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고국에서 ‘국가개조’(國家改造)라는 말을 많이 한다. 세월호 사건을 전후로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에서 국가개조에 대한 언급이 나왔고, “국정 중단을 막고, 국가개조 과업을 이루기 위해 새로운 각오로 임하겠다."며 세월호 사건으로 책임을 지고 사표를 냈다가 다시 유임된 국무총리의 일성(一聲) 역시 국가개조였다. ‘국가대개조범국민위원회’를 제안한 총리 유임 후 낸 첫 총리담화 역시 국가개조에 방점이 찍혀 있다.
어느새 국가개조는 현 정부의 국정 슬로건이 되었다. 졸지에 대한민국은 개조를 하지 않으면 안될 만큼, 마치 수술대 위에 올라 있는 중환자처럼 부실하고 부패하고 국운(國運)이 다하여 대 수술을 받아야 할 나라로 전락해 버린 느낌이다. 고국의 언론을 통하여 국가개조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참 불편해 진다. 물론 국가개조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정부의 의욕과 의미는 알겠지만 국가개조라는 말은 함부로 쓸 말이 아니다.
사실 개조라는 말은 말처럼 그리 쉬운 말이 아니다. 사전적으로 개조는 ‘고쳐서 새로 만든다’는 뜻이다. 비슷한 뜻으로 개선, 개혁, 혁신 등의 단어가 있다. 그러나 개조는 이런 말들 보다 더 강한 뉘앙스가 있다. 어떤 대상이 현저하게 제 기능을 못해 뜯어 고쳐 새롭게 한다는 과격하고 급진적인 이미지를 담고 있다. 개조는 또한 지금의 상황과 체제에 대하여 부정을 전제하는 말이다. 이 말을 사물에 적용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지붕 개조, 자동차 개조, 시스템 개조 등등 얼마든지 사용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사람이 포함된 사회적 용어가 되면 말이 달라진다. 간혹 인간개조라는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과연 누가 누구를 개조할 수 있는가? 그럴 권위와 내적 자신감이 있는가? 북한의 김일성은 유물(唯物)사관에 입각하여 인간개조를 주장하였고, 통일교의 문선명도 유심(唯心)사관에 입각하여 인간개조를 주장하였지만 정작 본인들조차도 자신들이 주장한 개조된(?) 인간의 삶을 제대로 살지 못했음을 우리는 그대로 보아왔다.
한국은 개조론(改造論)에 대하여 부정적인 기억을 지니고 있다. 일제시대 춘원 이광수의 ‘민족개조론’이 그렇다. 그의 민족개조론은 민족개조론의 원조라 할 수 있는 도산 안창호의 개조론과 여러 면에서 유사하다. 춘원은 개조론에서 여러 가지 개조할 내용을 제시한다. 그러나 우리 민족이 열등하고 미개하여 나라를 잃고 일본의 식민통치를 받게 되었다고 주장함으로 결과적으로 그의 민족개조론은 일본의 강점을 합리화해 주고 친일 사관을 대변해 주는 역할을 하였다. 비록 민족개조론을 썼지만 춘원 역시 자신이 주장한 개조된 민족의 일원으로 당당하고 주체성 있게 살지 못하고, 오히려 친일과 변절의 길을 걸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재임시절 도산의 ‘민족개조론’을 근거로 내세우며 ‘국토개조론’를 주장하며 22조원 이라는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4대강 사업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아직 국토가 개조되었다는 긍정적 효과보다는 여러 가지 후유증으로 오히려 국토가 몸살을 앓고 있다.
대한민국은 나라를 개조를 해야(?) 할 만큼 국운이 다하였는가? 아니다. 대한민국은 세계 어느 나라에 내 놓아도 꿀릴 것 없는 크고 깊고 넓은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정신과 강인한 자주독립 정신과 불의에 항거하는 민주 정신에 바탕을 둔 나라이다. 자랑스러운 문화와 유구한 역사가 있으며 창조적 열정과 에너지가 넘치는 나라이다. 수고스럽게 다시 국가를 재건하거나 개조할 필요가 없는 나라다. 더구나 개조의 주체나 개조의 이념도 없지 않은가?
국가개조는 오만이나 무지에서 나온 발상이다. 국가개조 이전에 이번 세월호 참사를 통하여 나타난 우리 사회의 부끄럽고 부족한 모습을 깊이 반성하고 고치면 된다. 사회의 기본 바탕과 법과 조직, 그리고 이것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면 되는 것이다. 후진적이고 이기적인 국민 의식이나 비합리적인 법과 조직, 부패한 관료 문화를 개혁하고 개조하면 된다.
그러나 국가는 개조의 대상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있는 그대로 ‘대한민국답게’ 길이 발전하고 번영하여 세계 공영에 이바지해야 할 아름답고 자랑스러운 나라이다. 국가를 개조한다니? 참 마음이 불편하다. 더 곱고 좋은 말이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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