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의 한글 표기법에 관해서 오래 벼르던 불만을 좀 털어놨으면 한다. 복잡한 얘기는 아니다.
정작 미국에 오래 거주한 (미국 물 좀 마신) 한인보다 모국에 계신 분들의 ‘혀’ 와 청각 기운이 더 구부러지는 듯함이 신기하다. 신문 지면에 실리는 영문 표기는 물론 한국 TV를 보면 엉성하기 짝이 없는 표기법에 제대로 전달될 수 있는 영어도 막무가내로 뒤틀리고 만다.
아무튼 ‘슈퍼’인가, ‘수퍼’인가.‘히어로’인가 ‘히로우’인가 말이다.‘쇼파’인가 아니면 ‘소파’인가. 한 발 더 나가보자면 영문뿐 아니라 불어 한글 표기도 마찬가지다. ‘뷔페’인가 ‘부페’인가….
잘못 표기/전달된 영어의 발음이 문화적 오해를 일으키기도 한다는 사실 또한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얘기다. 말나온 김에 예를 들어보자. 몇 해 전 서울을 방문했던 때의 일이다. 살 물건이 있어 누구를 붙잡고 “혹시 근처에 수퍼-마켓이?” 하고 물었더니 “미국 물 좀 마셨다 이거죠?.…‘슈퍼’ 저기… 저쪽에(!)” 라는 대답이 퉁명스레 날아온다. 거의 무의식중에 튀어나온 ‘일상 영어 발음(?)’ 이었는데, 은연중에 내가 ‘척하는 인간’으로 승진돼버린 건 물론이거니와, 역시 한국에선 ‘수퍼’가 아닌 영원한 ‘슈우퍼!’ 인 것을 깨달을 수 있는 계기였다.
그뿐 아니다. 유학차 미국에 갓 도착한 학생이 한 영화 주인공을 얘기하고자 ‘히어로’를 되풀이하는데, 불행히도 상대방(미국인)은 무슨 말인지 통 감을 못 잡는다.
우리의 모국어는 (논쟁의 여지가 있을망정) 세상에서 가장 과학적이며 아름답고 정확한 발음과 음성 상징을 갖고 있다. 그뿐인가. 세상 어느 언어보다도 풍부한 이른바 ‘소리의 향연’을 품고 있다. ‘맥도널드’를 제대로 발음/표기할 수 없어 ‘매그당로’라 하고, 같은 이유로 ‘트럭’를 ‘도라꾸’라고 발음할 수밖에 없는 그 어느 나라 언어들과는 사실 차원이 다르다는 게 지극히 주관적인 나의 자부심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외국어 표기법에서 만큼은 우리 스스로가 우리말의 멋과 깊이를 마구 뭉개버리는 식이니 울분할 정도가 아니겠는가 말이다. 한국 최고 언어학자님들의 작품: ‘외래어 표기법’의 그 ‘신기한’ 기본 원칙을 멀리서나마 한심스레 건너다보는 건 확실한 슬픔이다.
되풀이 해보자. 조지타운大 출신, 필라델피아 (76ers) 농구팀 선수는 ‘알란 아이버슨’ 이지 ‘엘렌 아이버르슨’ 이 아닌 것이다. 엘렌은 여자니까 아마 NBA의 터프한 가드 역할에 분명 문제가 있을 듯하고… 길거리 노숙자들은 ‘홈-레스’지 ‘홈리스’가 아니다. ‘홈리스’는 아마도 시장에 나온 셋집에 관한 임대계약 문구(?)가 아닐까 생각 든다.
물론, 영어 발음을 틀림없이 표기하려면 적잖은 애로가 따른다. 유성/무성 파열음, 마찰음, 미음, 유음, 장모음, 아저씨 음, 할아버지 음, 윗소리, 바람소리 기타 등등이 과학적으로 표기돼야 하니까. 솔직히 완벽함이란 불가능할 수도 있다. 허지만, 이쯤 돼선 가능한 한 정확성 있는 발음과 표기로 해외동포들은 물론, 여행자들 그리고 이제 갓 귀와 눈을 뜨기 시작하는 어린 세대를 제대로 인도해야 할 듯싶다는 말이다. 이미 굳어진 외래어 표기라고 그 관용을 존중하는 이른바 ‘콩글리쉬’ 시대는 지난 셈이다.
한국 문화 관광부가 실시했다는 2000년 로마자 표기법이라는 것이 고시하는 규칙들 중 ‘전사법’이란 게 있다. 이를테면 한국어를 로마어/자로 표기할 땐 소리대로 글자를 옮기라는 규칙이다. 그래서 (외국인들을 위해) ‘신라’가 ‘Sin-Ra’가 아닌 ‘Shilla’가 된 것인데, 이는 발음과 음성 표기에 즈음하여 다소 존중할 수 있는 규칙이다. 헌데, 반대로 외래어를 우리말로 표기하는데 유사 전사법 법칙은커녕 그야말로 일본어인지 월남어인지 모를 (충분히 가능한 발음/표기마저 무시해버리는) 괴상한 규칙이 적용되는 셈이다. 납득이 불가능해 진다.
하나만 더 짚고 넘어가자. 표기법에 얹혀사는 ‘복합어’라는 것의 규칙, 그 모순을 얘기하고 싶다. 대한민국 외래어 표기법 “영어 한글 표기 세칙, 제 10항 복합어” (휴우!)를 보면 “원어에서 띄어 쓴 말은 띄어 쓴 대로 한글 표기를 하되, 붙여 쓸 수도 있다”로 돼있다.
암튼, 거창한 제목이지만 ‘붙이던 띄어 쓰던 마음대로‘의 실속은 간단하다. 문제는 사실 ‘로스앨러모스’ 까지도 괜찮은데 (최근 어떤 발행 물에 실린) ‘미드웨스턴서던밥티스트신학대학원’ 정도는 좀 심한 듯 느껴지니 하는 말이다.
음성학(Phonetics)이나 발음학, 언어학 분야에 튀는 분들이 날로 두각을 드러내신다. 예컨대 그분들이 이 어긋나는 커뮤니케이션과 잘못된 전달을 (서둘러) 바로잡으실 것을 기대해본다. 물론 쉬운 과제는 아니다. 그러나 속히 재검토 돼야 할 표기법이 도처에 널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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