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위안부 기림비 제막식이 있었다.
이날은 음력 5월 2일이었고 BC2370. 5.2 인시에 탄생하신 단군왕검 탄신 제4384주년이 되는 날이어서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에서는 탄신제를 올리고 있던 그날이었다.
우연이지만 특별한 의미부여를 할 수도 있겠다. 남북통일 방해공작도 서슴지 않는 일본을 규탄하는 차원에서도 기림비 건립은 바람직하다.
“참으로 오랜 세월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네요, 그동안 수고가 많았습니다.” 워싱턴 정신대대책위원회의 발족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21년, 초지일관 정신대(일본군 성노예) 할머니들의 인권회복을 위해 발로 뛰어왔던 나를 아는 이들의 격려와 치하의 말이다. 다른 한 편에서는 일본을 자극해서 좋을 게 있겠느냐, 기림비 같은 걸 꼭 세워야 되느냐, 아우를 안듯 일본을 끌어안고 평화스러운 모습으로 가야 되는 것 아니냐는 등의 불만을 토로하는 분들 또한 적지 않다.
시대의 흐름과 정세의 변천 앞에서 고루한 정신대 기림비라고 인식할 수도 있겠지만 그 시각만으로는 고루하지 않은 과거가 있을 수는 없는 것, 옳고 그름으로는 정답이 없다고 여겨지지만 적어도 기림비 건립목적에 본질적 접근의 필요성은 있다고 사료되는 바, 곧 정신대 기림비는 전쟁범죄국, 인권유린국 일본을 규탄한다는 의미로만 인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2007년 7월 30일 일본군 종군 위안부 법안(H.R. 121)의 미국 연방하원 만장일치 통과는 전 미주 동포가 함께한 미주 최초의 풀뿌리운동의 근간이었으며, 위안부 문제는 이미 인류의 인권문제로 공감하고 있었다는 메시지가 아니던가! 인류사에서 그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인권유린 사례 중 가장 모질고 참담한 사례가 정신대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서 비록 아프고 슬픈 사연의 기림비인 것은 맞지만 우리는 이 아픔을 통해서 가해자들의 반성과 각성을 촉구하고 재발의 방지를 갈망하면서 평화로의 승화를 소망하는 평화비, 궁극적 목표가 평화라는 것으로 인식하면 안 되는 것일까?
“위안부는 자원한 창녀였다, 일본정부가 개입했다는 근거는 없다”는 등 거짓 증언을 일삼는 일본 지도층의 가슴은 평화 콘서트에서 감동하여 눈물을 보이는 그런 가슴하고는 다르다. 평화헌법을 없애고 자위대의 정규군 화를 도모하고 있는 그들의 가슴은 동아시아에서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태극기를 길 위에 깔아놓고 밟고 지나가기 운동을 펴고 있는 혐한 정서를 증폭시키는 사람들의 가슴은 양심적인 교수 그룹, 변호사 그룹, 인권운동 그룹의 가슴들 하고는 전혀 다른 것을 어찌하랴,
평화헌법이라고도 부르는 일본국 헌법 제9조는 “일본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평화를 성실히 희구하고 국권의 발동에 해당하는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는 영구히 이를 포기한다. 전항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육해공군 그밖의 전력은 이를 보유하지 않는다. 국가의 교전권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이다. 헌법 9조는 제국주의와 군국주의의 어두운 과거를 청산하고 ‘일본은 다시는 전쟁하는 국가가 되지 않겠다’ 는 동아시아인들과의 화해를 위한 약속이다
이 평화헌법의 개악과 자위대의 정규군화, 자위대의 해외진출은 불안한 한반도와 동아시아 정세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고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는 일이며 ‘아직도 끝나지 않은 동아시아의 과거청산’을 스스로 포기하겠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아베 신조의 헌법적 재해석 편법으로도 양심적 국민들의 평화수호 의지의 벽을 뛰어넘지는 못할 것이다.
희생자 무덤 앞에서 무릎을 꿇고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무릎을 꿇는 일 외에 없기 때문이다”라며 과거를 반성하는 빌리 브란트 독일 총리의 그 모습 위에 워싱턴을 방문한 일본 수상이 정신대 기림비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할머니들의 아픔을 거울 삼아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속죄하는 그 어느 날의 모습으로 겹쳐보는 꿈마저 꾸어서는 안 되겠는가! 기대조차 해서는 안 되는 것인가!
우리가 우리 손으로 건립한 이 기림비는 미 주류사회(주정부)의 지원으로 이루었다. 이는 누가 뭐래도 인권존중 중심국가의 양심으로 패륜적 사례의 반복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고 보여 지지 않는가,
나비를 푸른 하늘로 날려 보내는 이날 마지막 순서는 성노예에서 해방이 되고서도 질시와 냉대 속에 갇혀있던 참담한 할머니들이 비로소 자유함을 얻어 푸른 하늘가를 날으는 것 같은 개운한 기분마저 들게 하고도 남았다.
수고하신 모든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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