟집에 들어갔다. 물론 교육감이 회를 먹지 않는다는 것은 알았으나 생선구이 등의 다른 음식들도 나오고 횟상을 한 번 보는 것도 괜찮겠다 생각했다.
그런데 맨 먼저 나온 음식 중 하나가 산낙지였다. 일행이 다섯이었기에 분량도 제법 많았다. 접시에 듬뿍 담겨 있던 산낙지가 크게 꿈틀거리자 교육감의 얼굴이 반사적으로 돌려졌다. 그리고 바로 모든 식욕을 잃은 듯 했다.
생선구이가 나와도 손을 못대어 결국 그 자리에 있던 나를 포함한 한인 둘이 5인분 횟상을 모두 처리해야 하는 횡재를 누리게 되었다. 같이 있었던 백인 남자 교장은 그래도 용기를 내어 산낙지 한 가닥을 입에 가져가긴 했다. 비록 한 가닥에 불과했지만 교장에겐 두고두고 자기도 산낙지를 먹어보았다고 큰 소리를 칠 수 있는 추억거리가 된 것 같다.
식당에서 나오니 바로 앞에서 번데기를 파는 것이 눈에 띄였다. 산낙지를 보여 준 김에 끝까지 가보기로 마음 먹고 번데기도 한 컵 샀다. 보기에도 심상찮은 그 것이 무엇이라는 설명을 듣자 그것을 먹는 나를 쳐다보는 세 명 백인들 얼굴 표정은 아주 야만인을 대하는듯 했다. 번데기는 내가 어렸을 때까지만 해도 용돈을 아껴 모아서야 사 먹을 수 있었던 별미의 건강식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그들은 내가 권해도 단 하나도 입에 대지 않았다. 그런데 그렇게 바닷가를 조금 걷는데 교육감이 자기는 동행한 여동생과 먼저 호텔로 돌아 가겠다고 했다. 다음 날 얘기를 들으니 호텔에 돌아와 피자 한 판을 주문해 먹었다는 것이다.
대신 경상남도 통영을 방문했을 때는 전망이 아름다운 윤이상 음악당 내 이태리 레스토랑에서 식사 대접을 받게되었다. 통영의 회를 못 먹게 되는 것이 나로서는 못내 아쉬웠지만 양보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 곳에서도 한국음식문화의 차이를 경험할 수 있었다. 준비되어 나온 음식들의 간이 아주 싱거웠다. 그만큼 미국 음식들이 짠 것이다. 물론 한국의 밑반찬들도 짠 것이 제법 많지만 미국음식들이 대체적으로 염분 함유도가 높다. 그래서 미국인들 가운데 고혈압 환자 비율이 높은지 모르겠다.
어쨌든 한국방문을 마치고 돌아와 교육감과 교장이 주위 사람들에게 산낙지 얘기를 한 모양이다. 그 날 꿈틀대는 산낙지 모습을 스마트폰 비디오로 촬영했는데 그 비디오를 보았다는 얘기를 여러 사람으로부터 들었다.
물론 내가 그 것을 잘 먹더라는 얘기도 들었다고 덧붙이면서 말이다. 그 비디오는 아마도 앞으로 나와 한국 방문 기회가 있을지 모르는 다른 사람들에게 사전 경고용 교육 자료가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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