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리 몇 번에 된서리까지 내리더니 뒤뜰이 텅 비어버렸다. 쌀알만한 꽃을 밀어내 주던 조팝나무도, 가지마다 향기를 달고 있던 수수꽃다리나무도 싸리비처럼 앙상해져 버린 지 오래다. 까치발을 딛고 선 자작나무들 사이로 건너편 집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만 보아도 이젠 정말 돌이킬 수 없는 계절인 겨울이 왔나보다.
짧은 해가 간단없이 넘어가버리고 나면 짙은 어둠이 삽시간에 밀려와 천지를 점령해버리는 초겨울 저녁, 설거지를 끝내고 쓰레기를 내놓으러 밖으로 나간다. 장작 태우는 향기가 온 동네에 이내처럼 퍼져 있다. 참나무나 호두나무 같은 장작이 타는 향기, 이 또한 겨울이 도착했다는 표시이다. 집 옆구리에 서있는 측백나무 울타리 위의 하늘에는 그믐으로 가는 하현달이 떠있다. 드문드문 차가운 잔별들도 보이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다가 돌아서는데 왈칵하고 눈물 같은 쓸쓸함이 가슴을 돌아나간다.
스무 아홉 해 전, 뉴욕 케네디공항에 첫발을 딛던 그날도 바람이 몹시 불었었다. 십일월, 꼭 이맘때였다. 그 날 밤, 함부로 몰려다니는 바람소리에 잠을 뒤척였던 기억이 어제 일처럼 선명하다. 그래서인지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마음에 한기가 자주 내려앉고 그리워지는 것들이 많아진다. 개울물 속에 거꾸로 빠져 있던 감나무의 풍경과 기울어진 초가의 모퉁이에 습기 잃은 모과나무가 서있던 풍경 따위가 생각난다. 된장 항아리 위의 채반에서 말라가던 가을나물들과 툇마루에 아무렇게나 뒹굴어 다니던 늙은 호박들의 모습도 기억난다. 그중에서도 곰삭은 황석어젓과 무채양념의 맵싸한 냄새를 온 집안에 가득 채우며 김장을 하던 풍경이 이맘때가 되면 꼭 한 번씩 그리워지곤 한다.
지금이야 계절 없이 채소가 나오고 집집마다 김치냉장고가 따로 있는데다 먹을거리도 흔해져서 김장을 하는 집도 줄어들고 있지만 날이 추워지고 산천에 흰 눈이 덮여버리면 그 어디에서도 푸른 잎의 채소 한 장을 구할 수 없었던 시절의 김장은 한겨울 양식의 절반을 마련하는 일이었다. 흑백텔레비전의 아홉시 뉴스에서까지 김장거리에 대한 이야기가 화두로 떠오르며 전국이 들썩일 만큼 우리네 생활에 있어 김장은 아주 중요한 연중행사였다. 첫얼음이 얼고 첫눈이 내리는 소설 즈음이면 집집마다 김장을 서둘러야 했다.
산과 들에 피고 지는 하찮은 풀꽃 몇 낱도 예사로 보아 넘기지 않았던 어른들은 싸리꽃이 피기 시작하면 볍씨를 파종하고 보랏빛 칡꽃이 피기 시작하면 김장거리를 파종했다. 할아버지는 배추씨며 무씨를 넉넉히 뿌려 싹을 내고, 모종을 옮기고, 솎아내고, 벌레를 잡아주며 온갖 정성을 들여 일곱 되지기 밭으로 가득 김장거리를 키워내셨다. 곡식이나 채소를 키우는 일은 새와 풀과 벌레와의 싸움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었다. 푸른 나비처럼 올라온 싹이 자라 속이 노랗게 들어찬 배추를 얻기까지는 일흔 날쯤을 부지런히 밭으로 오가야 한다고 한다.
