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선재/현재 미시간 주립대 영문학과 박사과정 중.
시계탑을 지나 도서관으로 걸어오는 길 양 옆에 있는 잔디밭에는 유난히 다람쥐들이 많이 눈에 띈다. 도토리를 찾아 꼬리로 동그랗게 물결을 그리며 뛰어다니는 다람쥐들의 움직임이 잔디 사이사이로 낙엽이 소복하게 내려앉은 가을의 정적을 가른다. 어느새 미국에서 맞이하는 네 번째 가을이다. 그 동안 시계탑에서 도서관으로 이어지는 이 길을 얼마나 걸어 다녔는지 헤아릴 수 없지만 다람쥐들이 부지런히 뛰어다니는 모습은 볼 때마다 내 눈을 사로잡는 정겨운 풍경이다. 어느 날 친구가 말해주었다. 다람쥐들은 겨울이 다가오면 도토리를 모아서 땅을 오목하게 파고 그 안에 도토리들을 숨겨두곤 하는데 정작 잔디 위로 눈이 덮이면 묻어둔 식량을 찾으려고 이리저리 땅을 파 보아도 어디에 묻어두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고. 그래서 다람쥐들이 묻은 도토리가 그 자리에서 싹을 틔우고 자라나 커다란 도토리 나무가 되기도 한다고. 친구의 이야기는 내가 이 귀여운 동물 친구들을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게 해주었다. 조그마한 다람쥐가 나무 아래 떨어진 열매를 열심히 찾아다니는 줄로만 알았는데, 커다란 떡갈나무가 다람쥐의 작은 손놀림에서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기도 한다고 생각하니, 자연의 섭리가 참 신선하게 와 닿았다. 겨울을 대비한 다람쥐의 일상적인 행동이 비록 스스로를 먹이지는 못했어도 더 많은 동물들에게 양식이 되고 그늘이 될 나무의 씨앗을 뿌린 것과 같이, 어쩌면 우리 역시 알지 못하는 사이에 누군가의 삶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지금 이 곳에서의 나의 일상이 한층 다른 깊이로 여겨진다. 다람쥐가 묻어둔 도토리를 잃어버린 게 아니라 실은 도토리를 심어 나무를 키운 셈이라면, 오늘 우리의 숱한 상실과 넘어짐도 누군가를 일으키는 일에 기여하고 또 다른 삶의 자리를 만드는 일에 쓰여질지 모른다는 희망이 생긴다.
미시간에서 네 번째 가을 학기가 시작되었다. 종종 나는 내 머리 속에 열심히 모아둔 단어들을 잃어버린 듯한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한국인으로서 미국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는 나의 일상은 잃어버린 단어들을 찾아 헤매는 일로 채워질 때가 많다. 학창 시절 노트마다 빼곡히 써가며 외웠던 단어들은 내 것이 아닌 듯 머릿속에서만 맴돌다가 글을 쓸 때면 오롯한 형태로 나와주질 않는다. 애써 기억해 내고 새로 찾아낸 단어들로 한 줄 한 줄 채운 글은 다시 읽으면 마음에 들지 않아 지우고 다시 쓸 때도 많다. 가끔은 이곳에서 시간을 잃어버린 듯한 기분이 드는 날도 있다.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된 소설을 들여다보아도 그냥 생경한 단어들만 둥둥 떠다니는 것 같은 때엔 나의 소중한 시간이 이해할 수 없는 구절들과 함께 어딘가로 사라져가는 것만 같다. 소중한 모국어도 잃어버릴 것만 같아서 날마다 침대 머리맡에 두고 읽는 책들, 한국에서 가져온 아끼는 책들의 구절구절은 익숙한 다정함과 함께 내게 다시 따뜻한 땅에 발을 디디는 기분을 준다. 글 안에서 헤매이던 나는 다시금 글을 통해 아늑한 나만의 시간을 되찾는다. 문득 몇 해 전의 기억이 떠오른다.
대학교 3학년 가을학기에 만난 교수님은 프랑스 작가 장 지오노의 단편, “나무를 심은 사람”을 한 단어, 한 문장의 의미에 집중하며 읽도록 하셨다. 당시 친구들과 나는 그룹 발표를 하기 위해 우리가 맡은 이 단편 소설의 단 한 문단을 두고 여러 시간을 들여 고민하고 해석했다. 단편의 줄거리인 동산에 나무를 심은 한 노인의 이야기는 얼핏 평범한 듯 했지만, 단편의 한 단어가 지닌 의미가 드러날 때마다 이 평범한 이야기가 담고 있는 놀라운 깊이가 펼쳐졌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나무를 심은 노인이 견지한 진지한 삶의 태도와 사랑, 인류애, 소박한 믿음의 위대함,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려는 지치지 않는 고귀한 열정이 짧은 이야기를 구성하는 모든 단어에 보석처럼 박힌 채 잔잔하게 전해지는 이야기였다. “나무를 심은 사람”을 프랑스어로 한자 한자 짚어가면서 자세하게 공부하면서 보낸 스물 한 살의 가을은 문학을 전공으로 정한 내가 인생을 대하는 태도마저 온전히 바꾸어 놓았다. 작가가 소설의 한 단어를 고르는 자세는 농부가 땅에 뿌릴 씨앗을 조심스럽게 고르는 태도와 같이 여겨졌고, 그 단어를 되짚어가며 해석하는 나는 누군가 땅 속 깊이 숨겨놓은 보물을 캐내는 사람과도 같이 생각되었다.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고 영혼을 흔들어 놓는 글의 힘은 적절한 한 단어를 찾아내기 위한 무수한 담금질로 생겨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모든 단어가 글 안에서 열매를 맺는 일은 한 작가의 위대한 도전이고 이를 캐내는 것은 독자의 몫이었다.
영문학을 전공하면서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된 글을 잃고 해석하는 나는 어쩌면 한국어로 글을 쓰고 생각할 때보다 더 많은 시간을 잃어버리고 내 안에 품어지지 않는 낯선 단어들을 찾아 헤매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내가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시간은 어느새 더 많은 고민이 담긴 나의 글 어느 틈에서 씨앗이 되어 뿌리를 내리고 언젠가 나도 모르는 그 때에 누군가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 줄 열매를 맺지 않을까. 이 희망이 다시 한 번 미시간의 가을을 설레 임으로 수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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