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두 주 동안 고등학교 졸업식에 참석하느라 정신 없었다. 나는 버지니아 주 페어팩스 카운티 전체 유권자들에 의해 선출된 광역구 교육위원이기에 카운티의 각 지역구에서 선출된 일반 지역구 교육위원에 비해 참석해야 할 졸업식이 당연히 많다. 카운티 내의 정규 고등학교만 해도 25개나 된다. 거기에다 특수 학교나 대안학교를 포함하면 졸업식 숫자는 훨씬 더 많아진다. 물론 그 모든 졸업식을 참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졸업식 시간이 겹치기도 하고 다른 일로 부득이 참석하지 못하기도 한다. 올해는 예년보다 몇 학교가 줄어 19군데에 참석했다.
졸업식 순서 길이가 거의 2시간 가량 된다고 볼 때 19군데의 참석은 많은 시간을 소요한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변호사 업무도 짬짬이 보아야 하기에 하루에 세 곳씩 참석하다 보면 점심도 거르기 십상이다. 그런데 졸업식에서 맨 앞의 단상에 앉아 있게 되는데 수 천명이 보는 앞에서 점잖게 앉아 있는게 보통 힘든 것이 아니다. 그래서 졸업 시즌만 끝나면 몸 전체가 두드려 맞은 것처럼 아프다.
사실 단상에 앉아 있으면서 졸업식 순서에 정신 집중을 하는 것도 쉽지 않다. 졸업식에서 행해지는 축사도 오랫동안 교육위원을 지내고 많은 졸업식에 참석해 오면서 비슷한 내용들을 자주 듣기에 딴 생각으로 빠질 때도 제법 된다. 그리고 어떨 땐 피곤에 몰려 오는 졸음을 참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도 한다. 속으로 노래도 불러 보고 허벅지도 꼬집는다. 그리고 한인 졸업생 통계도 산출해 본다. 졸업생 명단을 훑어 보면서 한인 학생 숫자가 몇 명이 되고 그게 졸업생들의 몇 퍼센트가 되는지 대충 계산해 보기도 하는 것이다.
올해 참석한 학교 중 기억 나는 것은 센터빌 고등학교의 경우 거의 16%가 한인 학생으로 높은 비율을 보였다. 그리고 챈틀리 고등학교는 7%, 로빈슨 고등학교는 6%, 또한 웨스트필드 고등학교의 경우 5% 정도 였다. 반면 마운트 버논, 에디슨, 폴스처치, 스튜어트 고등학교의 경우 거의 없다시피 했다. 한인들이 선호하는 거주 지역과 다니는 학교들이 어딘지 극명하게 드러나는듯 했다.
졸업식 단상에 앉아 이렇게 한인 졸업생 숫자를 파악하고 있노라면 이를 지적하는 동료 교육위원도 있다. 한인 학생만 파악하지 말고 아이리쉬나 이탈리아계 학생들 숫자도 파악해 보는게 어떻겠냐면서 말이다. 어쩌면 가시가 있는 지적인데 그럴 때마다 미안해 해야 하는건지 계속 당당해야 하는건지 판단이 잘 안 서기도 한다. 한인뿐만이 아니라 카운티 전체 유권자들을 대변하도록 선출된 교육위원이기 때문에 교육위원회 활동 중에 한인 학생들 얘기나 한인들과 관계된 이슈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할 때 내가 한인이기에 한인들을 위주로 생각한다는 오해를 살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나는 졸업식 때 내가 다니고 있는 교회의 학생들이 졸업장을 받기 위해 단상으로 올라 오면 일어나 악수를 하는 등 특별히 축하를 해 준다. 이번 해도 물론 마찬가지로 그랬다. 내가 다니는 교회 출신의 졸업생이 전혀 없는 학교도 있지만 제법 여럿 있는 학교들도 있다. 그래서 어떨 때는 여러번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나가 축하해 주고 다시 자리에 돌아와 앉는 일을 반복하게 된다. 물론 그럴 때마다 단상 주위 사람들에게 우리 교회 출신 졸업생이라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하게 된다. 내가 다니고 있는 교회가 한인 교회이니만큼 그렇게 축하를 받는 학생들 거의 모두가 한인 학생들인데 교육위원회 의장이 한인 학생들만 특별히 아끼는 모습으로 비쳐질까 보아서이다.
나는 페어팩스 카운티의 12명의 교육위원들 가운데 유일한 소수민족 출신이다. 아니 페어팩스 카운티 뿐만 아니라 버지니아 역사상 유일한 한인 교육위원이다. 그래서 내가 취하는 행동이나 말 하나 하나가 주위로부터 특별히 주목을 받을 수 있기에 더욱 조심스럽다. 이런 것을 의식하지 말고 극복해야 한다고 누누이 스스로 다짐하면서도 매번 마음에 부담으로 다가 온다. 이는 내가 아직 성숙한 교육위원이 되기에 갈 길이 요원하다는 반증일 것이다. 어쩌면 이 것은 나 뿐 아니라 이 곳에서 소수민족 이민자로 살아 가는 모든 이들이 두고 두고 도전의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 숙제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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