그렇게 김장밭으로 가득 키운 김장거리는 가을걷이가 끝나고 된서리가 내리기 전에 소달구지에 실려 사랑채의 토방으로 날라져 왔다. 집집마다 배추 몇 접씩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행여 밤사이 기온이 곤두박질칠까봐 멍석 같은 걸 씌워두기도 했다. 어머니와 할머니가 샛노랗게 속이 찬 배추를 쪼개어 절이는 동안 아버지는 여름 내 붉은 맨드라미가 피고 지던 뒤란에 김장독을 묻고 할아버지는 김장독에 덮을 짚방석을 너덧 개씩 만드셨다. 어렸던 우리들은 고소한 배추 꼬랑지를 얻어먹거나 동치미에 덮을 푸른 댓잎을 꺾으러 대숲으로 내달리며 잔칫날을 앞둔 것처럼 설레었었다.
김장하는 날은 새벽부터 분주했다. 배추김치, 깍두기, 동치미, 섞박지, 비늘김치, 갓김치, 파김치, 김치에는 종류도 많았다. 초겨울에 먹을 김치에는 젓갈이며 파 마늘을 많이 넣고 초봄에 먹을 김치에는 양념을 적게 넣는 대신 소금을 넉넉히 뿌려 이 독 저 독에 나눠 넣을 때쯤이면 짧은 겨울해가 집 뒤의 대숲에 수천 개의 별을 만들며 사라졌다.
김장을 하던 날의 저녁밥상은 늘 푸짐했다. 삶은 돼지고기를 노란 배추 속잎에 김치소를 넣어 싸먹거나 갈치조림을 해먹었다. 함지박에 묻어 있는 김장 양념이 아까워 휘휘 헹궈낸 물에 무와 대파를 쑹덩쑹덩 썰어 넣고 조려낸 갈치조림의 맛은 얼마나 달콤했던지. 고봉이나 되게 퍼 올린 밥사발을 거뜬히 비워냈던 그 저녁의 밥상을 잊을 수가 없다.
늦도록 들려오던 어머니의 뒷정리하는 소리를 베개 삼아 잠이 들던 그 밤, 짚방석을 덮고 잠을 청하는 김장독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감나무에는 까치밥으로 남겨 놓은 홍시 몇 개가 호롱불처럼 걸려 있었고 하늘에는 오늘 밤처럼 차가운 별도 몇 개 걸려 있었으리라.
십일월이 깊어질수록 내 그리움도 깊어지고 있다. 행주질한 자리마다 살얼음이 얼어붙던 그 옛날의 겨울밥상이 그립다. 손으로 쭉쭉 찢어 올려 먹던 숙성된 배추김치가 그립고 댓잎 한 장이 빠져있기도 했던 동치미사발도 그리워진다. 하얀 햅쌀밥을 호호 불어가며 도톰한 갈치조림을 얹어먹던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던 저녁밥상이 그립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그리운 건 잠결에도 들려오던 어머니의 기척일 것이다. 밤의 정적을 깨며 또닥또닥 정교하게 들려오던 무채며 깍두기를 썰던 도마질 소리, 찰랑거리며 배추를 씻던 물소리, 달그락달그락 빈 그릇을 정리하던 소리, 그 모든 소리의 주인공인 어머니가 옷섶에 한기를 잔뜩 묻힌 채 방으로 들어오시며 허리를 펴던 소리, 그 모든 기척이 사무치게 그리운 십일월 저녁이다.
감나무마다 홍시 몇 개쯤은 까치밥으로 남겨놓고, 입에 풀칠하기 힘든 그 누군가 배고픈 사람들을 위한 배려로 추수한 들판에 떨어진 이삭을 줍지 않던 동네, 그 동네에도 십일월이 깊어가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텃밭에는 된서리가 가득할 것이고 누군가의 담벼락에는 매달아 놓은 시래기가 그악스러운 바람에 말라가고 있을 것이다. 어느 시인의 표현처럼 술보다는 차를 끓이기 좋은 계절, 십일월이 깊어가고 있다.
pinkmd41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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